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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로마서 › 5:1-4

Dawn Word

로마서 5:1-4

소망을 자랑한다

봉인된 두루마리 편지와 로마로 이어진 길 · 로마서 1장

2025. 9. 10. · 안정섭 목사 · 로마서 5장 강해 설교

로마서 5:1-4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기에 하나님과 평화의 관계를 누리자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소망을 자랑하면서 환난도 자랑하는데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낳는다고 말한다.

이전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게 여기셨다고 성경에 기록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모든 자들을 위한 것이고 그분은 우리의 범죄 때문에 죽으신 것이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살아나신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우리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기에 하나님과 평화의 관계가 되었다며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낳는다고 하는 내용이다.

5:1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앞부분과 연결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므로 라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그 때부터 지금 현재 하나님을 향해 평화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소유한다는 말은 사본 상에 두가지 형태가 존재한다. 오래되고 권위있는 다수의 사본들은 권면을 의미하는 가정법으로 되어있다. 하지만 현재형으로 되어있는 사본들도 존재한다. 사본의 외적 증거로는 가정법이 원문이다.

그러나 다수는 가정법이 아니라 객관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현재형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현재형인 이유를 하나님과의 평화는 가질지 안가질지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은 바울 다운 표현이 아니라고 말한다. 문맥상으로나 신학적으로 볼 때는 지금 우리가 평화를 소유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새번역은 현재형으로 번역했다.

이 부분은 문맥상 앞부분의 결론에 해당하기에 UBS 위원회의 다수는 현재형을 지지한다. 어떤 이들은 바울은 현재형으로 불러주었는데 더디오가 가정법으로 받아썼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스어에서 오미크론(O)과 오메가(Ω)는 발음상으로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디오가 받아 쓴 것을 바울이 읽어보지도 않고 그냥 보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본의 증거는 가정법으로 권면한다는 뜻이 분명하지만 문맥상 현재형이 맞다고 보고 그렇게 소설을 쓴 것이다.

그러나 사본학에서 어느쪽이 원문인지 불명확할 때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원문으로 본다. 말이 잘 안되는 가정법을 말이 잘되는 현재형으로 고치는 경우는 있어도 말이 잘 되는 현재형을 말이 안되는 가정법으로 고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오직 일부 학자들만 문맥상 현재형이 맞다고 하더라고 사본의 압도적인 증거를 무시할 수 없다며 바울은 결론 부분에서 가벼운 권면의 형태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며 평화를 간직하자는 권면으로 해석한다. 개역도 가정법으로 보고 “화평을 누리자” 라고 번역했다. 사본의 외적 증거는 가정법을 지지하지만 문맥은 현재형을 지지한다고 애매하게 박쥐처럼 양다리 걸치는 사람도 있다.

원래 우리는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의 관계가 되었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과의 평화의 관계가 된 것이다. 그러니 바울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는 특권을 함께 누리자고 권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화해시키려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것이다. 그분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화해의 관계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만약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더 이상 율법을 강조하지 말고 우리가 믿음으로 얻은 특권을 누리자고 하는 것이다.

2절 앞부분은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의 자리에 믿음으로 나오게 되었다고 했는데 은혜의 자리란 하나님과 평화의 관계로 함께 하는 자리이다. 쉽게 말하면 이 자리로 들어가는 입장권을 믿음으로 이미 완전히 얻었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그냥 입장권을 나누어준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라고 했다. 지금 입장권만 받은 것이 아니라 입장권을 받고 이미 들어와 은혜의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특권을 자랑하면서 함께 누리자고 한 것이다.

2절 뒷부분에 나온 바울의 첫번째 자랑은 현재 상태에 대한 자랑이다. 현재 상태에 대한 자랑은 두가지 이다. 첫째 소망을 자랑하는 것이다. 이미 하나님과 평화의 자리에 입장했는데 왜 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 소망을 자랑한다고 했을까? 현재 우리는 하나님과 화해를 하고 평화의 관계에 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안에서 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모델이시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영광의 몸을 입고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거하고 계신다. 하지만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 영광의 몸을 입는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때를 소망하며 현재 상태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명절이 되어 고향에 가려는 사람과도 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차표를 구하기 위해 매표소 앞에서 길게 줄을 서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기차표를 받았기 때문에 줄서지 않고 바로 들어가 기차 안에 앉아 있는 것과도 같다. 그러면서 창밖에 아직도 줄서 있는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며 자랑하고 있는 것과도 같다. 하지만 아직 고향에 도착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음은 벌써 고향에 가 있는 것이다. 우리도 이와 같이 아직 영광의 몸을 입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그곳에 가서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설 것이기에 그 때를 꿈꾸며 그 꿈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3절에서 “그뿐 아니라” 라는 말은 원어에서 영어의 “not only … but also” 와 같은 말이다. 현재 하나님 영광에 들어갈 소망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자랑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현재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두번째 자랑인 환난이다. 현재 우리가 소망 가운데 기뻐하고 있지만 우리는 또한 환난 가운데 있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울은 환난가운데 살고 있는 것 까지도 자랑하고 있다.

왜 환난 가운데 있는 것을 자랑하는가? 그 이유가 3절 뒷부분부터 4절에 나와 있다.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다고 했다. 새번역에서 희망이라고 번역한 말은 2절 끝에 있는 소망과 같은 말이다. 인내란 당시 그리스 철학과 유대교에서 매우 높이 평가하는 덕목이었다. 환난은 인내라는 귀중한 덕목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이므로 환난에서 탈출하려고 하지 말고 참고 즐기라는 것이다. 단련된 인격이란 말은 원래 불로 녹여서 불순물을 다 제거한 금 같은 것을 가리키던 말이다. 인내라는 덕목을 배우면 불순물이 제거된 순수한 인격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 연단된 인격은 소망을 낳는다는 것이다. 결국 환난이 자랑거리인 이유는 소망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환난이 없으면 소망도 없다는 말이 된다. 실제로 예수님 당시 사두개파 사람들은 부활을 믿지도 않고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지 않았다. 그들은 제사장 계층으로 권력과 부를 누리며 이 땅을 살았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모든 것을 다 누리고 있으면 하나님 나라에 관심을 두지 않기 쉽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도 환난을 겪지 않았더라면 믿음의 자리와 있지 않을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환난을 인해 소망을 갖게 된 것을 자랑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으므로 그 결과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원래 우리는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의 관계가 되었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과 평화의 관계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중간에 그리스도가 계신다. 새번역과 개역 모두 말미암아로 번역했지만 그리스도를 통하여 라고 해야 옳다. 그리스도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화해시키려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것이다. 그분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화해의 관계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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