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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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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로마서 1:14

모두에게 은혜의 빚을 진 자

봉인된 두루마리 편지와 로마로 이어진 길 · 로마서 1장

2025. 7. 28. · 안정섭 목사 · 로마서 1장 강해 설교

로마서 1:14 바울은 자신이 모든 족속과 모든 사회 계층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은혜들의 빚을 갚아야 하는 의무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은 로마 교회 유대인 성도들이 이방인 성도들처럼 완전히 성숙한 지도자들이 되도록 하기 위해 로마로 가길 원했으나 계속 길이 막혔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 자신은 모두에게 빚진 자라고 말하는 내용이다.

14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모두에게 빚진 자라는 것을 알리고 있다. 누구에게 무엇을 받았길래 빚을 졌다고 할까? 이는 전후 문맥을 통해 확인해봐야 한다. 로마서 1:5에 보면 "은혜와 사도 직분을 받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은혜로 구원 받은 것과 은혜로 사도직 받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이 그리스도에게서 은혜로 받은 구원과 은혜로 받은 사도직을 말하는 것이다.

바울이 은혜로 받은 것들도 본인이 뉴올리언즈 침례신학대학원에서 받은 Grant라고 불리던 학비 보조금과 마찬가지로 준 사람에게 되돌려 줄 수 없는 빚이다. Grant는 교회나 개인이 형편이 어려운 목회자 후보생들에 베풀어 주는 선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빚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하는 빚이다. 그래서 1:12에서 다른 사람의 믿음을 굳세게 하기 위해 자신이 받은 신령한 은사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길 원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은혜도 그리스도께 갚을 수 없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줘야 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처럼 은혜의 빚을 갚아야 할 대상을 두 종류로 나누고 있다. 첫째는 그리스 사람이나 미개한 사람이다. 그리스 사람이란 국적이 그리스라는 뜻이 아니다. 이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문명인이란 뜻이다. 또 미개한 사람이란 말은 그리스어를 사용하지 않는 야만인이라는 뜻이다. 바울 당시 로마제국의 공용어는 그리스어였기 때문에 그리스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야만인 취급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은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란 표현이 되므로 모든 민족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란 뜻이다.

두번째는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이다. 이는 교육을 받은 상류층 사람들과 교육받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오늘날은 신분에 따라서 교육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도 지혜가 있을 수 있고 부유한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바울 당시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는 최상류층 귀족들만 교육을 받았고 일반인들은 모두 다 문맹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최상류층 지배계급이나 그 밖의 일반인들이나 모두 다 라는 뜻이다. 따라서 바울이 빚 갚을 대상은 모든 민족과 모든 사회계층이다.

바울이 사용한 빚진 자란 말은 바울이 만들어 낸 말이 아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는 말은 주께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예수께서 비유로 하신 말씀에서 온 것이다. 누가복음 8:41-42에 보면 500 데나리온 빚진 자와 50 데나리온 빚진 자의 비유가 나온다. 두 사람 다 빚을 탕감받았다면 누가 더 사랑하겠느냐고 질문하셨다. 또 마태복음 18:23-35에 보면 일만 달란트 빚진자와 500 데나리온 빚진 자가 나온다.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 자신에게 500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않은 이야기이다. 빚을 탕감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받은 은혜를 나누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서 보면 우리는 모두 빚진 자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가 지닌 모든 빚을 탕감해주셨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히 빚진 사람이 아니라 진 빚을 이미 탕감 받은 사람들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빚을 탕감 받은 자는 다른 사람에게 갚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어떻게 해서 우리의 빚을 다 탕감해주셨을까?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짓고 그 죄의 빚 때문에 죄의 노예로 살다가 멸망할 수밖에 없던 존재였다. 이런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 죄를 대신 지고 돌아가시게 하셨다. 그리고 그를 믿는 자는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겠다고 하나님 편에서 일방적으로 선언하신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우리 죄를 위해 예수께서 어떤 고통을 당하셨나? 예수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실 때 받은 고난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수치이고 다른 하나는 고통이다. 우리는 흔히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고통 당하신 것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께서 당하신 고통 뿐만이 아니라 수치까지도 주목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 십자가에 달렸던 유대인들은 예수님만이 아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 중에 무력항쟁으로 로마와 싸우던 독립투사들이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했다. 예수님 대신 풀려난 바라바나 예수님과 함께 처형당한 두 강도도 역시 유대인 무장 독립투사들의 지도자였다. 이들은 로마제국에 대해 반역죄를 지었기 때문에 십자가형을 당한 것이다. 하지만 복음서 곳곳에서 보면 빌라도 조차 예수님은 죄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단지 유대인 지도자들이 로마에 반역한 자신들의 왕이라고 고소한 것 뿐이다.

