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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로마서 › 10:2

Dawn Word

로마서 10:2

참된 지식을 따라 달리라

봉인된 두루마리 편지와 로마로 이어진 길 · 로마서 1장

2025. 11. 11. · 안정섭 목사 · 로마서 10장 강해 설교

로마서 10:2 바울은 이스라엘도 구원 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를 과거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증언하기를 이스라엘은 열심히는 달리지만 하나님의 경기 규칙을 따른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은 자신을 핍박하는 이스라엘을 위해 진심으로 간절히 기도하며 그들도 구원을 받기를 바라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왜 그렇게 안타깝게 호소하는지 이유를 밝힌 것이다.

1절과 2절 사이에 원어에는 왜냐하면이란 접속사가 있다. 이 말은 왜 그렇게 이스라엘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가 하면 이란 뜻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나는 증언한다는 말이다. 나는 증언한다는 말은 바울 자신도 그러한 똑 같은 잘못을 분명히 저질렀고 경험했기 때문에 너희들 입장을 아주 잘 안다는 말이다. 자신이 분명히 겪은 일이고 그러한 잘못에서 빠져나왔기에 그 경험을 증언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은 저들의 잘못된 점을 증언하는 말이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열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열심이긴 한데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경기 규칙도 모르고 무작정 열심히 달리기만 한다는 것이다. 마치 Forrest Gump처럼 무작정 달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보지도 않고 전력을 다해 달린다는 것이다. 오늘날 자살폭탄 테러를 하는 이들도 바울 당시 이스라엘과 비슷한 사람들이다.

새번역은 올바른 지식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고 의미를 살려 번역했다. 원어는 개역처럼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는 계속해서 이수미안 게임의 달리기 경기의 비유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 규칙을 따라 달려야 하는데 경기을 따르지 않고 자기들 멋대로 열심히만 달린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표를 알고 달려야 하는 것이다. 어디가 결승선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경기하는 것인지를 아는 것이 바로 지식을 따라 달리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선포하시는 규칙은 듣지도 않고 자기들이 세운 규칙을 따라 무작정 열심히 달리면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향해 종교개혁자 캘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의 의를 얻는 첫 단계는 우리가 소유한 의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다.

바울당시 유대인들은 탄탄한 근육을 갖고 있는 아주 잘 훈련된 마라톤 선수와도 같았다. 이에 비해 이방인들은 배만 불룩 나오고 한번도 제대로 달려본 적이 없는 사람들과도 같다. 참가하는데 뜻을 두고 아이 손잡고 마라톤에 참여한 사람처럼 말이다. 모두가 출발선 근처에 모여서 경기 규칙을 듣고 있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함께 준비 운동하는 이빙안들을 보고 비웃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는 자에게 상을 준다고 하시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반석위에 서기만 하면 상을 준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물론 유대인들도 그 말을 듣기는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엉터리 경기가 어디있어!” 하면서 무시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훈련해온 것처럼 해야 구원을 얻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만약 반석위에 올라가기만 한다면 죽도록 훈련한 자기들과 배불뚝이 애기 아빠와 차이가 없을 것이기에 억울하기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억울해도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규칙을 선포하신 이상 그동안 자기들이 해왔던 경기규칙을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선포한 경기 규칙에 따라가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 3:9에서 자신은 그리스도라는 반석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다. 율법에서 생기는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를 얻으려 한다고 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려면 그 반석을 믿고 그 위에 서야 그 커다란 반석의 안에 머무는 것이다. 바울도 스스로의 경기규칙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경기규칙에 따라 하나님으로부터 의의 면류관을 받고 싶다는 것이다.

오늘날 신자들도 유대인들처럼 생각하기 쉽다. 특히 오랫동안 신앙생활하며 경건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특히 자신들처럼 살아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하기 쉽다. 망나니처럼 세상에서 살다가 이제 회개하고 믿은 사람과 똑같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칙이니 어린아이들처럼 It’s not fair! 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진흙인데 건방지게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을 불공평하다고 외치며 자신이 정한 규칙을 따를 수는 없는 것이다.

저들이 지식이 없다는 것은 전혀 모른다는 뜻이 아니다. 듣기는 들었는데 피상적으로 흘려듣고 순종하지 않은 것이다. 자신들의 생각이 올바른 규칙이고 하나님의 새로운 규칙은 말이 안된다고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흘려듣고 순종하지 않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칙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이처럼 무지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해 마택복음 15:14에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고 했다. 이도 역시 올바른 지식이 없다는 말이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것은 예수님 말씀만이 아니다. 이사야 5:13에 보면 그러므로 나의 백성은 지식이 없어서 포로가 될 것이라고 했다. 또 호세아 4:6에 보면 내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라고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다는 것은 바울 당시의 유대인 뿐 아니라 역사를 통해 계속되어 온 것이다. 자기들의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맞으면 은혜 받았다고 하고 아니면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모두 자기들 생각대로 열심히만 달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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