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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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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로마서 13:1-2

세상의 통치자들에게 복종하라

2025. 12. 22. · 안정섭 목사 · 로마서 13장 강해 설교

로마서 13:1-2 모든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세상의 통치자들에게 복종해야 하고 그 통치자들에게 반역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다.

원수가 주리거나 목이 마를 때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라. 그러면 그러한 선행으로 인해 원수가 감동하여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니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이어지는 말씀은 유대인 원수에서 이방인 원수인 통치자들을 사랑하라는 내용이다.

13:1에서는 갑자기 권세에 복종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12장 끝부분과 13:1-7과는 전혀 연결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가 8절에 가면 다시 서로 사랑하는 것에 대한 말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인 13:1-7만 뺀다면 훨씬 자연스럽게 연결될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진보적인 신학자들은 이 부분을 로마정부의 환심을 사기 위해 후대에 끼워 넣은 부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부분이 후대에 삽입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길게 설명하고자 한다.

만약 13:1-7절이 바울의 기록이 아니라 후대의 교회가 로마 정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삽입한 것이라면 AD 313 년 이후여야 한다. 콘스탄틴 황제 이후에야 교회가 로마제국과 우호적인 관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4세기 이후의 주요한 사본들에도 이 부분이 삭제된 사본들과 이부분이 들어있는 사본들이 함께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사본상의 대립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2세기 성경 필사본 중 하나인 P46에도 이 부분은 분명히 존재한다.

사본의 외적 증거만이 아니라 본문의 내적 증거에도 바울의 기록이라는 일관성이 분명히 보인다. 12:17에 선과 악이 비교되어 나오는데 13:3절에도 똑같은 말인 선과 악이 나온다. 개역은 악한 일과 선이라는 말로 번역했고 새번역은 좋은 일과 나쁜 일고 번역했다. 모든 증거를 다 찾아보면 볼수록 오늘 본문을 나중에 끼워 넣었다는 증거는 전혀 찾을 수 없다.

진보적인 신학자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잘못 이해하고 인용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통령이었던 P.W. Botha는 Rom 13:1을 인용하면서 자신들의 인종차별 정책을 지지하라고 했다. Botha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많은 정치가들이 이 구절을 말하며 자신들에게 복종하라고 했다. 하지만 저들도 역시 성경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성경 전체를 보면 정부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할 때까지만 복종하는 것이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사도행전 5:29에서 사람들에게 복종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마땅하다 라고 했다. 또 출애굽기 1:17에서 산파들은 파라오가 아기들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거역했다. 다니엘 3장에 보면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느부갓네살 명령을 거절했다. 다니엘 6장에 보면 다니엘은 다리오가 기도를 금지한 명령을 어겼다. 성경은 본문의 앞뒤 문맥을 생각하며 이해해야 한다. 또 성경이 기록될 당시 독자들이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를 알고 이해해야 한다.

바울당시 로마교회 성도들은 이 부분에 대해 전혀 오해가 없었을 것이다. 바울이 엉뚱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후대 사람들 이다. 후대사람들은 바울당시 로마교회의 형편을 몰랐기 때문이다. 바울 당시 로마교회의 형편을 알려면 바울이 주로 누구를 대상으로 로마서를 썼는지 왜 썼는지를 알아야 한다.

로마교회를 세웠던 사람들은 유대인들이다. 이들이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러다가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유대인 추방령을 내려 모든 유대인들이 로마에서 쫓겨났다. 그 때문에 로마교회는 지도자들이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이방인 신자들이 교회를 이끌어갔다. 5년 뒤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죽고 네로가 로마 황제가 되자 쫓겨났던 유대인 신자들이 돌아왔다. 교회를 걱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돌아와보니 자신들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 그래서 돌아온 유대인 신자들과 이방인 신자들 사이에 다툼이 생겼던 것이다. 문제는 돌아온 유대인 신자들이 복음 이외에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때문에 바울은 주로 돌아온 유대인 신자들에게 당부할 목적으로 이 편지를 쓴 것이다.

오늘 본문도 역시 주로 유대인 신자들에게 부탁하는 내용이다. 유대인 신자들은 다른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로마제국을 원수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로마제국이 유대를 멸망시키고 식민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로마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은 대부분 유대인 포로의 후손들이다. 팔레스타인에 살던 일부 열성적인 유대인들은 게릴라전으로 로마제국에 무력항쟁을 했다. 또 어떤 이들은 납세 거부운동으로 저항하기도 했다. 또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부터 로마황제를 신격화했기 때문에 그 반감은 극대화되었다.

