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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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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로마서 3:27-28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 받는다

2025. 8. 28. · 안정섭 목사 · 로마서 3장 강해 설교

로마서 3:27-28 행위의 율법로는 자랑할 것이 없고 오직 믿음의 율법으로만 자랑할 수 있다며 율법의 행위가 아닌 순종하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하고 있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언약궤의 속죄소 위에 세우셔서 과거에 지은 죄를 너그럽게 용서해 주심으로 자기 의를 나타내시려는 것이고 이는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의롭하고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어지는 말씀은 행위의 법으로는 자랑할 수 없고 믿음의 법의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내용을 요약하면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은 차별 없이 모든 죄인들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었다. 이제 이어지는 3:27-31절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세가지를 하게하고 세가지를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는 옷이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라는 믿음은 무엇을 하게 하고 무엇을 못하게 하는지에 관한 내용이다.

그 중 27-28절은 죄인을 겸손하게하고 자랑하지 못하게 한다는 내용이다. 바울 당시 당시 자랑은 로마 시민들의 것이었고 유대인들의 것은 아니었다. 광대한 영토, 강력한 군대, 선진문화 등 모든 것이 다 자랑거리였다. 반대로 유대인들은 이런 면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었다. 저들의 유일한 자랑은 율법을 잘 지키는 것 뿐이었다. 그런데 바울은 유대인들의 마지막 자존심이고 자랑거리인 율법조차 자랑하지 못하게 하니 로마교회의 유대인 신자들은 화도 나고 답답했던 것이다.

그래서 27절 첫 부분은 가상의 로마교회 유대인 신자들은 그렇다면 유대사람으로서 자랑할 것이 어디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 율법 말고 다른 세상적인 것은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데 뭘 자랑하느냐고 물은 것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전혀 없다고 답했다. 전혀 없다는 말의 본래 의미는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가려고 섰는데 문이 꽝 닫혔다는 뜻이다. 이는 마치 새로 산 아이패드를 자랑하러 친구네 집에 갔는데 친구가 보자마자 재수없다며 문을 꽝 닫는 것과도 같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이 행위의 율법을 자랑하는 것은 아무도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고 전혀 자랑할 것이 아니며 그 자체가 수치라는 것이다.

무슨 법으로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대부분 무슨 법으로냐는 질문은 어떤 시스템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느냐고 풀어 쓸 수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여기서 율법이라는 말에 관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서와 70인역 구약성서에서 율법이라는 말이 관사 없이 쓰인 경우가 많기에 그렇게 말할 수 없다. 로마서를 확인해 보면 관사 없이 율법이라는 말을 쓴 경우를 셀 수 없이 많다. 문맥상 어떤 원리냐는 질문이라기 보다는 모세 오경 중에 어떤 율법 규정이냐, 어떤 행위의 율법이냐는 질문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본다.

바울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믿음의 율법으로라고 말한다. 행위의 율법과 믿음의 율법이 다른 것을 가리킨다고 볼 수 없다.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자랑하기 위해 구약의 율법을 사용하면 행위의 율법이지만 예수님은 그러한 율법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그 참 뜻을 바르게 해석하여 가르치셨다. 그 율법을 지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 예수께서 마태복음에 나오는 산상수훈에서 가르치신 것이다. 벌을 피하려고 억지로 지킨다면 행위의 율법이고 구원 받은 것에 감사해서 자발적으로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참 뜻에 순종한다면 믿음의 율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28절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27절 끝부분에서 말한 믿음의 율법으로 의롭다고 인정받는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 없이 된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라는 복수를 사용한 것은 바울 자신과 함께 믿는 그리스도인들과 연관시킨 것이다. 모든 바울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다 인정한다는 뜻이다. 이는 유대인 기독교인들도 우리에 포함시키며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면 바울 당시 로마의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가졌던 율법을 가진 자들이라는 특권의식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을 선물로 받았다면 교만한 태도로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율법의 참 뜻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사라는 자신이 아이를 낳을 수 없다 생각하고 여종 하갈을 통해 약속을 이루려는 것은 교만이고 불순종이다. 99세의 아브라함이 자신의 능력이 아닌 말도 안되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지하여 사라와 동침한 것이 순종이고 겸손이다.

믿음이란 이처럼 안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행동으로 옮기는 것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요한복음 21:6에 보면 예수께서 경험 많은 어부였던 베드로에게 그물을 오른쪽에 던지라 했을 때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오른 쪽에 그물을 던진 것이 바로 겸손이다. 내가 보기엔 아닌 것 같을 때도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 뜻에 따르는 것이 겸손이다. 율법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것도 역시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이 옳다고 인정하여 겸손히 따를 때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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