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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로마서 › 2:5-6

Dawn Word

로마서 2:5-6

의로움을 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쌓고 있다

봉인된 두루마리 편지와 로마로 이어진 길 · 로마서 1장

2025. 8. 8. · 안정섭 목사 · 로마서 2장 강해 설교

로마서 2:5-6 바울은 유대인 신자들이 완고하여 회개할 마음이 없고 하나님의 공정한 재판의 날에 받을 진노를 보물인 줄 착각하고 쌓아 올리고 있다며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행한대로 갚아 주신다고 말한다.

이전 말씀에서는 앞에서 말한 죽어 마땅한 죄인들은 바로 그대라고 하며 하나님께서 그러한 죄를 지은 너희를 멸망시키지 않고 기다리시는 것은 그대가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것이라 했다. 그런데도 그대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풍성하신 사랑을 멸시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내용은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각 사람에게 공정하게 갚아 주신다는 내용이다.

두번째로 바울이 말하려는 요점은 하나님의 심판이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모두 공정하다는 것이다. 원어에서 5절은 그러나 그대의 완고함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 때문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완고하다는 말은 거북이 등껍질처럼 단단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특별히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유대인 신자들은 자신들은 의롭다는 착각이 거북이 등딱지 같았고 회개할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저들의 마음은 마치 군살이 박인 발바닥과도 같았다. 바늘로 찌르고 칼로 잘라내도 아픈 것을 못 느끼는 발바닥처럼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지 못했다. 저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자신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기에 스스로 거룩하다고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어서 진노의 날에 너 자신을 위해 진노를 스스로 쌓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쌓아 올린다는 말은 원래는 보물 같은 것을 차곡차곡 모으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저들은 보물을 모으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를 차곡차곡 모으고 있다는 것이다. 저들은 율법으로 남을 심판하는 것이 보물인 줄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율법 없이 사는 이방인 성도들을 멸시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쌓고 있었던 것이다.

이어서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의 날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재판이 나타나는 때라고 설명했다. 원어에서 의로우신 재판이란 말은 의롭다는 말과 재판이라는 말을 합쳐서 만든 한 단어이다. 그 날이 오면 하나님은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에 따라 재판하시지 않고 각 사람을 하나님의 공정한 재판 기준에 따라 재판하신다는 것이다. 의로우신 재판이라는 합성어가 데살로니가전서 1:5절에서 의로우신 재판이라는 두 단어로 된 것과 같은 뜻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의미는 데살로니가후서 1:5절과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여기에 나타난 합성어는 심판의 성경보다는 심판자의 성격 즉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낸다.

더구나 6절은 독립된 문장이 아니라 5절 끝부분에서 말한 “하나님의 의로우신 재판이 나타나는 날” 이라는 말을 설명한 문장이다. 6절은 그런 하나님이 어떤 성품을 지니신 분이신지 설명한 관계대명사 절이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재판이 드러나는 날에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대로 주신다는 것이다. 이 말은 시편 62:12에 나온 말이다. 비슷한 표현이 잠언 24:12과 호세아 12:2과 예레미야 17:10에도 나온다. 그 중에 예레미야 17:10절은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라고 말하며 그림처럼 묘사한다. 심장과 폐부를 시험하신다는 말은 마음과 생각을 다 아시고 심판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로마서의 중심내용과 반대가 된다. 이 말씀은 의롭다하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의롭다 하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것이다. 하지만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들도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 심판은 구원이냐 멸망이냐에 관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순종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또 믿는다는 말도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구원의 믿음이 있고 없고는 우리 삶에서 사랑의 선한 행위가 있느냐 없느냐로 나타나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안다면 그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려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랑이 없으면 믿는다는 말도 거짓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그래서 갈 5:6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 라고 했다. 믿음이란 사랑을 행함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지 할례를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야고보 2:18에 보면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라고 했다. 이 말은 사랑의 행함이 없는 믿음이 있으면 보여달라는 것이다. 자신은 사랑을 행함으로 믿음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이는 사랑의 실천이 곧 믿음이라는 것이다. 사랑의 행함이 없다면 그 믿음은 거짓이라는 것이다.

흔히 로마서의 믿음과 야고보서의 행함이 충돌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두 구절을 보면 로마서의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나 야고보서의 행함으로 보여주는 믿음은 결국 같은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겉으로 나타나는 행동을 보고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 속에 있는 믿음을 보고 공정하게 심판하시겠다는 것이다. 마음 속에 있는 믿음은 사랑을 실천함으로 겉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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