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8:4-6 원주민들은 바울이 뱀에게 물린 것을 보고 바울이 살인자라며 신의 심판이라고 했지만 오랫동안 지켜봐도 바울에게 아무 이상이 없자 생각을 바꾸어 신이라고 했다.
이전 말씀에서 모두가 상륙하여 완전하게 구조된 뒤에 섬 사람들은 얻을 수 없는 친절을 베풀고 불을 피워주었지만 바울은 정말 많은 나무를 모아 불에 넣는 차원이 다른 친절을 보이다가 독사에 물렸다. 이어지는 말씀은 독사에 물린 바울이 죽지 않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신이라고 생각하는 장면이다.
4절에서 섬사람들은 바울의 손에 매달려 있는 짐승을 보고 서로 말했다. 이들은 이 독사를 사나운 짐승으로 표현을 했다. 어떤 이들은 오늘날 말타에 독사가 없으니 당시에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2000년전에도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오늘날은 관광지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살기에 전멸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이들이 서로 말하기를 이 사람은 살인자라고 했다. 그가 바다로부터는 구원을 얻었지만 정의의 여신이 살지 못하게 했다고 했다.
정의의 여신이라는 말은 개역개정은 공의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이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와 복수의 여신이라는 뜻으로 쓰였을 것이다. 역시 새번역이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잘 나타내 주는 원어에 충실한 번역이다. 당시 그리스 로마 세계에 살던 사람들은 바다에 빠져 죽는 것과 뱀에 물려 죽는 것을 살인자들에 대한 신들의 심판이라고 믿었다. 바울은 이 두가지에 다 관련이 되었기에 섬 사람들은 바울은 필시 살인자일 것이라 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좋은 글들을 모아놓은 필사본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그 중에는 기원전 1세기의 것들도 있다. 그 중에 이와 비슷한 내용이 있다. "난파된 배의 선원은 죽음의 바다의 광포한 회오리 바람을 탈출해서 리비아 해변 모래밭에 엎드려져 있었다. 그런데 치명적인 독을 가진 독사가 그를 물어 죽였다. 그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헛되게 파도와 싸웠는가?" 신들은 이 악한 선원이 목숨을 걸고 해변에 도착했지만 뱀을 시켜서 죽게 했다는 것이다. 당시 지중해 사람들은 폭풍으로 죽거나 뱀에 물려 죽는 것을 신의 심판으로 믿었던 것이다.
이어지는 5-6절은 한 문장이다. 한편으로 바울은 이렇게 반응했고 다른 한편으로 섬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했다는 뜻이다. 5절에서 먼저 바울은 그 짐승을 불 속에 떨어버렸다. 누가는 이어서 그는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6절은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섬 사람들은 그가 살이 부어오르거나 당장 쓰러져 죽을 것으로 생각하고 기다렸다. 여기서 기다렸다는 말은 계속해서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뜻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기다려도 아무런 이상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은 생각을 바꾸어 그를 신이라고 하였다. 생각을 바꾼다는 말의 문자적인 뜻은 옆에 던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자신들 스스로가 던져진다는 뜻이기에 한쪽에 서 있다가 이들은 반대 쪽으로 자신들의 몸을 내 던졌다는 뜻이 된다. 이는 마치 출발 동서남북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한 쪽에 서 있다가 줄이 쳐지려 하자 갑자기 반대편으로 몸을 던지는 것과도 같다. 이는 물론 비유적인 표현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자신들이 믿고 있는 신화에 따라 살인자라고 생각했다가 독사에 물려도 죽지 않자 이번에는 신이라고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이것은 누가의 유머이다. 바울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마음이 바뀐 것은 당시 이 말씀을 듣던 크리스천들을 웃겼을 것이다. 누가는 살인자로 정죄했다가 갑자기 신이라 말하는 이들의 어리석음을 조롱한 것이다. 그러나 누가는 이런 사람들 자체를 조롱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어리석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