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3:1-2 진짜 할례는 마음에 받는 것이라 하자 유대인들은 그렇다면 유대사람의 특권은 무엇이고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고 질문하자 바울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을 맡았다고 했다.
이전 말씀에서는 율법에 의해 겉으로 드러난 할례가 아닌 성령으로 마음에 할례를 받은 사람은 사람에게서 칭찬을 받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유대사람의 특권과 할례의 유익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첫번째 질문은 1절에 나오는 유대인의 특권이 무엇이고 할례의 이로움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는 당시 유대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유대인들의 특권의식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이들은 400년동안 이집트에서 혹독한 종살이를 했다. 또 BC 8세기에는 앗시리아의 침공으로 북왕국 이스라엘이 어려움을 겪었고 BC 6세기에는 남왕국 유다가 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했다. 포로로 끌려가 바빌로니아에 머물던 유대인들은 어떻게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하나님의 백성이 멸망할 수 있나? 하나님의 계약이 취소된 것인가? 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자신들과 맺은 언약에 따라 자신들을 지켜주었어야 했는데 언약을 깼기에 하나님을 반으로 쪼개야 하는 모순에 빠진다. 그러다가 이들은 하나님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이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세한 율법 규정을 만들고 이를 철저하게 지켜나가기 시작했다. 이들 중 일부가 70년후 돌아와서 다시 재건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렉산더의 군대에게 점령을 당했다. 그 후 얼마동안 독립을 했지만 다시 로마제국의 속국이 되어 고통을 당했다.
고통을 겪으면 겪을수록 율법 규정을 더 철저하게 지켜나가면서 하나님과의 계약이 성취되길 소망했다. 다른 민족들에게 끊임없이 침략을 당하고 노예살이 하면서도 자신들만이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백성이고 다른 민족들은 전부 지옥의 불쏘시개 감이라고만 생각했다. 다른 민족들이 구원받는 길은 할례받고 율법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방인들이 그렇게 한다고 해도 자신들이 하나님 나라의 일등시민이고 저들은 이등시민 취급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들이 가졌던 특권의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께서 오셔서 자신이 하나님 나라를 이룰 메시야라고 하셨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들이 기대하고 있던 메시야가 아니었기에 십자가에 달아 죽인 것이다. 일부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고 따랐다. 하지만 예수를 믿었던 유대인들도 자신들만이 하나님과의 계약의 당사자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할례와 율법이 그 증거라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마음 속에 받은 할례가 진짜고 육신에 받은 할례는 소용이 없다고 하니 반발한 것이다. 누구든지 마음에 할례 받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께 칭찬받을 것 생각하며 살면 그게 진짜 할례라고 말하니 저들은 그렇다면 계약 당사자인 유대사람의 특권은 무엇이고 할례 받은 자의 이로움은 무엇이냐고 질문한 것이다.
로마서 전체를 읽어보면 바울의 대답을 알 수 있다. 2장에서 말한 내용을 보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로마서 전체를 다 찾아봐도 바울의 대답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2절에서 바울은 놀랍게도 바울은 모든 면에 많이 있다고 대답한다. 그 중 가장 우선되는 이로움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맡았다는 말은 믿는 다는 말이다. 수동태로 되어 있기에 원래는 신뢰 받는다는 뜻이다. 믿을만한 사람에게 중요한 것을 맡기는 것이기에 맡았다 라는 뜻으로 쓴 것이다. 유대사람의 이로움은 하나님께서 믿고 하나님 말씀을 맡기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 말씀이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란 뜻이다. 이 말은 신약성서에 세번 나오는데 행 7:38을 보면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계명에 이 말을 썼다. 넓게 보면 구약성서 전체이겠지만 좁게 보면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오셔서 새 계명을 주셨다. 요13:34에 보면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고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이고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다. 예수께서는 그 계명을 한마디로 요약하여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구약성경과 예수님의 말씀을 모두 잘 아는 유대인 신자들은 무조건 구원받는 특권을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책임을 맡았다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 이다. 오래 예수 믿고 직분을 가졌다고 해서 처음 믿은 사람보다 특권을 가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 책임은 단지 성경지식이 아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강조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을 따라 행하라는 것이다. 그 사랑을 가르쳐 전달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