하지만 이는 자신들이 처형시킬 권한이 없기에 구실로 붙인 것일 뿐이다. 실제로는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기 때문에 죽이려고 거짓 고소를 한 것이다. 만약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면 분명 신성모독죄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셨기에 무죄인 것이다.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하나님은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함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평화의 길을 여신 것이다.

유대인 독립투사들도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했지만 그들은 자기 동족들에게 존경을 받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벌거벗겨진 채 십자가에 달렸어도 동족들에게 조롱 당하지 않았다. 이는 마치 안중근이나 윤봉길 같은 분들을 벌거벗겨 남대문 밖에 십자가에 단것과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무 죄도 없이 고난 당하시면서 동족들에게 조차 말할 수 없는 수치와 모욕까지 당하셨다.

먼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부터 채찍에 맞으셨다. 이 채찍은 그냥 가죽이 아니라 쇠붙이가 박혀 있어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가는 무서운 채찍이었다. 그 뿐 아니라 로마병정들에게 말할 수 없는 모욕과 조롱을 당하셨다. 로마병정들은 왕이 입는 주홍색 옷을 입히고 가시로 왕의 면류관을 만들어 씌웠다. 또 왕권을 상징하는 지팡이 대신 갈대를 들게 했다. 그리고 "유대인의 왕 만세" 라고 희롱하고 침을 뱉고 갈대로 머리를 쳤다.

영화에서는 하체가 가려져 있지만 원래는 수치심을 주기 위해 벌거벗겨 매달았다. 영화에서는 14피트 정도는 족히 되어 보이다. 왜냐하면 발판이 사람들의 가슴이나 얼굴 쯤에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 나온 십자가를 대충 계산해보면 땅에 묻힐 부분까지 포함해 17피트 정도는 되야 한다. 하지만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십자가는 발이 겨우 땅에서 떨어지거나 잘해야 1-2피트 정도 높이에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높이는 수치심을 극대화시켰을 것이다. 또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문제는 대소변의 문제이다. 때로는 며칠씩 생존해 있기도 했다는데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대소변을 그냥 흘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또한 말할 수 없는 수치이다. 동족인 유대인들조차 이러한 모습으로 매달려 있던 예수님을 향해 조롱을 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도 함께 조롱했다. 호산나를 외치며 유대인의 왕이라고 환호하던 저들은 이제 실망한 나머지 이처럼 수치스러운 모습의 예수님을 향해 조롱을 퍼부은 것이다.

