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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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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사도행전 28:7-11

자신은 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임을 기도의 능력으로 알린 바울

2025. 7. 11. · 안정섭 목사 · 사도행전 28장 강해 설교

사도행전 28:7-11 그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인 보블리오는 바울 일행을 자기 집으로 초대했는데 그 아버지는 열병들과 이질에 짓눌려있었다. 바울이 기도로 치료하니 그 아버지가 나았고 그 섬 사람들도 아픈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치료를 받았다.

이전 말씀에서 원주민들은 바울이 뱀에게 물린 것을 보고 바울이 살인자라며 신의 심판이라고 했지만 오랫동안 지켜봐도 바울에게 아무 이상이 없자 생각을 바꾸어 신이라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이 병자들을 기도로 치료해 줌으로 신이 아님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이제 큰 문제가 생겼다. 섬 사람들은 바울을 신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14:8-18절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전도하다가 나면서 부터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을 치료했다. 그러자 그곳 사람들은 바울을 제우스라 부르고 바나바는 헤르메스라고 부르며 경배를 하려 했다. 그 때 바울은 옷을 찢으며 자신은 신이 아니라고 했다. 이번에도 똑같은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섬 사람들이 직접 바울에게 경배하지는 않았기에 바울도 즉시 나서서 옷을 찢으며 자신은 신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신이 아님을 보여준 것이 7-11절의 내용이다.

7절은 그 근처의 토지가 그 섬에서 제일 높은 사람의 소유라고 했다. 새번역은 추장이라 번역했지만 이러한 번역은 원어에서 그 섬 사람을 야만인이라고 한 것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원어에서 야만인이라는 말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언어가 다르다는 뜻이지 미개한 야만인들이라는 뜻이 아니다. 따라서 추장이 아니라 그 섬의 으뜸가는 지도자 라고 번역해야 한다. 그 사람의 이름은 보블리오이다.

새번역에서 또 한가지 잘못된 번역은 보블리오가 그 근처의 농장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번역한 것이다. 원어는 보블리오가 주어가 아니라 토지가 주어이다. 원어는 그 근처의 토지가 보블리오에게 속해 있었다는 뜻이다. 모든 영어 번역들은 원어와 같이 토지를 주어로 번역했다. 개역도 토지가 있다고 한 것은 잘 번역했지만 역시 보블리오를 주어로 취급했다. 특별히 의미를 전달하는데 문제가 없다면 영어 번역들처럼 원어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야 한다고 본다.

보블리오가 우리를 그리로 초대를 해서 사흘동안 친절하게 대접해 주었다고 했다. 우리라는 말은 누가가 자신도 포함되었을 때 쓴 말이다. 따라서 보블리오는 이백 칠십 육명 모두 다 초대했다는 뜻이 아닌 것이다. 누가와 그 일행을 초대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섬의 여러 집들로 여러 곳으로 흩어졌을 것이다. 보블리오는 바울이 독사에 물렸어도 죽지 않았다는 소문을 듣고 바울과 누가 일행을 신으로 여겨 그 섬의 최고 지도자인 자기 집으로 초대했을 것이다.

우리를 영접했다는 말의 문자적인 뜻은 높이 받들었다는 뜻이다. 귀한 물건을 떠 받들듯 높이 받들어 모셨다는 뜻이다. 또 사흘이나 친절하게 머물게 했다고 했다. 친절하다는 말은 사랑이라는 말과 생각한다는 말이 합쳐져서 된 말이다. 예의상 친절하게 한다는 뜻이 아니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친절을 베푼다는 뜻이다. 머물게 한다는 말은 낮선 이방인들을 손님으로 맞이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높이 떠 받들고 사랑의 마음으로 친절하게 모셨다는 것은 최고의 대우를 했다는 뜻이다. 그 섬에서 최고 높은 사람이 이렇게 최고의 대우를 한 것은 이들이 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8절에서 보블리오의 아버지가 열병과 이질에 걸려서 누워있었다고 했다. 열병이라는 말은 복수이기 때문에 여러 차례 계속해서 고열이 났었다는 뜻이다. 원어는 보블리오의 아버지는 열병들과 이질에 의해 침대 위에 눕혀진 채 짓눌려졌다는 뜻이다. 이는 Malta Fever라고 불리던 염소 젖으로 인한 간헐적 고열이다. 이러한 말타 열병은 1887년에 그 미생물이 밝혀졌는데 이는 말타의 염소 젖에서 나온 것이다. 이 병은 4개월간 지속되고 때로는 2-3년 지속되기도 한다. 또 이질이라는 말은 파괴한다는 말과 내장이라는 말이 합쳐진 말이다. 장을 파괴한다는 뜻이다. 계속 설사를 해서 장이 다 망가지는 모습을 나타낸 말이다.