마가복음 12:14-17에 보면 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바칠까요 말까요 라고 예수님께 질문한 것이 나온다. 이것도 당시의 황제숭배와 관련된 함정이었다. 바치라고 하면 우상숭배자로 몰아 처단했을 것이다. 반대로 바치지 말라고 하면 납세거부 운동을 하던 무장항쟁 게릴라의 우두머리로 고소했을 것이었다. 특히 로마에 살던 유대인들은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칙령으로 살던 터전을 잃었기에 그 반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황제가 바뀌어 돌아오긴 했지만 유대인들의 반감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로마제국은 유대인들에게 원수였던 것이다. 로마제국은 특히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원수였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로마황제가 파견한 총독의 손에 처형되었기 때문이다.

로마제국 지도자들도 유대인들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로마의 역사가 Tacitus는 43 BC에 죽은 Cicero가 가졌던 유대인에 대한 적대감을 기록했다. 당시 로마제국 지도자들의 유대인에 대한 반감은 주로 세금 때문이었다. 성전세는 내면서 로마제국에 내는 세금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또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 황제숭배를 유대인들은 거부했기 때문이다. 유대인 추방령의 표면상의 이유는 유대인 사이의 분쟁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제 이유는 이런 유대인들에 대한 적대감 때문이다. 클라우디우스의 죽음으로 추방령이 해제되었지만 유대인들에 대한 적대감은 로마제국 지도자들 사이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로마제국 지도자들은 유대인들과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구별하지 못했다. 유대인 추방령의 발단이 된 사건도 유대인과 유대인 기독교인 사이의 분쟁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로마제국 지도자들은 둘 사이를 구별하지 못했다. 실제로 AD 70년 이전에는 기독교인들이 성전이나 회당에서 예배를 드렸다. 유대인들 조차도 유대교의 한 종파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당시 유대교 안에는 모두가 하나님을 믿지만 생각이 조금씩 다른 분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바울은 로마교회가 심각한 위기에 놓여있다고 본 것이다. 성도 간의 분쟁으로 교회는 나뉘어질 위기에 있었다. 또 로마제국과 유대인 사이의 적대감 때문에 복음전파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 구절을 후대의 삽입이라고 보는 학자들은 로마서 전체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1-11:12절에서 바울은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사망한 후 유대인 추방령이 해제되어 로마교회로 되돌아온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 한 말이다. 11:13-24절은 로마 교회의 이방인 신자들에게 교만한 태도를 보이지 말라고 한 뒤 11:25절부터는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들 모두에게 참된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에 대해 말한 것이다.

12:1-8절은 그렇게 유대인과 이방인 기독교인들이 하나가 되기 위해 각자가 그리스도를 표준으로 삼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겸손히 서로 섬기라는 내용이다. 그러한 그리스도의 표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그 사랑을 표준 삼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기 위해서 실천해야 할 사랑의 대상이 12:9-13:7절까지의 내용이다.

먼저 그러한 그리스도께서 본을 보이신 사랑을 실천해야할 대상은 먼저 12:9-13절에 나오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믿음의 형제들 중에도 유대인 신자들과 이방인 신자들은 서로 대적하며 원수 삼고 지도권 다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 사랑을 실천해야 할 대상은 12:14-21절에 나오는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유대인 원수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원수 갚지 말라는 것이다. 로마교회로 돌아온 유대인 지도자들은 이 편지를 듣고 “맞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을거다. 우리를 핍박하고 죽이려는 원수인 유대인 동포들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의 최고봉이지” 라고 화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갑자기 이게 다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게 다가 아니라고 한 것이 바로 13:1-7이다. 핍박하던 유대인들은 유대인 신자들에겐 원수였지만 전도해야 할 동족들이었다. 그들을 사랑하라는 말은 100 퍼센트 수긍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 바울이 한 말에는 충격을 받아 할 말을 잃었을 것이다. 동족이 아니라 이방인인 원수들까지 사랑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13:1-7은 또 다른 원수들로 여겼던 로마제국 지도자들에게 원수 갚지 말라는 것이다. 대신에 그 원수들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들을 사랑하는 방법은 그들의 법을 잘 지키고 세금을 잘 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역시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이다. 13:8절에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말라고 한 것은 바로 앞에서 말한 성도 간의 사랑, 유대인 원수 사랑, 이방인 원수 사랑을 결론적으로 말한 것이다. 동족인 원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이방인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방인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최고봉인 것이다. 이처럼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의 표준이 바로 율법의 완성이라고 한 것이 13:10절이다. 많은 이들은 로마서의 핵심은 1:17절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라는 말이라고 하지만 본인은 13:10절이 로마서의 핵심이고 결론이라고 본다.

