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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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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로마서 3:9-12

유대인의 특권은 아무 것도 없다

봉인된 두루마리 편지와 로마로 이어진 길 · 로마서 1장

2025. 8. 21. · 안정섭 목사 · 로마서 3장 강해 설교

로마서 3:9-12 그러면 유대인이 더 나은 점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하자 바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죄인이기에 차이는 아무것도 없다며 유대인들 중에 의인은 한 사람도 없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다 곁길로 빠졌고 썩은 우유처럼 쓸모없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전 말씀은 가상의 한 유대인 기독교인이 바울이 4절에서 사람은 다 모두 다 거짓되고 하나님은 진리이시라고 한 것에 반발하여 자신의 거짓됨 안에서 하나님의 진리가 넘쳐서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여 흘러 들어간다면 악한 일을 더 많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바울 일행이 이방인들도 똑같이 구원 받는다는 것을 비아냥 거린 것에 대해 바울은 하나님의 심판이 옳다고 대답하는 내용이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 유대인이 그래도 이방 사람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답한 내용이다.

3:9절은 “그러면 무엇?” 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러나 “무엇” 이라는 의문사는 바로 이어지는 우리는 나으냐? 라는 말과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두개의 이어지는 질문이다. 개역이나 새번역도 독립된 두개의 질문으로 번역했다. 우리는 더 나으냐는 말의 원어의 문자적인 뜻은 미리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동사가 중간태나 수동태의 형태라는 것이다. 영어에는 직접 행동에 참여하는 능동태와 남이 시킨다는 뜻의 수동태만 있다. 그러나 그리스어에는 중간태가 있다. 중간태란 직접 하는 것과 남이 시키는 것의 중간이다. 윗사람이 원하는 일에 스스로 참여한다는 뜻이다. 중간태로 본다면 우리는 미리 갖고 있는 일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뜻이기에 변명이나 변호할 거리를 미리 갖고 있느냐는 의미로 해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NIV처럼 능동태의 의미를 지닌 중간태로 해석하며 유대인들이 이방인들보다 나으냐는 의미로 해석한다. 신약성경에서는 형태는 중간태이지만 능동태의 의미로 쓰인 경우가 종종 있기에 미리 더 갖고 있는 것이 있느냐는 뜻의 능동태로 해석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우리가 변명할 거리라도 뭔가 있느냐는 뜻이라기 보다는 2절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뭔가 더 갖고 있는 이로움이 있느냐는 질문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는 유대사람이 이방사람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유대인 신자의 질문이다.

사실 표현은 조금 다르지만 이 질문은 3:1절과 같은 질문이다. 같은 질문에 대해 3:1에서는 유대인의 이로움이 많다고 했는데 3:9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라고 모순적인 대답했다. 왜 그렇게 대답했을까? 3:1에서는 특권이 아닌 책임에 초점을 두고 책임이 많다라고 대답한 것이다. 반면에 3:9절에서는 특권에 초점을 두고 전혀 없다라고 대답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을 맡은 자로 책임은 있지만 심판은 똑같이 받는다는 것이다. 유대사람이나 그리스사람이나 다같이 죄 아래 있으므로 유대인도 죄 아래 있다고 기소한 것이다. 죄 아래 있다는 말은 죄에게 포로로 잡혀있다는 뜻이다.

유대인도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죄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10-18절은 7개의 구절을 구약에서 인용했다. 이 구절들은 마치 여러 개의 진주를 꿰어 하나의 목걸이를 만들 듯 죄의 구슬을 줄줄이 사탕처럼 엮어 증거로 제시한 것이다. 그 중 첫번째인 3:10b–12는 “의인은 없다. 한사람도 없다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없게 되었다” 라고 말한다. 이는 시 14:2–3에서 인용한 것이다.

10절은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남과 비교해서 자신이 좀 더 낫다고 생각하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다 죄인이라는 것이다. 단 한사람도 죄인이 아닌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11절은 이해하는 사람도 없다며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모두가 죄인인데도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해하는 사람도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고 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이해하지도 못했다면 하나님께 나아가 물어보기라도 했어야 했는데 아예 하나님을 찾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12절은 하나님을 찾지도 않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곁길로 빠졌다는 것이다. 곁길로 빠졌다는 말은 하나님의 길을 아예 걷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주로 우상숭배에 빠진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쓸모없게 되었다는 말은 우유가 상해서 시큼하게 변한 것을 말한다. 바울은 시편 14편을 인용하면서 유대인들이 썩은 우유처럼 쓸모없게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이 말에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저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키는 의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들의 노력은 마치 썩은 우유같이 쓸모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하나님 기뻐하시는 선을 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들은 이방인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마치 마치 카리브해에 있는 한 섬의 해변에서 미국을 향해 점프하는 것과도 같다. 뛰어난 운동선수라면 25 feet 이상을 뛸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겨우 5 feet를 뛴다. 하지만 전체 거리를 재었을 때 이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처럼 하나님 입장에서 볼 때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이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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