바울은 그에게로 들어가 기도하고 안수하여 낫게 했다. 바울이 기도했다는 것은 자신이 신이 아님을 보여준 것이다. 신은 치료할 때 기도를 안한다고 당시 사람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안수하여 낫게 한 것은 자신이 죄인이 아님을 보여준 것이다. 왜냐하면 신은 죄인의 기도에는 응답하지 않는다고 당시 사람들은 믿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울은 보블리오의 아버지를 치료하면서 자신이 살인자도 아니고 신도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 것이다. 이번 경우에는 즉시 옷을 찢으며 신이 아니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바울을 경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9절에서 그 섬에서 병을 앓고 있는 다른 사람도 찾아와서 고침을 받았다고 했다. 이렇게 바울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치료한 것은 보블리오 뿐만 아니라 그 섬의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은 살인자도 아니고 신도 아님을 알리는 기회가 된 것이다.

10절에서 그들은 극진한 예로 우리를 대하여 주었다고 했다. 원어는 많은 존경으로 존경해 주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같은 말에서 온 말을 거듭 사용해서 말하는 것은 최고의 존경을 해 주었다는 뜻이다. 이들은 보블리오를 비롯한 섬사람들이다. 특별히 치료 받은 사람들이나 그 가족들이 그렇게 존경을 해 준 것이다. 여기서 바울이 아니라 우리를 그렇게 존경해 주었다고 했다. 그렇기에 의사인 누가도 바울과 함께 전문적인 능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는 자신이 한 일은 빼놓고 바울이 한 일만 기록한 것이다. 누가는 병을 진단하여 바울에게 알려주고 바울은 기도하여 치료해 주었을 것이다. 둘이 한 팀이 되어 그 섬 사람들을 치료했을 것이다. 이들이 배에 오를 때 사람들은 쓸 것을 배에 올려 주었다.

11절은 석 달 후 그 섬에서 겨울을 난 뒤 디오스구로 라는 이름이 붙은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났다고 했다. 말타는 시라쿠스 대항구에서 하루도 안걸리는 거리이다. 그러나 겨울이라 항해가 불가능했기에 석 달을 그 섬에서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그 배의 이름이 디오구로스라기 보다는 뱃머리에 디오구로스가 새겨진 배라는 뜻일 것이다. 디오구로스는 제우스의 쌍둥이 아들 Castor와 Pollux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항해의 수호신들이었다. 그들의 별자리는 Gemini인데 폭풍 중에 이 별자리를 보는 것은 행운의 신호로 여겨졌다.

필자가 초등학교 다닐 때 Gemini는 미국의 우주선 이름이었다. 당시 필동은 깡통을 펴서 만들고 페인트를 칠한 것이었는데 필자의 필통에도 우주선 그림과 Gemini가 새겨져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확인해 보니 NASA는 1961-1966년에 Gemini project를 실행했다. 이 때 NASA에서 이 프로젝트 이름을 Gemini로 붙인 것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의 쌍둥이 아들들의 별자리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는 바울 당시 사람들만 신화의 신들을 섬긴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20세기의 과학자들도 Gemini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은 단순히 재미로 그렇게 했다고 볼 수는 없다. 20세기의 과학자들도 우주선을 쏘아 올리면서 바울 당시 항해자들처럼 행운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했을 것이다.

누가가 디오구로스가 새겨진 배를 말한 이유는 먼저 역사적으로 정확한 증언이라는 뜻일 것이다. 누가가 분명히 뱃머리에 새겨진 디오구로스 상을 보고 그 배에 올랐을 것이다. 따라서 누가의 기록은 소설이 아니라 분명한 목격자의 증언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또한 오늘 말씀에서 말타 섬 사람들이 바울을 신으로 생각한 것과도 연관이 있는 것이다. 당시 바울이 전도하던 당시 사람들은 온통 그렇게 수많은 신들을 섬기며 살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우상을 섬기던 지중해 연안 사람들 가운데서 섬김의 본을 보여주었다.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다가 신으로여기자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을 고쳤다. 이를 통해 자신은 신이 아니고 죄인도 아니며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 말씀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첫째 바울은 자신도 힘든 상황에 있으면서도 온 힘을 다해 친절을 베풀었다. 오랫동안 풍랑에 시달려 힘든 가운데 기진맥진 했을텐데도 나무를 모아다가 불에 던져 놓아 사람들을 따뜻하게 한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 보여주신 남 섬기는 본을 따라가는 모습이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흉내내기 어려운 섬김이다.

둘째로 바울은 사람들이 자신을 신으로 여길 때 자신은 신이 아니며 하나님의 종임을 보여주었다.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하게 되면 우리는 어느 틈에 하나님의 자리에 서게 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겸손히 내려오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자리에 서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시는 것을 알게 될 때 특별히 겸손히 낮아져서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우리를 높여줄 때 우리는 바울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종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종임을 보여줄까? 우리도 바울처럼 우리가 기도하는 사람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1960년대의 최고 지식인들도 Gemini라는 이름을 통해 행운을 빌었던 것이 오늘날도 여전히 존재한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불길한 징조 같은 것을 두려워한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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