예수께서 당한 이런 수치와 고통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를 이해하려면 구약성경을 봐야 한다. 출애굽기 12장에 보면 마지막 재앙인 장자가 죽는 재앙이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어린 수컷 양이나 염소를 잡아 그 피를 문에 바르고 그 고기를 먹으라고 하셨다. 그러면 그 피를 볼 때에 장자를 죽이지 않고 넘어가신다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자기의 맏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유월절의 어린 양으로 삼으셨다. 죄로 죽어야 할 우리를 대신해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다. 그리고 그 피를 믿는 자들은 구원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편에서 일방적으로 선언하신 약속이므로 피조물인 우리가 이유를 물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1:5절에 나오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은 은혜인 것이다. 바울은 그래서 로마서 6:23절에서도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라고 했다. 은사라는 말이 곧 은혜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죄의 값을 탕감 받은 빚진 자들인 것이다. 우리는 이 빚을 다시 그리스도께 돌려 드릴 수 없다. 우리는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에 있는 유대인 신자들에게 자신이 모든 족속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다 빚진 자 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유대인 신자들이 은혜와 함께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철저히 구별된 삶을 살았다. 유대인 신자들도 역시 이방인들과 접촉하길 꺼려했다는 것을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을 통해 알 수 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할례받고 율법을 지켜 유대인화되는 것은 허용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이방인들에게 가서 전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심각한 논쟁이 벌어졌었다. 십 오 년 이상이 흘렀지만 로마 교회로 돌아온 유대인 신자들은 아직도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구별을 두었던 것이다. 이러한 저들에게 바울이 말하려는 것은 자신처럼 되라는 것이다. 바울은 빚을 탕감받은 자신처럼 유대인 신자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았다면 같은 빚을 탕감받은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함께 복음의 빚을 진 자의 심정으로 살자는 것이다.

우리 모두도 바울과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바울처럼 구원의 은혜와 복음전하는 직분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이 은혜와 직분을 받았다고 해도 절대로 하나님께 그 빚을 되갚을 수는 없다. 만약 우리가 받은 이러한 은혜들의 값을 하나님께 지불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다. 이 은혜는 하나님께 갚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은혜의 빚을 갚는 방법이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10:8에서도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셨다. 은혜는 강물처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 하나님의 은혜는 아직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이나 아직 믿음이 부족해서 충분히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흘러가게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은혜들을 나누어 줄 때 주의해야 할 것이 한가지 있다. 우리가 이러한 은혜들을 나누어 줄 때 절대로 우리 스스로 자격 있다 생각하면 안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아직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고 남을 판단한다면 정확히 바울 당시 유대인들과 똑 같은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아직 은혜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고린도전서 15:1-4에 보면 은혜 받은 자들은 다 이렇게 전파하고 있고 여러분은 믿었다고 했다. 은혜 받은 자들은 누구나 다 바울처럼 모든 이들에게 전파했다는 것이다. 문화적 배경이나 지적 배경에 따라 자격이 결정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우리 모두 아무 자격도 없고 노력한 것도 없는데 거져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5:1-4에 따르면 이 은혜의 복음은 우리 같은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믿는 자들에게는 복음을 전할 필요 없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 전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바울은 지금 믿는 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바울이 잘못하고 있나? 로마서 1:11절에 보면 믿음을 굳세게 하기 위해서 라고 되어 있다. 어떻게 믿음이 굳세게 되는가? 로마서 10:17에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해서 라고 했다. 옛날 일반인들은 책이 없었기에 읽어주는 말씀을 듣기만 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성경책을 갖고 있으므로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읽음에서 생긴다" 라고 해야 한다. 또 이 믿음은 계속 반복해서 되새겨야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누가복음 11:28절에서 말씀을 듣고 계속 간직하고 있는 자가 복되다 했다. 로마서 15:15절에서 바울도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복음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려는 것 라고 했다.

따라서 믿지 않는 자들에게 은혜의 복음을 들려줄 뿐 아니라 믿는 자들에게도 반복해서 읽고 듣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믿지 않는 자들은 믿게 되고 믿는 자들은 점점 더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 열매를 맺어 다시 복음의 씨를 뿌리는 복음의 빚진 자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은혜의 빚은 목사만 진 것이 아니다. 베드로전서 4:10에 보면 각 사람은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관리인으로 서로 봉사하십시오 라고 했다. 우리 모두가 이 복음의 빚진 자의 심정을 가져야 한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복음 전하고 믿는 자들에게는 은혜를 다시 되새기게 해서 모두가 복음의 빚진 자의 심정을 갖게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14절에서 말하는 바울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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