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63:7-14 하나님께서 젖먹이를 돌보는 엄마처럼 이스라엘을 한결 같은 사랑으로 구해주셨다. 이스라엘이 당하는 어려움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잘못이니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려라.
하: 한결 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
나: 지금까지 지내온 것 모두가 다
주의 크신 은혜임을 고백한다. 앞으로도 우리 주님께서는 나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믿고 확신한다. 환난 중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며 감사하도록 하자.
이전 말씀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은 대적들을 진노로 짓밟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셔서 시온으로 돌아오신다고 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지난날 구원해 주셨던 일을 회상하며 되새긴다.
7절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일들을 회상하는 말로 시작한다. 먼저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변함없는 은혜"는 원어에서 여호와의 헤세드이다. 그렇게도 하나님을 거역하고 딴길로 갔던 이스라엘을 계속해서 구원해서 제자리에 갖다 놓으신 은혜를 말하는 것이다. 구약성경을 피상적으로 읽으면 하나님은 진노의 하나님이라고 말하기 쉽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하나님의 진노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참고 또 참으시다가 깨닫게 하기 위해 벌을 내리신 것 뿐이고 구약 전체가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으로 가득하다. 그걸 생각하면서 주님께서 자신들에게 해 주신 일로 주님을 찬양한다는 것이다.
그 찬양의 근거는 먼저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 이다. 베푸신 은혜라는 말은 젖을 뗀다고 할 때 쓰이기도 한 말이다. 주님께서 그동안 젖먹이를 보살피듯 자신들을 잘 보살펴 주셨고 이젠 젖을 떼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말이 두번이나 반복된다. 어떻게 잘 보살펴 주셨는가? 원어에서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은 "크신 은총" 이라는 말이다. 이는"많은 선하심" 이라는 뜻이다. 젖먹이를 돌보듯 정성껏 돌보아 주시되 먼저 정말 많은 선하심을 베풀어주셨다는 것이다. 이는 평소에 정말 많은 좋은 것을 주셨다는 것이다.
이어서 잘 보살펴 주셨다는 말이 또 나온다. 어떻게 잘 보살펴 주셨는가? 이번에는 "그의 긍휼과 그의 풍성한 자비"로 보살펴 주셨다고 한다. 앞에서 많은 선하심을 베푸셨다는 말은 평소에 아무 일이 없을 때에 이스라엘에게 좋은 것을 많이 주셨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의 긍휼"은 이스라엘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불쌍히 여기심으로 돌보셨다는 뜻이다. 이는 어린 아이가 많이 아플 때 정성껏 돌보신 하나님의 모습이다. 또 "풍성한 자비" 란 하나님을 끊임없이 배반했을 때도 셀수도 없이 많은 한결 같은 사랑으로 돌보셨다는 뜻이다. 이는 반항하는 십대와 같이 끊임없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항할 때에도 셀수없이 용서하며 한결 같은 사랑으로 돌보셨다는 것이다. 이사야가 찬양하는 근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녀를 돌보듯 최고로 잘 돌보아 주셨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잘 돌보아 주셨는가? 8절은 7절의 "크신 은총" 을 자세히 설명한 말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그들은 나의 백성이며 그들은 나를 속이지 않는 자녀들이다" 하셨다는 것이다. 자녀이기 때문에 돌보아 주셨다는 것이다. 속이지 않는 자녀들이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한번도 배반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앞으로 배반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뜻이기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인 이스라엘을 신뢰하시는 모습을 나타낸 말이다. 자식은 부모를 속일지라도 부모는 자식을 믿어주며 "이제 다시는 나를 속이지 않을거야" 라고 기대하시는 말씀이다. 그래서 그렇게 한없이 용서해 주시고 또 용서해 주셨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들의 구원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라고 한 것이다. 그렇게 배반하고 우상숭배를 하던 이스라엘을 한없이 용서하고 구해주시며 "이제는 날 배반하지 않을거야"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9절은 7절의 "그의 긍휼" 이라는 말을 자세히 설명한 말이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고난을 받을 때에 주님께서 친히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천사를 보내셔서 그들을 구하게 하시지 않고 주님께서 친히 그들을 구해주셨습니다. 옛적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을 치켜 들고 안아 주셨습니다" 라고 했다. "천사를 보내셔서 그들을 구하지 않고 주님께서 친히 그들을 구해주셨습니다" 라는 말은 원어에서 "그의 얼굴의 천사가 그들을 구했습니다" 라는 뜻이다. 천사가 곧 하나님의 임재라는 뜻이다. 이는 구약성경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사람의 모습으로 임하셨던 것을 말한다.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천사들도 나중엔 주님이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구해주셨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아픈 아이를 직접 안아 주시고 눈물젖은 손으로 그 열을 식혀주며 어루만져 주는 엄마의 모습과도 같다.
