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7:24-25 죄의 포로가 된 비참한 상태에서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건져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서도 아직도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면서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다.
이전 말씀에서는 한 법을 발견했는데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감각기관과 손 발은 죄의 법과 싸워 패해서 전쟁포로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처럼 비참한 죽음의 몸에서 건져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는 내용이다.
24절은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라는 탄식으로 시작한다. 개역은 곤고한 사람이라고 번역했는데 이 말은 이사야 33:1절에서 “너 학대를 당치 아니하고도 학대하며” 라는 말에서 두 번 나온다. 이 구절에서 대부분 영어 번역들은 파괴하는 자라고 번역했다. 이는 23절에서 나오는 전쟁포로의 그림으로 이해해야 한다. 당시 전쟁에서 승리한 군대는 전쟁포로들을 1949년에 체결된 제네바 협약을 따라 대우하지 않았다. 사정없이 때리고 돌로 치기도 했다. 포로로 잡혀서 엄청난 학대를 당하는 장면을 탄식처럼 나타낸 말이다.
이러한 탄식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른 고백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다수는 이러한 고백이 칭의와 연관된 것이 아니라 성화와 연관된 것이라고 해석한다. 어떤 이는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은 사람의 외침도 아니고 바울의 개종 전 경험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절규하는 사람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신을 알고 있으면서도 복음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바에 깊은 내면으로부터 응답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하나님의 높은 기준을 더욱 더 분명히 알면 알수록 우리는 더욱 더 우리의 부족함을 깊이 깨닫는 것이라고 말한다. 믿는 자들은 칭의로 완벽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성화의 시작이고 이러한 외침이 그들을 거룩함을 완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
고대의 전쟁포로처럼 비참한 존재는 없을 것이다. 죽은 것과 다름이 없는 존재이다. 스스로는 절대로 탈출할 수 없다. 누군가가 구해줘야만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바울 본인의 이야기 이지만 이는 모든 인간들 모두가 이런 비참한 존재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탄식이 바울의 개종 전이나 개종 후의 경험으로만 이해서는 안되고 모든 인간들의 외침이고 부르짖음인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모두가 다 그런 상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핵심은 칭의냐 성화냐 바울의 경험이냐 모두를 말하는 것이냐에 있지 않다. 핵심은 전쟁포로 같은 상태에 있는 우리를 누가 건져 주겠느냐는 것이다.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다. 아무도 건져 줄 사람이 없다는 탄식을 강조하기 위해 질문형태로 말한 것다. 아무도 우리를 이 죽음의 몸에서 건져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다수는 죽음의 몸이란 말에서 초점은 죽음이 아니라 몸이라며 비유가 아닌 실제 우리 몸을 말한다고 설명한다. 죄에게 포로가 되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누가 영생을 얻도록 구원해줄까 라고 묻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밖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25절에서는 새번역은 대답 대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주신 하나님게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나를 건져주신” 이란 말은 번역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의미를 살려 번역한 것이다. 원어는 개역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 라고만 되어 있다. 이는 물론 아무도 구원할 수 없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해 주셨다는 대답이다.
그러나 바울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면서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란 양심의 목소리로는 하나님의 범을 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행동으로는 아직도 죄의 법을 섬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울의 상태이면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