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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이사야 › 63:1-6

Dawn Word

이사야 63:1-6

진노의 포도즙틀을 밟으시는 하나님

2019. 1. 19. · 안정섭 목사 · 이사야 63장 강해 설교

이사야 63:1-6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은 대적들을 진노로 짓밟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셔서 시온으로 돌아오신다.

하: 대적들을 멸하시는 하나님

나: 우리 주님 다시 오실 그날이 오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분명히 알리도록 하자. 우리 성도님들 중에는 진노의 포도즙틀에 들어가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길 기도하자.

이전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승리한 왕같이 그 백성들을 찾아 구원해서 돌아오실 길을 높고 평탄하게 만들라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바람난 아내 같은 그 백성들을 한결 같은 사랑으로 용서하시고 다시 데려오신다고 했다. 이제 주님께서 대적들을 짓밟아 멸하고 개선하는 왕의 모습이 이어진다.

1절은 주님이 언제 그 백성들을 데리고 오실지 지켜보던 파수꾼이 예루살렘 성벽에서 외치는 소리이다. 파수꾼은 "에돔에서 오시는 이분이 누구신가?" 라고 큰 소리로 외친다. 에돔은 이스라엘 남동쪽에 있던 곳이고 에서의 후손들이 사는 땅이다. 이스라엘의 영원한 적이 에돔이다. 주님이 에돔에서 오신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붉게 물든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오시는 이분은 누구신가?" 라고 했다. 보스라는 에돔의 수도이다. 붉게 물든 옷이란 밝게 빛나는 붉은 선홍색 옷이다. 대적들을 모두 무찌른 승리의 왕이시기에 대적들의 피로 물든 옷이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말미암아 선홍색으로 빛이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피가 많이 묻은 더러운 옷이 아니다. 이어서 "화려한 옷차림으로 권세 당당하게 걸어오시는 이 분은 누구신가?" 라고 묻기 때문이다. 가장 존귀한 자의 옷을 입고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걸어오시는 분이 누구시냐고 묻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분은 "그는 바로 나다. 의를 말하는 자요 구원의 권능을 가진 자다" 라고 대답하신다. 의를 말하는 자 라는 말은 "의 안에서" 말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의 안에서 라는 말이기에 언제나 항상 의로우신 분이 말씀하신다는 뜻이다. 항상 의로움 안에 계시며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다. 또 구원의 권능을 가진 자라고 했다. 대적을 완전히 물리치실 수 있는 권능을 가지셨기에 그 백성들을 대적들의 손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분은 대적을 물리치고 그 백성을 구원하실 힘이 있는 분이실 뿐만 아니라 늘 의로움 안에서 말씀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2절은 이제 그 위대하신 전사가 파수꾼에게 가까이 다가오자 파수꾼이 묻는 말이다. 한국말에서는 존대말이 있기에 반말처럼 느끼기 쉽기에 "어째서 당신의 옷은 붉으며 어째서 포도주 틀을 밟는 사람의 옷과 같으십니까?" 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승리하고 개선한 왕의 옷이 붉은 이유는 대적들의 피 때문이다. 하나님의 의로 악한 대적들을 멸하셨기 때문에 튀긴 핏빛이다. 또 이는 마치 포도주 틀을 밟는 사람의 옷과 같은 빛이다. 포도주 틀을 밟는 것은 대적들을 멸하시는 모습을 그림처럼 표현한 말이다.

3절은 이제 위대한 전사가 파수꾼에게 대답하는 말이다. "나는 포도주 틀을 밟듯이 민족들을 짓밟았다. 민족들 가운데서 나를 도와 함께 일한 자가 아무도 없었다" 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혼자 그 일을 하셨다는 뜻이다. 민족들이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악한 자들을 포도즙틀에 넣고 홀로 그렇게 짓밟으셨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 이는 하나님의 분노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분내어 민족들을 짓밟았으며 내가 격하여 그들을 짓밟았다" 라고 하신 것이다. 악한 자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피가 내옷에 튀어 내 옷이 온통 피로 물들었다" 라고 답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한결 같은 사랑으로 한없이 용서하시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때가 되면 그 분노를 터트리시고 진노하셔서 완전히 밟아 터트려버리시는 분이신 것이다.

4절은 "복수할 날이 다가왔고 구원의 해가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라고 했다. 3절에서 분노하시고 진노하셔서 대적들을 다

밟아 터트렸다는 말에 대한 보충설명이다. 하나님은 단순히 화가나서 밟아버리신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는 참고 또 참으시다가 회개하지 않는 악한 자들을 모두 멸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단순한 화풀이가 아니라 그 백성들을 구하기 위한 분노인 것이다.

5절 앞부분은 "아무리 살펴보아도 나를 도와서 나와 함께 일할 사람이 없었다. 나를 거들어 줄 사람이 없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라고 했다. 거들어 줄 사람이 없다는 말은 떠받쳐 줄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아무도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을 도와주지 않고 홀로 싸우셨다는 뜻이다. "그러나 분노가 나를 강하게 하였고 나 혼자서 승리를 쟁취하였다" 라는 말은 "나의 팔이 나를 구원을 이루었고 자의 진노가 나를 떠받쳤다" 라고 했다. 하나님을 떠받쳐 준 사람은 아무도 없고 오직 하나님의 진노가 하나님의 팔을 떠받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가 떠받친 팔이 대적을 치고 그 백성들을 구원하셨다는 것이다.

5절은 주님이 홀로 진노하셔서 대적들을 팔로 치신 그림이라면 6절은 이제 쓰러진 대적들을 주님 홀로 짓밟고 계시는 그림이다. "내가 분노하여 민족들을 짓밟았으며" 라고 했기 때문이다. 또 "내가 진노하여 그들을 취하여 비틀거리게 했고 그들의 피가 땅에 쏟아지게 하였다" 라고 했다. 이는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 그들에게 쏟아졌다는 뜻이다. 대적들이 취한 것은 자신들의 피이다. 대적들은 자신들의 피의 잔에 빠져 취한 것이고 비틀러기며 쓰러진 것이다. 그들의 피가 땅바닥에 쏟아진 것이다. 포도즙 틀에 담긴 포도들처럼 자신들이 으깨져서 붉은 포도주가 나오고 자신들이 그 붉은 포도주에 빠져 죽는 그림이다.

이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서 한결 같은 사랑으로 인내하며 회개하고 돌아오길 기다리고 계신다. 그러나 심판의 날이 오면 그분은 다시 오셔서 대적들은 포도즙틀에 담긴 포도들처럼 짓밟아 완전히 멸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다. 이 구절을 보고 하나님이 잔인하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참고 또 참으시며 기다리시다가 마지막에 그 분노를 터트리신 것이다. 그 분노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의로운 분노이다.

아직은 회개하고 돌아설 시간이 남아있다. 이 사간에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며 본보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으면 영원히 멸망할 것도 알려주어야 한다. 그날 곧 심판날이 오면 우리는 구원을 받겠지만 끝까지 믿지 않은 자들과 믿는 척만하고 살았던 사람들은 완전히 밟혀 터지고 영원히 멸망하는 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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