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1-3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정죄함을 받지 않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를 육신으로 이 땅에 보내셔서 속죄제물이 되게 하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이다.
이전 말씀에서는 죄의 포로가 된 비참한 상태에서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건져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서도 아직도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면서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셨기에 다시는 정죄를 받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7:24에서 누가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주겠느냐 라고 탄식했다. 죽음의 포로로 잡혀있어 스스로 탈출할 수 없었는데 29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포로로 잡혀있던 나를 건져주셔서 감사했다. 마치 사도행전 5:19에서 천사가 감옥에 갇혀있던 베드로를 구해 준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바울 자신은 구원 받은 뒤에도 한편으로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섬기지만 반대로 육신으로 죄의 법도 섬기고 있다는 것이다.
8:1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앞부분과 연결이 된다. 그렇게 한편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어도 그리스도 안에 석방되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석방되어 있는 나를 누가 유죄판결을 해서 다시 감옥에 넣겠느냐는 뜻이다. 여기서 정죄한다는 말은 무죄선고한다는 뜻의 의롭다함 받는다는 말과 연관된 말이고 법정 용어이다. 다수는 칭의의 단계를 말한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여기서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 유죄선고를 받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형 선고 후에 강제노역과 같은 벌을 받지 않는 것으로 해석한다. 죄인이라는 형 선고는 받되 그 벌은 받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어지는 문맥에서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되었다고 말하기에 아예 벌은 물론이고 유죄 판결 조차도 받지 않는다는뜻으로 볼 수 있다. 정죄함이라는 용어는 형 선고와 형 집행을 모두 포함하는 법정용어이기 때문이다. .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은 죄인의 대표인 아담 안에 있다는 말과 반대되는 말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이 생명의 연합을 뜻한다며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룬 것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죄가 없으신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룬 존재이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을 동시에 섬기고 있다고 해도 아무도 우리를 유죄판결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무죄판결 내리시고 석방해주셨는데 감히 누가?
2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하며 그 이유를 설명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켰기 때문에 아무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생명의 법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본을 보이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가르치신 사랑의 복음을 말하는 것이다. 죄와 사망의 법이란 율법을 말하는 것이다. 서로 비교되는 말은 법이 아니라 생명과 사망이다. 당시 사람들은 유대교 율법의 굴레 아래 매여있었다. 아무도 그 율법들을 다 지킬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다 유죄판결 받고 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마11:28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3절도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하며 또 다른 이유를 설명한다. 그 이유는 율법이 못하는 것을 하나님은 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 3절의 핵심이다. 율법이 왜 못했는가? 육신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미약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육신으로 말미암아란 말은 사람들이 악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악해서 율법을 어기기 때문에 율법의 효력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계속 율법의 허점을 찾으며 어기면서도 지켰다고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율법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악함이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율법이 못하는 일을 하나님이 해결하셨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결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죄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보내셨다는 것이다. 또 원어를 보면 아들을 죄된 육신의 모습으로 보내셨다는 말 바로 다음에 “죄에 관하여” 라는 말이 나온다. 개역에서는 “죄를 인하여”로 번역했고 새번역은 “죄를 없애시려고” 라고 번역했지만 이는 70인역 구약성서에서 속죄제를 뜻하는 말이다. 히브리서 10:6절과 8절에서도 번제와 속죄제라는 말이 나오는데 속죄제라는 말이 바로 여기서 죄를 인하여 라고 번역한 말과 똑 같은 말이다. 그 아들을 속죄제물로 보내셔서 의롭다 함을 이루셨다는 것이다. 이는 칭의의 구원을 이루셨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