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9:3 바울은 자신의 형제들과 친척들을 위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은 동족들이 회개하지 않는 것 때문에 큰 슬픔이 있고 끊임없이 심장이 아픈 병까지 생겼다는 것이 참말이라며 성령 안에 있는 자신의 양심을 증인으로 세웠다. 이어지는 3절은 동족을 위해 중보하는 마음이 참말이고 거짓이 아니라는 내용이다.
3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어떤 이는 2절에 나온 바울의 슬픔의 이유를 설명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수는 달게 받겠다는 말이 슬픔의 이유가 아니라 진짜라는 증거라고 말한다. 이어지는 내용으로 볼 때 왜냐하면은 자신의 말이 진짜이고 거짓말이 아닌 이유를 말한 것일 것이다.
원어에서는 바로 이어서 간절히 바란다는 말이 나온다. 개역은 원하는 바라고 번역했고 새번역은 달게 받겠다는 말로 번역했다. 이 말은 마음으로 원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마음으로 기도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대부분 이 말이 기도한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는 미완료 과거이기에 계속해서 그렇게 기도하고 있다는 뜻이다. 자신은 저주를 받더라도 자신의 혈육인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원을 계속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구절을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출애굽기 32:31에 보면 금송아지를 만들고 우상숭배한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되자 모세는 자기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달라고 했다. 모세는 이름을 지워달라고 했는데 바울은 이스라엘 대신 저주를 받게 해달라고 한 것이다.
저주를 받는다는 말은 단순히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진다는 의미를 뛰어 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드리기 위해 완전히 파괴한다는 뜻이다. 여호수아 7장에 나온 아간의 범죄에 나온다. 7:25에 보면 범죄한 아간을 돌로 쳐 죽이고 가족과 재산도 모두 돌로 치고 불살랐고 그 위에 큰 돌무더기를 쌓았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 저주를 받는다는 말의 의미이다.
사도행전 14:19절에 보면 유대인들이 바울을 쳐서 죽은 줄 알고 성밖에 끌어냈다고 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아간처럼 취급하고 돌로 쳐서 성밖에 던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저주를 받는다는 말의 문자적인 뜻이다. 이제 자기 동족들이 구원 받는다면 자신은 아간이 저주받은 것처럼 그리스도에게서 완전히 끊어져도 좋다는 말이다. 그래도 좋으니 유대인들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면 좋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말은 8장에서 아무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했기 때문에 신학적으로 말이 안되는 것이다. 이것은 신학적인 논리로 한 말이 아니라 멸망의 길로 가는 동족들 때문에 극단적인 슬픔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슬픔은 거짓말이 아니고 참말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