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4-5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가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참 뜻을 이루게 하시려고 죄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리신 것이며 그래서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정죄함을 받지 않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를 육신으로 이 땅에 보내셔서 속죄제물이 되게 하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4절은 독립된 문장이 아니라 3절에 딸린 절이다. 이 절에는 하나님께서 죄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하나님의 목적이 담겨있다. 그리스도께서 육신이 되시고 속죄제물이 되신 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가 율법의 요구를 이루게 하려는 것이라는 것이다. 원어에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게 한다는 말의 문자적인 뜻은 율법의 요구를 완벽하게 성취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이 율법의 요구를 완벽하게 성취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안되고 7장과 연결해서 이해해야 한다. 믿는 자의 삶은 순종을 향한 방향으로 전환되었지만 그들의 믿음에는 언제나 어느 정도 불신과 섞여 있으며 그들의 순종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미완성상태로 남아있는 것이다. 율법의 요구를 완벽하게 이루려는 노력은 결국 율법의 빈틈을 찾아서 불순종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자신이 이룬 의를 자랑하게 되어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거룩함을 채우려는 방향에서 하나님의 참 뜻을 향해 순종하려는 방향으로의 전환이다.
육신에 따라 사는 것은 율법을 따라 살면서 자신의 의를 드려내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은 자신의 의는 버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을 따라 사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에서 멈추면 안된다는 것이다.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참 뜻을 가르쳐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을 실천하며 날마다 날마다 거룩해지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의 법이 우리를 해방시켜준 목적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하셨을까?
Walter Chantry는 그의 책 God’s Righteous Kingdom에서 다음과 같이 답한다. “하나님의 중심의지가 인간들이 행복해지는 것에 있는 것처럼 설교자가 말한다면 군중들이 밀치고 밟히며 떼거리로 예수께 몰려들 것이다...... 사람이 거룩해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들이 영원히 비참하고 저주받은 상태로 있도록 할 것이다. Chantry의 말은 하나님의 중심의지는 우리의 행복이 아니라 우리의 거룩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 전체를 통해 나타나 있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다. 하지만 완벽한 거룩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점점 거룩해져 가길 바라시는 것이다.
5절은 왜나하면이라는 말로 그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이는 4절 끝에 나오는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살게 하신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그 설명은 5절만이 아니라 5-11절 전체에서 설명이 된다.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한다는 말은 7:21절에서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악이 그 옆에 함께 있다고 한 말과 연결해서 생각해야 한다.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이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한다는 말은 마음 속에 함께 있는 악이 원하는 일을 하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이는 갈라디아서 5:19-21절에 나오는 육체의 행실과 마태복음 16:23절에 나오는 예수께서 베드로를 책망하신 내용과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다. 갈라디아서에 나온 육체의 행실은 자신의 쾌락을 추구하는 성적 부도덕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믿는 우상숭배와 자신만 높이려고 하는데서 오는 사회적인 적대관계 이 세가지이다. 예수께서 베드로를 책망하신 것도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갈라디아서에 나온 세상적인 욕심만 채우려고 했기에 하신 말씀이다. 바울은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죄의 법의 포로가 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하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하는 사람도 갈라디아서 5:22-23절에 나온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과 자기통제에 관한 덕목들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성령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을 깊이 생각하고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하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