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9:10-13 이삭과 이스마엘과는 달리 에서와 야곱은 똑 같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는데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택하심이라는 원리에 따라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셨다.
이전 말씀은 혈통의 모든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들이 참된 이스라엘이라며 사라가 낳은 이삭의 예를 들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리브가가 낳은 쌍둥이 아들들의 예를 들면서 하나님께서 야곱을 택하신 예를 든 것이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도 약속의 자녀 이삭만이 참된 이스라엘이고 이스마엘은 아니라는 것이 바로 앞절에 나온 내용이다.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다 진짜 약속의 자녀는 아니라는 것이다. 혈통의 자손이 다 참된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두번째 예는 10-11에 나오는 리브가의 예이다. 10절은 “이 뿐만 아니라 ...까지도” 라는 공식으로 시작한다. 사라가 낳은 이삭만이 아니라 다음에 나오는 내용까지도 역시 혈통의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또 다른 예라는 것이다.
하지만 리브가는 이삭 한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둘을 낳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8-9절을 들었을 때 유대인 신자는 이스마엘이 여종의 몸에서 낳았기 때문에 참된 이스라엘이 아니냐고 반박을 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꼼짝 못할 증거를 들이댄 것이다. 리브가는 이삭 한 사람으로부터 쌍둥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혈통으로는 둘 다 똑같이 한 아버지와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기에 반박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둘 다 아브라함의 약속의 자녀 이삭과 그 사랑하는 아내 리브가에게서 난 아들들이다. 하지만 쌍둥이 중에 야곱은 약속의 자녀가 되고 에서는 약속의 자녀가 아닌 것이다. 이 두가지 증거를 들이대자 유대인 신자는 할말이 없었을 것이다. 바울의 완벽한 승리이다.
바울은 이어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하며 그 이유를 설명한다. 11절에 보면 태어나지도 않았고 또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택하심이라는 원리에 따라 하나님의 계획이 계속해서 머물러있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허수아비나 로보트로 만드셨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은 태어나기도 전에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미리 정하셨다는 뜻이다.
12절에 보면 이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부르시는 분께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한 것이다. 바울은 창세기 25:23을 인용하면서 증거한다.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13절은 “기록된 것과 마찬가지로” 라는 말로 시작하며 말라기 1:2을 인용한다. 그 이유는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였다”는 것이다.
말라기 1:2절의 문맥을 보면 야곱은 이스라엘 족속을 뜻하고 에서는 에돔 족속을 뜻하는 말로 사용한 것이다. 바울이 이러한 구절을 인용한 것은 단순히 개인을 말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에돔을 말한 것이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에게 형이 동생을 섬긴다는 것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다는 것이다. 이는 에돔 족속이 긴 세월동안 이스라엘에 복속되어 있던 것을 뜻할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족속이 착하고 하나님께 순종적이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 아니고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셨다는데 무슨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역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혈통의 이스라엘을 모두 구원하시는 것도 아니고 율법을 잘 지키고 할례를 행했기에 구원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고 결정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르는 것뿐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