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7:21-23 한 법을 발견했는데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감각기관과 손 발은 죄의 법과 싸워 패해서 전쟁포로가 되었다.
이전 말씀에서는 선한 일을 하려는 생각도 내 안에 터를 잡고 살고 있지만 그것을 행하지는 못하는 이유는 내 안에 함께 터를 잡고 있는 죄의 권세가 너무 강하기에 그 권세에 눌려 꼼짝도 못하는 것이라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래서 한 법을 발견했는데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또 다른 법이 있어 자신을 죄의 법의 포로로 잡아온다고 말하는 내용이다.
21절은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발견했다는 말로 시작한다. 20절에 나오는 내 속에 있는 죄가 악한 일을 한 것이므로 내가 한 법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 법에 따라 내가 선을 행하려고 할 때 내게 악이 곁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악이 곁에 있다는 말은 악이 함께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법이라는 말에 논쟁이 있다. 다수는 여기서 법은 모세의 율법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법칙이나 원리라는 뜻이라고 본다. 개역은 한 법이라고 했고 새번역은 법칙이라고 번역했지만 결국 둘 다 원리나 법칙이라는 뜻으로 번역한 것이다. NASB와 NLT도 Principle로 번역했다.
그러나 또 다른 다수는 율법을 가리키지만 21절의 법은 23절의 다른 법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율법으로 해석하면서도 21절은 모세의 율법이고 23절은 그 모조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율법이라는 의미는 분명한데 21절의 법과 23절의 법이 다르게 쓰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일반적 원리나 법칙이라는 뜻으로 쓰인 것이라면 관사가 없어야 하고 아니면 이러한 법이라고 했어야 한다. 이 말이 원리라는 의미로 쓰이는 것은 신약성경에서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21-23절에서 법이라는 말이 다섯번이나 나오는데 각각 그 의미가 다른 것으로 쓰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원어는 분명히 한 법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며 그 법에 따라 내가 선한 일을 하려고 할 때에 내게 악이 함께 있었다는 뜻이다.
22절에서 왜냐하면 나는 하나님의 법을 기뻐한다 내 속 사람을 따라서 라고 했다. 속사람인 바울 자신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23절에서는 또 다른 율법이 나온다. 여기서 내 지체란 본래 감각기관인 이목구비를 뜻하고 또한 행동기관인 손과 발을 뜻한다. 이는 14절에서 말한 육신 또는 육정이다. 내 육신 안에 또다른 법이 있다는 것을 현재 보고 있다는 것이다. 내 속에 있는 속사람과는 달리 자신의 감각기관과 손 발 안에 있는 다른 법이 내 마음속에 있는 법과 맞서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맞서 싸운다는 말은 전쟁을 할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그 전쟁은 육신의 법의 승리였다. 육신의 법 즉 내 감각기관과 손 발에 거하는 죄의 법이 내 안의 속사람을 이기고 나를 포로로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같은 율법이 누구의 손에 들려있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바울은 이제 전쟁포로라는 것이다. 전쟁포로는 정말 비참한 존재이다. 개역에서는 곤고한 사람이라 했다. 고대의 전쟁포로처럼 비참한 존재는 없을 것이다. 죽은 것과 다름이 없는 존재이다. 스스로는 탈출할 수 없다. 누군가가 구해줘야만 살아날 수 있다. 이것은 바울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인간들 모두가 이런 비참한 존재라는 것을 자신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건져 주겠느냐는 질문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다. 아무도 건져 줄 사람이 없다는 탄식을 강조하기 위해 질문형태로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