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0:8-9 구원은 아주 가까운 입과 마음에 있는데 바울 일행이 습관처럼 전하는 믿음의 말씀에 있다. 그 말씀에 따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입술로 고백하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
이전 말씀에서 레위기의 모세는 율법을 행하면 살 것이라 했지만 아무도 그럴 수 없었고 신명기의 모세는 율법의 완성은 하늘 끝까지 올라가고 땅 속 깊은 곳까지 내려가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구원은 아주 가까운 입과 마음에 있는데 바울 일행이 습관처럼 전하는 믿음의 말씀에 있다며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입술로 고백하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8절은 그러나 란 말로 시작한다. 개역이나 새번역 모두 그러면이라고 번역했지만 “그러나” 라고 해야 맞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잘못이해하고 있었던 것을 앞에서 지적한 것이다. 모세가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했다고 떠드는 유대인들에게 “그러나” 라고 말함으로써 모세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시 신명기30:14의 모세의 말을 인용하면서 말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이 네게 가까이 있다.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고 했다.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간직하던 방식을 두고 한 말이다. 당시에는 글을 아는 사람은 소수였기에 회당이나 성전에서 큰 소리로 낭독해주면 그것을 간직하려고 계속 반복해서 암송했기에 한 말이다. 그래서 입술에 있고 마음에 있다고 한 것이다. 시편 1편에서 묵상하는 자라는 말도 바로 입술로 암송하고 마음으로 되뇌이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이는 율법을 완성하고 구원에 이르는 길이 하늘 끝에 있는 것도 아니고 끝도 없이 깊은 땅속에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날마다 성경을 입술로 암송하고 마음으로 되뇌이는 입과 마음에 있다는 것이다. 율법을 완성하여 구원에 이르는 길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바울과 많은 복음전하는 자들이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전파한다는 말이 습관적인 행동을 가리키는 현재형이다. 바울 일행이 날마다 습관처럼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앞뒤가 안맞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서로 상황이 달랐기 때문이다. 레위기는 율법을 전하면서 지키면 산다고 덧붙인 말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고 형식적으로 지키던 저들을 보고 율법의 완성은 입과 마음에 있다고 덧붙인 것이다. 따라서 절대로 반대되는 뜻이 아니라 본뜻을 알리기 위해 추가한 말이다.
바울시대의 상황이나 오늘날의 상황은 율법을 처음 받던 레위기 때보다는 신명기 때의 상황이다. 법도 개정된 법이 효력이 있는 것이다. 레위기의 말은 모세가 기록했다고 했지만 신명기의 말은 모세가 말했다고 했다. 고대에는 말로 증언한 것이 기록된 것보다 훨씬 더 권위있게 받아들였다.
9절은 8절에서 말한 바울 일행이 습관처럼 전하는 믿음의 말씀이 무엇인지 설명한 것이다. 당신이 만일 입으로 고백하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무엇을 입으로 고백해야 하는가? 예수가 주님이라는 것을 입으로 고백하라는 것이다. 원래 주님이란 말은 원어로 Kurios인데 바울 당시엔 로마황제를 신으로 부르던 호칭이었다. 그 뜻은 로마황제를 신으로 모시고 헌신하겠다는 고백하는 것이다. 이런 신적 호칭을 크리스천들이 입으로 외친 것은 예수가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동시에 그분께 헌신을 고백하던 말이다.
무엇을 마음으로 믿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네 입에 있고 마음에 있다는 말은 날마다 입으로 암송하고 마음으로 되뇌인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사람들 앞에서 예수를 구주로 믿는다고 입술로 고백하고 마음으로 확신하는 것도 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곧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참 쉬운 것 같지만 어려운 일이다. 초대교회 시절에는 말로 믿는다고 말하면 곧 고난을 당하거나 심지어는 죽음을 당해야 했다. 그랬기에 당시에는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말로 믿는다고 하기는 쉽다. 하지만 마음으로 부활을 완전히 믿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목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믿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보지 않은 것도 믿고 확신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자신이 보지 못했어도 믿을만한 사람이 보았다고 증언하면 대부분 믿는 법이다. 예를 들면 본인과 본인의 아내가 2009-2010 동안 24인치정도 되는 redfish를 낚시 갈때마다 7-9마리 잡았다면 믿겠는가? 2009년 여름 우리 둘이 하루저녁에 white trout을 300마리잡았다면 믿겠는가? 보지도 않았지만 평소 거짓말 안하던 목사가 그랬다니 대부분 듣고 믿었다. 성경에 있는 증인들도 믿을만 한 사람들이다. 우리도 역시 그들이 죽어가면서도 그렇게 증언했기 때문에 믿어야 한다. 그렇게 입으로 고백하고 마음으로 믿으면 의롭다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 것이다.
이 말은 구원이란 그렇게 하늘 끝에 있는 것이나 땅속 깊은 곳에 있는 것을 가져오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늘과 땅은 먼 곳, 갈수 없는 곳이고 입과 마음은 가장 가까운 곳이다. 이 네 장소의 비교를 통한 바울의 강조점은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은 가까이 있고 이미 준비되어 있어 쉽게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특별히 구원의 복음은 우리가 날마다 읽고 암송하고 묵상하는 말씀 안에 있다.
예수께서도 마11:28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고 하셨고 30절에서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 하셨다. 무거운 짐이란 바로 하늘 땅만큼 멀리 있어 도달할 수 없는 율법을 말한다. 가벼운 짐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수많은 율법 조항들을 지키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입으로 고백하여 순종하는 것이 바로 가벼운 짐을 지는 것이다.
구원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입과 마음에 있다는 말이다. 우리와 가까이에 있는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입으로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