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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로마서 › 10:14-15

Dawn Word

로마서 10:14-15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 아름답다

봉인된 두루마리 편지와 로마로 이어진 길 · 로마서 1장

2025. 11. 17. · 안정섭 목사 · 로마서 10장 강해 설교

로마서 10:14-15 바울은 이제 복음을 분명하게 전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몰랐다고 변명할 수 없다며 복음 전하는 자들의 발이 아름답다고 이사야를 인용하며 말한다.

이전 말씀에서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는데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이 풍성하게 주신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지 묻고 답하는 내용이다.

14-15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시작하며 어떻게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가 라는 질문에 4개의 how와 부정어로 대답했다. 바울은 믿음의 근원을 거꾸로 추적해 올라가서 밝히고 있다. 믿음의 근원을 한 칸씩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 목소리는 점점 강조되고 있다. 음악으로 말하면 점점세게이다.

모든 과정은 “한 적이 없는”이라는 부정어로 말했다. 또 각각의 과정은 다음 과정에 필수적인 것이다. 원래 순서로 말하면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께서 전하는 자를 보내십니다. 그래서 전하는 자는 전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게되는 것이다. 그리고 들은 자가 믿게 된다. 그리하여 믿은 자들이 주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얻는 것이다. 이 순서를 바꾸고 부정어가 있는 질문형태로 말한 것은 강조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첫번째는 믿은 적이 없는 분을 그들이 어떻게 부를 수 있느냐고 한 것이다. 그런데 믿으려면 들어야 한다. 그래서 두번째는 그 이전 단계로 거슬러 올라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그들이 믿을 수 있느냐고 한 것이다. 그런데 들으려면 선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세번째로 들으려면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그들이 듣겠느냐고 한 것이다. 그런데 선포하는 사람이 있으려면 보냄을 받은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네번째로 보내심을 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들이 선포할 수 있느냐고 한 것이다. 13-15절의 이러한 네가지 질문으로 강조하려는 말은 마지막에 있다. 이미 전하는 자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다수는 3인칭 복수 동사들은 9:30-10:21절에 나오는 3인칭 복수와 동일하기에 유대인들이라고 말한다. 유대인들은 주의 이름을 부를 충분한 기회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이 늘 입에 달고 살던 율법의 내적인 의미가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기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동안 충분한 기회가 제공되지 않았고 지금 하나님께서 친히 위임하신 참된 사자들에 의해 실제로 분명하게 선포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유대인들에게 충분한 기회가 제공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오늘날은 새로운 소식을 알리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 뿐 아니라 전화, 이메일, 문자메세지, facebook 이나 twitter, 카톡 같은 것도 있다. 하지만 옛날에는 전하는 자가 직접 가서 말로 전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편지를 보낼 수 있었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문맹이었던 사회에서는 누군가가 직접 가서 그 편지를 큰 소리로 낭독해줘야 했기에 결국 선포하는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15절의 선포한다는 말은 사람을 보내 직접 소식을 전한다는 말이다. 왕의 명령을 전하는 사람은 왕의 명령이 기록된 편지를 들고 직접 달려가서 백성들 앞에서 큰 소리로 선포했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도 전하는 참된 사자들에 의해 이미 선포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소식은 정말 기쁜 소식이라는 것을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함으로 알리고 있다.

이사야의 말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얼마나 아름다우냐는 것이다. 기쁜 소식이란 원래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돌아온다는 소식이다. 이 소식을 고통받고 있던 이스라엘에 전하는 발걸음이 정말 아름답다고 한 것이다. 제사장, 학자, 정치가 같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이스라엘을 재건하기 위해 바벨론을 떠났다는 것이다. 이는 얼마 있지 않으면 저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저들이 돌아오면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당시 성전은 파괴되고 폐허 속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저들은 하나님을 예배하지도 못한 채 억압 속에서 살았다. 이제 다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된다니 얼마나 기쁜 소식이었겠는가?

바울은 바벨론 포로귀환 소식이 그처럼 기쁜 일이었다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소식은 얼마나 더 기쁜 소식이겠느냐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로 회복될 것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더 기쁜 소식이라는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를 통해 예배하는 공동체가 회복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공동체는 이스라엘 만이 아니다.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 상관없이 구원을 얻는 공동체라는 것이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전하는 자를 이미 보내셨다. 우리 모두가 전하는 자들이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여러분의 발걸음이 정말 아름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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