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15-16 바울은 그들의 버림이 세상의 화목이 되었다면 그 받아들임은 죽은 자 가운데서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며 처음 익은 곡식가루가 거룩하면 나머지도 거룩하고 뿌리가 거룩하면 가지도 거룩하다고 이방인들에게 교만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은 이제 이방인 신자들에게 말하기를 자신은 이방인의 사도라는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긴다며 그러나 자신은 이방인 전도를 통해서 유대인들에게 질투가 나게 해서 그 중 몇 사람만이라도 구원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을 기대하며 이방인들에게 이스라엘을 멸시하지 말라고 비유로 대답하는 내용이다.
15절은 원어에서 “왜냐하면 만약”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13-14절에서 이방인의 사도로 이방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서 동족들에게 질투심을 일으켜 그들 중에 몇이라도 구원하고 싶다고 말한 것에 대한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만약 이라는 말은 12절에서 이미 말한 것을 더 강한 표현으로 가정해서 말한 것이다. 12절에서 이스라엘의 영적 실패가 세상의 영적 부요함을 가져왔다면 이스라엘이 충만하게 되면 그 영적 부요함이 얼마나 크겠느냐고 한 것을 훨씬 더 강한 표현으로 가정해서 말한 것이다.
새번역은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신 것으로 번역했고 개역도 저희를 버리는 것이라고 번역해서 둘 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으로 번역했다. 개역개정도 그들을 버린 것으로 번역했다. 원어는 그들의 버림인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린 것인지 그들이 주체가 그리스도를 거부한 것인지 그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일시적으로 버리신 것으로 해석한다. 선택과 예정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라는 신학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린 것이고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받아들이신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 본문을 신학으로 잘라버리는 것은 원문의 뜻을 훼손시킬 가능성이 있다. 먼저 본문의 의미와 전후 문맥이 우선이고 그 뒤에 신학으로 확인해보는 것이 타당한 순서이다. 문맥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거부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그들의 버림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속 사역을 거부한 것을 위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11:1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린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버리신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일시적으로 버리신 것으로 해석한다. 또한 14절에서 바울은 동족(원어는 내 육체)에게 질투나게 해서 몇 사람이라고 구원하고 싶다고 한 것에 비추어 보면 바울은 이스라엘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사역을 거부한 것과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종말에 가서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이방인들에게 말한 것은 이방인들은 구원받았다고 교만하지말고 겸손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혈통의 이스라엘이나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나 민족 전체가 구원을 받는다는 뜻은 아니다. 끝까지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병든 가지는 잘라버리고 그리스도께 돌아온 남은 가지들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뜻이다.
16절은 이스라엘이 분명히 구원을 받을 것이니 겸손하라는 것이다. 16절은 두개의 작은 비유로 되어 있다. 첫번째 비유는 빵 반죽의 비유이다. 민수기 15:20에 보면 처음 거두어들인 곡식으로 만든 과자를 헌납물로 바쳐야 한다고 되어 있다. 첫번째 빵 반죽이 거룩하다면 나머지 반죽도 거룩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바칠 것을 떼어 바쳤으면 나머지 모든 반죽도 거룩하다고 인정을 받는 것이다.
두번째 비유는 뿌리와 가지의 비유이다. 뿌리가 거룩하다면 가지도 거룩하다는 것이다. 뿌리란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같은 이스라엘의 믿음의 조상들을 가리킨다. 저들이 믿음의 첫 열매이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저들이 거룩하다는 것은 모두가 다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 다음에 나오는 가지는 그 후손들인 이스라엘 자손들을 말한다.
이 두가지 비유는 다 이방인들에게 말한 경고이다. 이방인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양자가 되어 하나님 품에 있는 자들이다. 그런데 원래 하나님의 자녀였던 이스라엘은 불순종함으로 쫓겨났다. 하나님 품에 안겨 있던 이방인들은 쫓겨난 이스라엘을 보고 멸시했으며 긍휼히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들을 보고 안타까워하시고 저들이 돌아오길 기다리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유대인들을 멸시하던 이방인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알리며 하나님 마음을 깨달으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