유대인들은 유대교라는 경계를 분명히 했다. 이방인이 유대교로 들어오려면 유대인화 되어야 했다. 이러한 유대인이라는 경계는 복음전파에 심각한 장애물이었다. 이제는 유대인이라는 민족적 경계는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새로운 경계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계 안에는 유대인도 로마인도 모든 이방인들도 다 포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유대인 원수들도 사랑하고 이방인 원수들인 로마제국 지도자들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바울의 말이 아니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적대적인 상황까지 다 내다보고 그렇게 가르치신 것이다. 원수까지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유대인 핍박자들이나 로마제국의 권력자들이나 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려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13:1-7절을 이해해야 한다. 그 중에서 오늘은 13:1-2절만 보겠다. 1절은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는 명령으로 시작한다. 사람은 누구나 란 말은 한 사람도 예외가 없다는 말이다. 이는 로마 교회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 것이다. 유대인이건 로마인이건 상관없이 다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에 있는 권세는 누구를 가리킬까? 이는 분명히 로마제국 정치지도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로마제국의 지도자들은 유대인 크리스천들에게는 분명히 원수이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원수들을 세워주셨다는 것이다. 정해주셨다 또는 세워주셨다고 번역한 말은 원어에서 계급별로 줄을 세웠다는 뜻의 군대용어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아 죽인 세력들인데 왜 하나님께서 세웠다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요한복음 19:11에 나와있다. 예수께서는 위에서 주지 않으셨더라면 당신에게는 나를 어찌할 아무런 권한도 없었을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직접 임명하셨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온 세상 모든 만물과 모든 사람들은 다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병사들을 계급별로 세우듯 적재적소에 세워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로마의 권력자들도 우주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다는 것이다. 만군의 주 여호와라는 말도 온 세상 모든 군대의 주인이신 여호와라는 뜻이다.

또 다른 이유는 마태복음 28:18 때문이다. 예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고 하셨다. 이에 따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가 주라고 고백하다가 맹수들의 밥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권세를 예수 그리스도 아래 두신 것이다. 구약성경을 보아도 하나님께서는 앗시리아나 바빌로니아의 정치 지도자들을 사용하셔서 그 백성들을 회계하도록 하셨다는 내용을 볼 수 있다. 역사를 보아도 수많은 정치지도자들이 한 일이 결국 복음 전파에 중요한 전환점이 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모든 정치 지도자들 까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에 있는 것이다.

그 다음엔 더 심한 말이 나온다. 로마제국의 권력자들에게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로마제국의 반역자는 하나님의 반역자란 뜻이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하셨기 때문이다. 이는 내 자식을 사랑하듯 사랑하라는 말이 아니다. 죽도록 싫어도 말씀에 순종하여 사랑을 행하라는 것이다. 원수인 로마제국 권력자들 까지도 그렇게 의지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만약 그러한 명령을 거역하는 자는 심판을 받는다고 했다.

여기서 심판을 받는다는 말이 로마제국의 통치자들에게 벌을 받는 것을 뜻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심판을 뜻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여기서 심판이 사람들을 통해서 오는 것이고 그 근원은 하나님이라고 말하면서도 영원한 심판이라고 말할 근거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다수는 사람의 심판과 하나님의 심판 둘 다라고 말하며 권세자들의 명령 그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의 방식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또 다른 다수는 여기서 심판이 로마제국 통치자들의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특별히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심판을 받는다는 말은 욥기 9:19절과 외경인 지혜서 12:12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심판을 받는다는 말은 바울 서신 전체와 칠십인역 구약성서와 제 2 성전기 문헌에서 거의 일관되게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킨다.

성경을 해석할 때 원칙은 먼저 본문의 문맥이다. 2절 자체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반역하는 것이고 그런 반역자들은 심판을 받는다고 했기에 문맥 자체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신구약 성경 전체와 제 2성전기 문서들에 비추어서 언어적으로 개념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것이다. 다수의 학자들처럼 현대인의 사고에 근거해서 해석하면 안된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기독교인들은 무정부주의자나 사회전복세력이 아니다. 만약 기독교인이라고 표방하는 단체나 집단들이 무정부주의를 주장하거나 사회를 전복하려 한다면 따르지 말아야 한다. 오늘 말씀에 따르면 그들은 하나님의 반역자들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통치자들에게 사악한 집단으로 보여서 복음 전파를 막는 집단들은 하나님의 반역자들이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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