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7:33-38 날이 새어갈 때에 바울이 모든 사람들에게 음식을 먹어야 목숨을 유지할 힘을 얻을 것이라고 말하며 한 사람도 상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는 바울이 빵을 들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자 모두가 음식을 먹었고 남은 식량은 바다에 버려서 배를 가볍게 했다
이전 말씀에서 선원들은 어느 육지가 배에 접근하고 있다고 추정하고 배의 뒷부분에서 닻을 내리고 기다리던 중 선원들은 뱃머리에서 몰래 구명보트로 도망하려 하자 바울은 선원들이 도망가면 백부장과 군인들도 무사할 수 없다고 말하여 밧줄을 끊어버려서 구명보트를 바다에 떨어뜨렸다. 이어지는 말씀은 날이 새어갈 때에 바울이 모든 사람들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자 모두가 음식을 먹었고 남은 식량은 바다에 버려서 배를 가볍게 했다는 내용이다.
33-38절은 세번째 권고가 나온다. 바울은 구조 받기 위해 음식을 먹으라고 권한 것이다. 14일 동안 음식을 먹지 못했기에 모두가 지쳐있었다. 음식을 먹지 않으면 잠시 후 헤엄쳐 나갈 힘도 없기 때문이다. 33절에서 날이 새어갈 때에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면했다. 이 배에서 바울이 사람들이 자기에게 주목하도록 명령하는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결정적인 순간에는 보통 사람들보다 바울 같이 거룩한 사람이 더 주목을 받는 것이다.
22절에서 바울이 한 사람도 목숨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했을 때는 반신반의했을 것이다. 그러나 열 나흘 동안 풍랑 속에서도 아무도 죽지 않았기에 이제 바울의 말을 어느정도 믿었을 것이다. 이제 곧 다 죽게 된 상황에서 바울은 음식을 먹으라고 권면하는 것은 앞에서 말한대로 모두가 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확신하고 말하는 것이다. 바울은 여러분 모두 오늘까지 열 나흘 동안 마음 졸이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굶고 지냈다고 말했다.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는 곡식으로 된 음식을 하나도 먹지 못했다는 뜻이다. 마음 졸인다는 말은 긴장하며 기다렸다는 뜻이기에 이들이 먹지 못한 이유는 멀미 때문이라기 보다는 풍랑 때문에 배를 꼭 붙잡고 있으며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34절에서 바울은 안심시키기 위해 다시 음식을 먹으라고 권면했다. 34절 뒷부분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이어간다. 원어에서는 이것은 너희 구원을 위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누가가 구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을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과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상기시키는 은밀한 상징일 수 있지만 이 주제는 누가의 이야기 안에서 더 이상 발전되지 않고 암시적으로만 남아 있다. 그렇기에 여기서 구원이라는 말로 강조되는 것은 육체적 구원이다. 다수는 이 구원이 영적인 구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되어 무사히 육지에 내린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또 다시 왜냐하면 이라고 말하며 너희 머리털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구원이라는 단어에 꽂혀 해석하기 보다는 아무도 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문맥을 통해 해석해야 한다. 이는 전원 완전하게 구조될 것이라는 뜻으로 말하는 히브리식 과장법이다.
그렇게 말한 바울은 35절에서 빵을 들어 모든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떼어서 먹기 시작했다. 빵을 들어 감사를 드린다는 말은 주의 만찬을 뜻할 수 있는 말이다. 그렇기에 어떤 이는 누가복음 24:30, 35절과 사도행전 2:42, 46절과 비교해 볼 때 주의 만찬의 언어와 일치하는 것을 놓칠 수 없고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나온 빵을 들고 감사한다는 말은 주의 만찬과 연결시킬 수 밖에 없는 표현이기에 누가는 주의 만찬을 암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불신자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바울이 주의 만찬을 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는 일반적인 유대인들의 식사라고 말한다.
하지만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나타난 이러한 표현을 보면 단순히 바울이 유대인이었기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렸다고만 보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주의 만찬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사도의 지혜와 안내로 중재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육체적 구원이 바울이 전하는 영적 구원을 가리키고 있는 비유의 절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 주의 만찬이 아니라 지친 몸을 회복하기 위한 식사였다고 말하면서도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음식을 나누는지 자신의 본보기를 보여준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바울은 자신이 믿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생명을 자신에게 맡겨주셨다고 확신하며 증거한 뒤 자신이 믿는 하나님께 빵을 들어 감사를 드리고 먹는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누가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 것에 대해 빵을 들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분명히 주의 만찬의 의미에 대한 비유로 암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자 36절에서 다른 사람들도 모두 다 안심하고 먹기 시작했다. 새번역에서 용기를 얻어라고 번역한 말은 22절과 25절에서 안심하라고 한 말과 같은 어원에서 온 말이다. 이제야 모두가 편안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기 시작한 것이다. 37절에서 그 때 배에 탄 사람이 276명이라고 했다. 이 숫자가 너무 많다며 비현실적이기 상징적인 숫자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요셉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한 배에 600명이 탔다고 했기에 이는 틀림없는 사실인 것이다. 아마도 음식을 나누어주면서 세어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배의 책임자였던 백부장과 로마 군인들은 그 숫자를 알고 있었기에 그들에게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가 세보지도 않고 정확한 숫자를 말할 리가 없다.
38절에서 모두가 배불리 먹은 뒤에 곡식을 모두 바다에 버려서 배를 가볍게 했다고 했다. 배에 실은 화물과 모든 항해 도구들을 다 버리면서도 식량 만큼은 많이 남겨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육지를 앞두고 있기에 안전을 위해 다 버린 것이다. 무거운 곡식을 싣고 가다보면 배를 통제하기 어렵기에 다 버린 것이다. 사실 남은 곡식도 큰 돈일 것인데도 다 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욕심을 내면 모두가 죽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던 바울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모두 다 살 수 있도록 권고하는 참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바울은 모두가 낙심하고 지쳐있는 상황에서 음식을 먹고 힘을 내라고 했다. 자기들만 살겠다고 구명보트를 내려 도망하려던 선원들과 모든 사람들을 살리려고 소망을 주며 격려하고 음식을 먹으라고 하던 바울의 모습이 대조가 된다. 오늘날 우리도 역시 이기적인 모습을 버리고 많은 이들을 격려하며 본을 보여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구원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바울이 빵을 나누면서도 자신이 믿는 하나님께서 모두를 구원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 기도를 드린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잘 먹고 하나님 주신 육신을 건강하게 잘 관리해야 한다. 그래야 바울처럼 삶을 통해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