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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이사야 › 63:15-19

Dawn Word

이사야 63:15-19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돌아보시고 구원해 주지 않으시면 아무런 방법이 없습니다

2019. 1. 21. · 안정섭 목사 · 이사야 63장 강해 설교

이사야 63:15-19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을 굽어 보시고 불쌍하게 생각해 주셔서 구해 주시고 다시금 하나님을 예배하고 영광을 돌리는 백성이 되게 해 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하: 회개하고 돌아오길 기다리시는 하나님

나: 하나님의 사랑이 말씀으로 기록되어져 있으니 그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고 전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자.

이전 말씀은 하나님께서 젖먹이를 돌보는 엄마처럼 이스라엘을 한결 같은 사랑으로 구해주셨고 이스라엘이 당하는 어려움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잘못이니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고 돌아오셔서 도와 달라는 내용이 이어진다.

15절은 "하늘로부터 굽어 살펴 주십시오" 라는 말로 시작한다. 하늘이란 실제 물리적인 하늘이나 우주 공간이 아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을 하늘이라 한 것이다. 굽어살펴 달라는 말은 보고 생각해 달라는 것이다. 이어서 "주님이 계시는 거룩하고 영화로우신 곳에서 굽어보아 주십시오" 라고 했다. 하나님 계신 곳을 이번에는 거룩하고 영화로운 곳이라 했다. 굽어본다는 말은 보고 사실을 알아달라는 것이다. 자신들의 처지를 보시고 불쌍하게 생각해 주시고 또 알아달라는 뜻이다.

15절 뒷부분은 "주님의 영성과 권능은 이제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묻는다. 주님의 열정과 그 힘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63:12-14절에 나온 출애굽 때 하나님의 열정과 그 힘이 지금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들이 당하는 어려움을 보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 생각해서 자신들을 보고 생각해주시고 알아달라고 한 것이다.

"이제 나에게는 주님의 자비와 긍휼이 그쳤습니다"

라고 했다. 주님의 긍휼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내장이 요동한다는 뜻이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 때 속이 찌릿하게 아픈 것을 표현한 말이다. 주님의 자비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나 같은 배에서 태어난 형제간의 사랑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멀리 떠나있다는 것이다.

16절은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라고 한 것이다. 앞에서 아버지의 사랑과 자식을 불쌍히 여겨 창자가 요동을 치는 것 같은 것이 이제 떠나있다고 느끼기에 "주님은 우리의 아버지" 라고 한 것이다. 이어서 "아브라함이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여도 오직 주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리거 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고 이스라엘은 이삭의 아들이고 이스라엘의 혈통의 조상이다. 둘 다 자신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은 분명히 자신들의 아버지라는 것이다. 또 "옛적부터 주님의 이름은 우리의 속량자이십니다" 라고 했다. 값을 지불하고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이는 또다시 회복시켜 달라는 간청이다.

17절은 "주님, 어찌하여 우리를 주님의 길에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굽어지게 하셔서 주님을 경외하지 않게 하십니까?" 라고 했다. 이는 자신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반복되는 죄악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이 주님의 길에서 떠나지 않도록 해 주시고 죄악에서 빠져나와 주님의 길을 걷도록 도와 주셔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주셔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해 달라는 간청이다. 그러나 자신들은 돌아갈 능력이 없기에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로 돌아와 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과 다시 동행할 수 있을 거라는 뜻이다.

18절은 "주님의 거룩한 백성이 주님의 성소를 잠시 차지하였으나 이제는 우리의 원수들이 주님의 성소를 짓밟습니다"

라고 했다. 잠시 차지했다는 것은 다윗과 솔로몬의 초기 시대에는 하나님을 거룩하게 섬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후 거짓으로 섬기는 자들이 성소를 차지하고 짓밟은 것이고 또 이방나라들이 쳐들어 와서 짓밟은 것이다. 이는 다시 성소를 차지하고 거룩하게 섬기게 해 달라는 것이다.

19절은 "우리는 오래 전부터 주님의 다스림을 전혀 받지 못하는 자같이 되었으며 주님의 이름으로 불리지도 못하는 자같이 되었습니다"

라고 했다. 이사야는 오늘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이제 이스라엘이 다시 성소를 차지하고 세계를 지배하게 해 달라는 뜻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범죄하고 하나님을 떠났는데도 하나님께서 벌하셔서 그 죄를 멈추게 하지 않으시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께서 강제로라도 돌이키게 해 주실 수는 없는지 간청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금 거룩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소유로 불리워지게 해 주실 수는 없는지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는 것을 하나님께서 강제로 돌이키게 하고 그 마음을 바꾸어서 회개하도록 만드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이는 마치 변심해서 돌아선 연인을 약을 먹여서 마음이 다시 자기에게 돌아오게 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오길 원하시는 것이고 그들의 자발적인 찬양을 받길 원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사야는 지금 하나님께서 죄악된 이스라엘에게 돌아오셔서 저들을 강제로 변화시켜 주지 않으신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기차 철로와도 같이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관계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사야 전체를 읽어보면 그 해결책은 메시야에게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들려주시고 보여주신 것이다. 그래서 메시야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은 강제로 마음을 바꾸시거나 변화시키지 않으신다. 하나님 편에서 우리에게 다가 오셔서 들려 주시고 보여주실 뿐이다. 결국 회개하고 돌아서는 것은 우리 인간들의 몫이다. \ 구원의 길은 오직 하나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작은 예수가 되어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보여주어 하나님께로 나오게 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강제로 사람들을 변화시키시지 않으신다. 다만 말씀과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실 뿐이다. 이제 그 책임은 우리 각자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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