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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로마서 › 3:13-18

Dawn Word

로마서 3:13-18

말과 행동과 생각 모두가 더러운 죄인들이다

2025. 8. 22. · 안정섭 목사 · 로마서 3장 강해 설교

로마서 3:13-18 그들은 전염병 균 같은 더러운 말과 속이는 말과 죽이려는 말들이 가득하고 행동으로도 사람을 죽이는데 신속하게 움직이는 자들이다. 평강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보다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자들이다.

목구멍은 열린 무덤같이 더러운 죄악의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들의 혀는 사람을 속이는 도구이며 입술의 아래에는 독사의 독과 같이 사람을 죽일 준비가 되어있는 말을 담고 있고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

이전 말씀에서는 그러면 유대인이 더 나은 점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하자 바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죄인이기에 차이는 아무것도 없다며 유대인들 중에 의인은 한 사람도 없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다 곁길로 빠졌고 썩은 우유처럼 쓸모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의인은 한사람도 없다는 예로 말과 행동의 악함을 비유로 말하는 내용이다.

이어서 세종류의 비유가 인용된다. 첫째 13–14절은 말에 관한 비유이다. 13절에서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라고 했다. 이는 시편 5:9에서 온 말이다. 원어는 그냥 조금 열렸다는 뜻이 아니라 완전히 열렸다는 뜻이다. 어떤 이들은 목구멍이 완전히 열린 무덤이라는 의미는 무덤으로부터 더러운 것들이 나온다는 뜻일 수도 있고 무덤 문이 열려 있기에 죽은 자를 삼킬 준비가 되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고 두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더러운 것들이 나온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이스라엘의 무덤은 바위동굴에 돌로 입구를 막은 것이다. 이런 무덤은 죽은 자를 존중해 주고 썩은 시체의 모습과 악취를 막기 위해 가려져야 한다. 더구나 무덤은 시체를 삼킬 준비가 된 새로운 무덤이라기 보다는 이미 많은 시체가 있어 악취가 나는 곳일 가능성이 높다. 큰 부자가 아닌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새로운 무덤을 파고 시체를 넣을 준비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문맥을 보면 악함이 점진적으로 강화된다. 그렇기에 첫 단계에서는 더러운 세균 같은 것이나 악취가 나온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특별히 입이라 하지 않고 목구멍이라고 한 것은 깊이 자리잡고 있는 악을 가리키는 것일 것이다.

또 이어서 그들의 혀는 사람을 속인다고 했다. 이는 첫 단계에서 악취나 세균 같은 더러운 것만 나오는 것에서 한단계 더 발전한 것이다. 이 말은 마치 새우 같은 미끼로 가려져있는 낚시바늘 같은 것이다. 한번이 아니라 끊임없이 미끼를 갈아주며 던지듯 계속 혀로 속여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도 이런 사람들은 남의 흉을 보며 다른 사람에게 미끼를 던진다. 그러다가 걸려들면 그걸 약점으로 잡아 그 사람을 망가뜨린다. 이들은 남만 망가뜨린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자기 자신도 망가뜨리는 것이다. 시편 5편은 교만한 자들을 비유한 시이다. 따라서 목구멍에서 남을 흉보고 더러운 말을 쏟아내며 혀로 남을 속여 망가뜨리는 자들은 바로 교만한 자들인 것이다.

그 다음에는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고 했다. 원어에서는 입술 아래에 독이 있다는 뜻이다. 이는 미끼보다 더 치명적인 것이다. 이는 시편 140:3에서 온 것이다. 이 시편은 악한 사람들을 비유한 것이다. 악한 사람들의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는 것이다. 입술은 주로 부드러운 말을 하는 것을 나타낸다. 악한 사람들은 겉으로는 달콤한 말로 속삭이지만 실제로는 독이 들어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죄인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속성이다. 스스로 의로운 줄 알지만 어느 순간 독사의 독과 같은 죄된 속성이 나와 남을 해친다.

다윗은 참으로 신실한 사람이었지만 밧세바가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간통을 했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 전쟁터에 나가 있던 우리야를 불러 인정 많은 상관이고 다정한 전우인 척 속삭였다. 듣지 않자 전쟁터에 내보내 죽이라고 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독사의 독이 나와 우리야를 해친 것이다. 이러한 죄된 속성은 마치 방울뱀을 길들이려는 것과도 같다. 아무리 길을 들여도 어느 순간 물리면 치명적이다. 우리 안에 숨겨진 죄악도 이와 같다.

14절에서는 그들의 입안에는 저주와 독설이 가득찼다고 했다. 이것은 시 10:7에서 온 것이다. 이는 교만한 악인에 대한 비유이다. 이는 롬 1:29절의 불의, 악행, 탐욕, 악의, 시기, 살의, 분쟁, 사기, 적의로 가득차 있다는 말을 떠올리며 말한 것이다. 이는 적개심을 가득 품고 기회만 되면 비난의 화살을 퍼부으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죄인들은 이처럼 말로 남을 죽인다. 그들의 목구멍은 완전히 열린 무덤이라는 말에서 시작한 말에 대한 비유들의 악함의 정도가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이다.

그 다음 증거는 행위에 관한 것이다. 15–17은 이사야 59:7–8에서 온 말이다. 그들의 발은 피를 흘리는 일에 빠르다는 것은 남을 죽이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율법을 잘 지킨다던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를 죽이는 일에 신속하게 움직였다. 이것은 죄된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이다.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이 이처럼 악하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기독교 문화유산을 가졌다는 미국에서 20세기 이후 살해당한 미국인 숫자가 전체 인류 역사상의 모든 전쟁에서 죽은 사람보다 두배나 많다고 한다. 겉으로만 거룩한 척 하는 인간의 본성은 예나 지금이나 똑 같은 것이다.

이것은 죄된 인간들의 속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한 예일 뿐이다. 모두가 다 이런 죄인이다. 예수님은 죽이고 싶다는 마음만 품어도 결국 살인한 것이나 똑같다고 하셨다. 또 16절은 그들의 길에는 파멸과 비참함이 있다고 했다. 파멸이란 완전히 박살낸다는 말이다. 또 비참함이란 원한에 의해 완전히 박살난 상태를 말한다. 17절에서 그들은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이 평화는 마음의 평화가 아니라 16절과 같은 비참한 모습의 정 반대를 말하는 것이다.

18절은 눈에 관한 비유인데 악한 일을 행하는 동기에 관한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고 했다. 이는 시편 36:1에서 온 말이다. 잠 9:10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다. 유대인들은 유대교를 따르는 이방인들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바울은 유대인들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라고 불러 가장 악한 이방인보다 아래에 둔 것이다. 저들은 예수께서 수많은 사람을 치유하시고 기적을 베푸시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죽인 것은 바로 유대인들이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은 사람들은 두려워하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들은 말과 행동 뿐 아니라 생각까지도 죄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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