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9:4-5 바울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특권을 입양된 아들과 하나님의 영광과 언약과 율법과 예배와 그리스도가 오실 것이라는 약속이라고 나열하며 그리스도는 육신으로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서 태어나셨지만 그는 영원히 찬송 받으실 하나님이시라고 말한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은 자신의 형제들과 친척들을 위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진 특권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나열하면서 그 마지막은 그리스도도 육신으로는 이스라엘의 족장들에게서 태어나셨다고 말하는 내용이다.
자신이 저주를 받아 영원히 멸망할지라도 구하고 싶은 사람들은 자기 동족은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4절에서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이란 말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부를 때 쓰는 말이다. 이스라엘이란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이라는 특별한 관계를 묘사할 때 쓰던 말이다. 당시 그리스 로마세계의 작가들은 이스라엘이라는 호칭 대신 유대인들(Jews)이란 호칭을 썼다.
이어서 바울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사람들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진 특권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나열하고 있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의 특권 중 첫번째는 입양된 신분이라는 것이다. 새번역은 자녀로서의 신분이라고 번역했지만 원어의 본래 의미는 입양된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 의미는 이스라엘은 본래 하나님의 가족이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로 그들을 자녀로 받아주셨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주시고 그 자손들을 자녀로 입양해 주셨다는 것을 가장 으뜸가는 특권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표현은 아니다. 구약에서나 신구약 중간기의 문서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구약에서는 내 아들 장자나(출 4:22), 아들(신 14:1; 호세아 11:1), 나는 이스라엘의 아비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렘 31:9)이라는 표현들이 나올 뿐이다. 신약의 다른 기록자들도 사용한 적이 없는 단어이다. 오직 바울만이 다섯 번을 사용한 말이다.
여기서 바울이 입양했다는 말을 사용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객관적인 실제이지만 아직 참으로 깨닫거나 체험하지 못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는 8:15절과 8:23절에서 사용한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바울이 말하는 이러한 관계는 계속 진행중이고 복음을 거부함으로 위기에 처해 있지만 이러한 입양된 아들의 신분은 진짜라고 말하며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 개개인의 구원을 확정해 주는 것이 아니고 믿음에 달린 것이다.
이러한 입양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방세계와 구별하여 하나님의 가족으로 세운 실제적인 것이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입양이 더 높은 입양이고 구약적 입양의 실체요 완성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입양된 아들이라는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더 높은 입양이라는 특권을 누리자고 말하려는 것이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입양된 것이라며 이방 사람들과 달리 누리고 있는 특권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진짜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라는 것을말하려는 것이다.
두번째는 영광이다. 영광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거하셨다는 말이다. 출애굽기 16:10에 보면 주님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났다고 했다. 또 출애굽기24:16-17에 보면 시내산에 이스라엘에게 임했다는 것이다. 영광이란 말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거하셨었다는 뜻이다. 이것도 역시 이스라엘이 누렸던 특권이라는 것이다.
세번째는 언약들이다. 여러 언약들이 있지만 그중에 창세기 15장과 17장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들을 말한다. 언약들이라는 말이 당황스럽기에 오래된 초기 사본들에도 단수로 기록한 것이 있다. 그러나 다수의 사본들은 복수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사본들의 증거는 분명히 복수이다. 이 계약은 여러차례 갱신되면서 확정이 되었기에 하나의 언약이 아니고 언역들이라는 복수로 되어있는 것이다. 보통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과 모세의 때에 맺은 언약과 여호수아의 때에 맺은 언약과 다윗과 맺은 언약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네번째는 율법이다. 이는 신명기 4:5-8에 나오는 것이다.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나서 광야에서 태어나 출애굽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대들에게 가르친 율법을 다시 확인하고 있는 장면이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가진 위대한 민족이 어디에 또 있느냐고 말한다.
다섯번째는 예배이다. 이는 원래 성막이나 성전에서 드리는 모든 제사와 예배를 가리키는 말이다. 기독교의 예배는 원래 성전에서 드리던 제사에서 온 것이다. 여기서 예배라는 용어는 본래 희생제사를 통해 드리던 것이라는 의미이지만 희생제사 없이 회당에서 예배드리던 것과 유대인 가정에서 드리던 기도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본래 성전에서 희생제물을 드리며 드리던 예배를 뜻하는 말이었지만 성전이 파괴되고 유대인들이 흩어진 뒤에는 희생제사 없이 회당에서 드리던 예배도 포함하는 말이다.
마지막은 약속이다. 이는 메시야를 보내겠다는 약속을 말한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잘 먹고 잘살게 해 줄 메시야를 기다렸기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 5절에 나오는 족장들이란 말은 약속이란 말에 대한 설명이다. 메시야가 올 것이라는 약속은 족장들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서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오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육신으로 이신 그리스도는 정치적 메시야가 아니라 모든 만물 위에 계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또 그리스도는 영원토록 찬송 받으실 자 라고 했다. 이 말은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을 간접적으로 표현할 때 쓴 말이다. 따라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지만 그분은 정치적인 메시야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분은 모든 만물위에 뛰어난 영원토록 찬송받으실 분이라는 것이다. 이분이 이스라엘을 통해서 온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특권이냐는 것이다. 여섯 가지 특권 중에 가장 놀라운 특권은 바로 약속된 메시야가 이스라엘을 통해서 오셨다는 것이다.
이런 6가지 특권들을 나열하면서 마지막에 메시야에 대한 약속을 말하고 있는 바울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이러한 특권들을 가진 이스라엘은 아직도 그리스도를 부인하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언제 메시야가 오시나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이 바울의 가슴을 쓰리고 아프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눈물로 자신의 가슴에 있는 슬픔과 고통을 말한 뒤 저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하나님의 양자가 됨으로 선택받은 족속이 된 것부터 시작해서 구약에 나온 특권들을 나열하다가 마지막에 하나님의 약속인 그리스도로 결론을 지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