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3:3-4 이스라엘의 일부가 믿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없어지느냐고 묻자 바울은 절대로 그럴 수 없다며 하나님은 참되게 여김을 받으실 분이라고 하면서 다윗이 밧세바와의 간음 죄를 지적 받았을 때 하나님의 판결이 옳다고 한 시편 51:4절을 인용한다.
이전 말씀에서 진짜 할례는 마음에 받는 것이라 하자 유대인들은 그렇다면 유대사람의 특권은 무엇이고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고 질문하자 바울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을 맡았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일부가 불신앙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없어지는 것이냐고 묻자 하나님은 참되시다고 대답하는 내용이다.
유대인이라서 무조건 구원받는다는 보장은 없다며 특권보다는 책임이라고 하자 유대인 신자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이민족의 침략과 압제 속에서도 자신들 만이 하나님 백성이라는 특권을 가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그 생각만으로 위로를 받았는데 그 마저도 없다니 그럼 우리는 뭐냐 라고 불평했을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 가운데 일부가 신실하지 못하다 해서 그들의 신실하지 못함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없어지겠냐는 것이다.
이 질문에서 계속 반복되는 말은 신실함 즉 믿음이란 말이다. 개역은 믿지 않았다고 번역했지만 새번역은 신실하지 못했다고 번역했다. 영어 번역도 ESV나 NIV, NLT는 Unfaithful로 번역했지만 KJV나 NASB는 not believe로 번역했다. 신실하지 못하다는 뜻일까? 믿지 않았다는 뜻일까? 어떤 이는 신실하지 못하다는 뜻으로 해석하지만 절대 다수의 학자들은 믿지않았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신실하지 못한 것과 불신앙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신실하지 못하다는 것은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양다리 걸친 간음하는 여인에 비유된 것으로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신실하지 못하다는 것은 결국 불신앙인 것이다. 이 부분의 문맥을 보아도 이스라엘의 불신앙이고 9-11장에 나오는 내용도 이스라엘의 불신앙이다. 특히 11:20절에서 유대인들의 불신앙으로 잘려나가고 이방인들이 그 자리에 접붙임음 받은 것도 믿음과 믿지 않았다는 말로 설명된다. 신실하지 못하다 또는 믿지 않았다는 말로 번역된 말은 2절에서 맡았다는 말과도 같은 말에서 온 것이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믿고 하나님 말씀을 맡기셨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는 유대인들이 믿지 않았다는 의미로 쓰인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일부 유대인들이 믿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는 메시야를 배척했다는 뜻이다. 그들의 불신앙 때문에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무효화될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라는 말도 역시 믿음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이 말은 계속해서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하심을 뜻하는 것이고 결국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믿고 계속해서 참아주시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소돔을 멸하실 때도 의인 열명만 있으면 멸하지 않겠다고 했다. 자신들처럼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하나님께서 언약을 파기하시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4절에서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원어에서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말 바로 다음에 하나님은 참되시다는 말이 나온다. 반대로 사람들은 다 거짓되다는 말이 따라 나온다. 하나님은 항상 참되신 분이시기에 믿을만 하신 분이지만 모든 사람들은 다 거짓되기에 믿을 수 없다는 뜻이다.이는 율법을 지키며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하는 유대인 신자들에게 하는 말이다. 너희들이 말하는 의는 다 거짓이고 너희들은 다 거짓말장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참되시다는 말은 원래 명령문이다. 하나님을 참되게 여기라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변함이 없이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을 믿으라는 말이다. 이런 명령을 하는 이유는 저들이 말로는 변함없이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실제로는 믿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뜻대로 될 때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어려움을 주시면 불평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참되게 하라는 명령은 어떠한 환경에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용한 말씀이 시 51:4절인데 시편 51편은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을 한 뒤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회개하며 부른 노래이다. 하나님께서 책망하시고 벌을 주셨을 때 다윗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의로우시다는 말은 주님께서 책망하신 말씀이 옳다는 것이다. 또 재판을 받을 때 이기신다는 말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신 하나님의 판결이 옳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릴 때만 하나님이 신실하시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명백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옳은 판결은 눈부시게 빛나는 다이아몬드 반지와 같다. 하지만 사람들의 범죄는 검붉은 핏빛이다. 사람들의 검붉은 핏빛가운데서 하나님의 의가 눈부신 다이아몬드처럼 빛이 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자줏빛 벨벳에 놓인 다이아 반지가 더 빛나는 것과도 같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에게 좋은 일을 주시면 하나님을 찬양하고 우리에게 나쁜 일을 주시면 불평하고 원망하면 안된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을 항상 참되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좋은 일을 주시면 감사하고 벌을 주시면 우리의 잘못을 바라보고 다윗처럼 애통해하며 하나님의 책망은 항상 옳으시고 하나님의 판결은 항상 정당하다고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참되게 여기라는 말의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