10절은 7절의 "풍성한 자비" 라는 말을 자세히 설명한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자라서 반역하는 십대 청소년과도 같이 된 것이다. 이스라엘은 불량배들과 어울리며 마약하고 도적질을 하며 음란한 성관계를 해서 끊임없이 부모의 속을 썩이는 십대 청소년과도 같았다. 그래서 "그들은 반역하고 그의 거룩하신 영을 근심하게 했습니다" 라고 한 것이다. "그는 도리어 그들의 대적이 되셔서 친히 그들과 싸우셨습니다" 라고 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싸우셨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고 이스라엘이 변했다고 고백한 것이다. 하나님은 단지 깨닫게 하려고 이스라엘의 대적이 되어 이스라엘과 싸우신 것이다.
11-13절은 이렇게 하나님을 대적하던 이스라엘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11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적이 되셔서 이스라엘을 공격하시자 이스라엘은 지난날 모세의 날을 생각하며 물었다는 것이다. "그의 백성 곧 양 떼의 목자들을 바다로부터 올라오게 하신 그 분이 이제는 어디에 계시는가?" 라고 물었다. 모세와 아론의 인도를 따라 홍해를 건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거룩한 영을 넣어주신 그분이 이제는 어디에 계시는가?" 라고 물었다. 모세와 아론에게 하나님의 영을 불어넣어 주어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고 백성들을 가르치게 하신 그 분이 지금은 어디에 계시느냐는 질문이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회상하는 일은 12절에서 계속 이어진다. 앞에서는 분명하게 밝히지 않은 것을 이제 모세의 이름까지 말하며 출애굽 사건을 구체적으로 말한다. "그의 영광스러운 팔로 모세를 시켜서 오른 손으로 그들을 이끌게 하시며 그들 앞에서 물을 갈라지게 하셔서 그의 이름을 영원히 빛나게 하신 그분이 이제는 어디에 계시는가?" 하나님의 영이 모세의 오른손과 함께 하셔서 놀라운 능력을 행해 주셨다는 것이다. 그분이 어디 계시냐는 것이다.
13절은 "그들이 깊은 바다로 걸어가게 하신 그분이 이제는 어디에 계시는가?" 묻는다. "말이 광야를 달리듯" 이라는 말은 깊은 바다를 걸어가는 모습을 비유로 표현한 것이다. 메마른 사막과 깊은 바다는 완전히 반대이다. 깊은 바다를 메마른 사막을 달리는 말처럼 거침없이 통과하게 하신 그분이 지금은 어디에 계시냐는 것이다.
14절 앞부분은 "주님의 영이 그들을 마치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 떼처럼 편히 쉬게 하시지 않았던가?: 라고 말을 한다. 이는 높은 지역에 있는 풀밭에서 풀을 충분히 뜯게 한 다음 골짜기로 양떼를 이끌고 내려가셔서 양떼에게 물을 마시게 하고 쉬게 하시는 그림이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만나로 먹이시고 반석에서 샘물이 나게 하셔서 마시고 쉬게 하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회상하며 하는 말이다.
14절 뒷부분은 "주님께서 이렇게 주님의 백성을 인도하셔서 주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라고 했다. 계속해서 과거에 그렇게 자신들을 인도하시던 하나님 당신은 어디에 계시냐고 따지듯 묻다가 갑자기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일을 인정한다. 회상해보니 그렇게도 놀라운 은혜로 인도하셨는데도 하나님께 반역을 했던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인도하시고 먹이시고 쉬게 하신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라 자신들의 잘못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입을 다물고 "주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라고 여호와를 인정한 것이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그렇게 자상하게 돌보시다가 갑자기 변하셔서 자신들을 대적들에게 포로로 잡혀가게 하신 일에 따지듯 묻는 내용이다. 과거의 그 영광의 하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느냐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들이 하나님을 반역한 것을 생각하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이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을 발견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환난과 우리의 모든 어려움도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들의 잘못이다. 우리가 받은 은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보다 다른 세상 것들을 더 사랑한 것이 문제이다. 우리도 이사야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인도해 주셨던 일들을 생각해 보자. 과거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던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와 찬양을 드리자. 그러면 지금 우리가 처한 모든 어려움에서도 우리를 구해주시고 인도해 주실 것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