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9:22-24 하나님께서 만일 멸망하도록 되어있는 자들을 참으시고 영광 받도록 준비하신 자들에 대해서 풍성한 영광으로 알리신다 해도 진흙과 같은 인간들이 어찌하겠는가? 하나님께서는 구원할 자들을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인들 가운데서도 부르셨다.
이전 말씀에서 인간이 창조주에게 불합리하다고 따지는 것은 마치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에게 잘못 만들었다고 따지는 것과도 같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진노의 대상들과 자비의 대상들에 대하시는 하나님의 태도를 비교하면서 하나님께서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인들 가운데서도 부르셨다고 하시는 내용이다.
22절은 “그러나 만일”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러나 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기에 대부분 영어 번역들과 한글 번역들은 생략했다. 이는 앞에서 토기장이가 귀히 쓸 그릇과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리가 있다고 비유로 비교한 것을 한걸음 더 발전시켜서 비교한 것이다. 22-23절을 시작하면서 그러나 라는 말을 바울이 사용한 것은 이번에는 귀히 쓸 그릇과 천히 쓸 그릇이 아니라 만들다가 뭉쳐서 내버릴 그릇과 영광 받도록 예비하신 그릇을 비교하는 질문을 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반전은 만들다가 뭉쳐서 내버리려 하는 그릇도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고 참으신다 해서 진흙덩어리들이 어쩌겠느냐는 것이다.
만들어 놓자마자 창조주에게 반역하는 진흙덩이 같은 인간들을 바로 뭉쳐서 내버리지 않으시고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놔두시는 장면이다. 보통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멸망받게 되어있는 진노의 대상들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멸망받게 되어있는 진노의 대상들은 이방인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여 죽이고는 다른 메시야를 다시 보내달라고 했다. 이런 건방진 유대인들이 바로 멸망 받게 되어있는 진노의 대상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 이시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람들을 오랫동안 참으신다고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멸망을 시키든 참으시고 그대로 두시든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이므로 우리가 왈가왈부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되 유대인 가운데서 뿐 아니라 이방인들 가운데서도 부르셨다고 했다. 우리란 구원받은 성도들을 말한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멸망 받게 되어있던 진노의 대상들이었다는 것이 여기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진노의 대상들인 유대인과 이방인들 가운데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다. 따라서 구원의 문제는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고 그 앞에 엎드리느냐 고개 세우고 반항하느냐에 달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