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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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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로마서 9:1-2

동족들 때문에 끊임없는 고통이 있다

봉인된 두루마리 편지와 로마로 이어진 길 · 로마서 1장

2025. 10. 27. · 안정섭 목사 · 로마서 9장 강해 설교

로마서 9:1-2 바울은 동족들이 회개하지 않는 것 때문에 큰 슬픔이 있고 끊임없이 심장이 아픈 병까지 생겼다는 것이 참말이라며 성령 안에 있는 자신의 양심을 증인으로 세웠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은 세상의 어떤 세력도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확신한다며 이기고도 남는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 자신의 마음에는 큰 슬픔이 있다고 말하는 내용이다.

1절에서 바울 자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안 한다고 했다. 다수는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말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바울 자신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존재로 그리스도 안에 있기에 참말을 하는 것이고 거짓말은 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어서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와 연합한 존재로 자신의 말이 진실하다는 것을 증거해 줄 두 증인을 내세운다. 두 증인이 함께 자신의 말이 참말이라는 것을 증거해 준다는 것이다. 그 중 첫번째 증인은 자신의 양심이다. 그러나 인간의 양심이란 연약한 존재이다. 그래서 성령 안에 있는 자신의 양심을 증인으로 내세운 것이다. 바울은 인간의 양심은 오류가 있을 수 있고 문화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의 양심은 진리의 성령 자신에 의해 비추어진 것이다. 바울의 두번째 증인인 성령은 바울의 양심을 품고 있는 상태이다. 둘이 함께 연합한 존재로서 바울의 말을 함께 증언한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아무도 믿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을 믿어주지 않았을까? 이것을 알려면 8장을 되새겨봐야 한다. 8장에서는 성령의 세가지 사역들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공동상속자인 것을 증거하고 계신다고 했다. 또 성령께서 우리의 고통을 아시고 우리를 위해 함께 신음한다고 했다. 이러한 성령님의 사역은 아무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말을 듣고 있던 유대인들은 그러면 율법은 어디갔느냐? 율법의 역할은 무엇이냐? 동족은 사랑하지 않고 이방인들만 사랑하는 넌 배신자다 라고 했을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유대인이나 로마교회로 돌아온 유대인 크리스천이나 같은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들을 향해 자신이 진정으로 이스라엘을 사랑한다고 한 것이다. 자신의 양심을 걸고 맹세하는데 성령께서도 증언해주신다는 것이다.

우리도 역시 우리의 양심 자체는 믿을 것이 못된다. 하지만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성령 안에 있으면 성령께서 보증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의 양심도 믿을 수 있다. 바울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자기를 쳐서 끊임없이 복종시키고 순종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있게 성령 안에 있는 자신의 양심을 걸고 진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도 역시 그렇게 순종해야 한다. 마르틴 루터도 그렇게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르며 살았기에 “내 양심은 하나님 말씀의 포로이다” 라고 했다.

뭐가 참말이고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입니까? 먼저 2절에 나온 내용이 참말이고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내용을 정리해보면 두 가지이다.

첫째 큰 슬픔이 내게 있고 끊임없는 고통이 내 심장 안에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슬픔이란 마음의 상태이고 이성적이거나 감정적인 것을 의미하는 반면 고통이란 결코 육체적 의미를 잃지 않는다고 말한다. 고통이라는 그리스어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분명히 육체적 고통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먼저 감정적으로 슬픔이 오고 그 다음에는 실제로 심장이 있는 부분이 아프다는 뜻이다.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들 때문에 너무 슬퍼서 심장이 아픈 병이 생겼다는 뜻일 수 있다.

이런 아픔을 경험해보았는가? 너무도 슬퍼서 심장이 아프게 된 일이 있었는가? 슬픔으로 인해 심장이 아파서 잠조차 이루지 못한 적이 있는가? 누구 때문에 그렇게 아프게 되었는가? 이것은 정말 사랑하는 사람 때문이다. 남편이나 아내나 자녀들 때문에 생긴 슬픔은 그렇게 심장이 아픈 병으로 발전할 수 있다.

바울이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은 유대인들이다. 그들은 바울 자신을 배신자라고 비난했다. 사랑하는 동족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멸망해 가는 것을 생각하면 끊임없이 슬퍼서 심장이 아픈 병까지 생겼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다.

슬픔과 고통이란 말은 70인역을 보면 이사야 35:10과 51:11에 나온다. 이 두 구절은 거의 똑같다.

주님께 속량받은 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들이 기뻐 노래하며 시온에 이를 것이다. 기쁨이 그들에게 영원히 머물고 즐거움과 기쁨이 넘칠 것이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질 것이다(사 51:11).

이사야는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사람들이 시온으로 되돌아올 것을 예언한 것이다. 그들의 기쁨은 이집트에서 노예살이 하다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쁨과도 같았을 것이다. 우리는 육체적 고통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에 기뻐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저들에게는 여전히 육체적 고통이 있었다. 진정한 기쁨은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하고 경배할 수 있게 된 것 때문에 기뻐한 것이다. 그것을 깨닫지 못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에서 힘들 때마다 이집트에서 잘 먹고 지내던 때를 그리워했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오던 때도 육체적인 고통에서 해방되었기에 기뻐한 것이 아니다. 당시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은 대부분 상류층 사람들이었다. 잡혀간 유대인 귀족들은 괜찮은 삶을 누렸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70년이 지나는 동안 그곳에 정착했기 때문에 돌아가도 좋다는 칙령을 내렸어도 돌아간 사람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 돌아가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편안한 삶을 기대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하고 예배하는 공동체를 회복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러한 기대 때문에 저들에게는 즐거움과 기쁨이 넘쳤다. 그리고 슬픔과 탄식이 사라졌다. 슬픔과 탄식이란 말은 로마서 9:2의 슬픔과 고통이란 말과 똑같은 말이다.

바울도 율법과 죄의 포로로 사로잡혀있던 동포들이 해방되어 그리스도께 돌아오는 꿈을 꾸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주로 유대인의 회당에 가서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 전했다. 그러나 아무리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쳐도 동족인 유대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돌을 던지고 죽이려고 쫓아다니기만 했다. 반대로 이방인들은 기쁨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보았다. 한편으로는 기뻤지만 동족들 때문에 큰 슬픔이 왔고 고통이 끊이지 않는 심장병으로 발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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