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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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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7:9-12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인정받아 회의에 초대받은 바울

2025. 7. 1. · 안정섭 목사 · 사도행전 27장 강해 설교

사도행전 27:9-12 아름다운 항구에서 많은 날들이 지나고 항해하기 어려운 때가 왔기에 바울은 자신의 항해 경험을 바탕으로 큰 피해가 있을 것이라며 항해하지 말라고 했지만 사람들은 좀더 편안한 항구에서 쉬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뵈닉스까지 가기로 결정했다.

이전 말씀에서 백부장은 이탈리아로 가는 큰 배인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배를 만나 바울 일행을 태우고 가는데 맞바람 때문에 크레타 섬에 바싹 붙어 아주 어렵게 항해하여 아름다운 항구 라는 이름을 가진 항구에 도착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이 항해를 하지 말라고 권고 했지만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었고 뵈닉스로 가서 겨울을 나기로 결정하는 내용이다.

9절은 많은 시일이 흘렀다고 했다. 무라에서 아름다운 항구까지 엉뚱한 곳으로 떠 밀려 오면서 너무 많은 날들이 흘러가 버린 것이다. 원어에서는 바로 이어서 배가 항해하기 위태로운 때가 되었다는 말이 나온다. 항해하기 위태롭다는 말은 바닥을 뜻하는 말에 레슬링을 할 때 넘어진다는 말을 합쳐서 된 말이다. 이는 파도와 배가 레슬링을 하는데 배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장면을 묘사한 말이다.

또 이어서 나오는 말이 금식하는 절기도 이미 지나갔다는 것이다. 금식하는 시기란 유대인들의 속죄일인데 AD 59년 속죄일은 10월 5일이었다. 요셉푸스는 본래 9월 중순 이후에는 항해가 위험한 계절이라고 했다. 이제 겨울이 오기 전에 로마에 갈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진 것이다. 지중해 연안은 겨울철이 우기이고 9월부터 1월까지가 폭풍이 몰아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바울은 그들을 권했다고 했다. 권했다는 말은 옆에서 말했다는 뜻이다. 바울이 선장이나 선주가 아니기에 옆에서 말한 것이다. 1세기 철학자 Seneca도 더욱 사려깊은 항해사들은 항해에 관한 지식이 있는 사람들의 조언을 구하고 주의깊게 듣는다고 했다. 바울은 바로 지중해를 항해한 경험이 많은 사람이기에 더 이상 항해는 위험하다고 경고한 것이기에 그 조언을 들었어야 했다. 보통 사람들은 평생 한번 배를 타는 것도 쉽지 않았던 때에 바울은 얼마나 배를 많이 탔는지 세번이나 파선한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28:11절을 보면 3개월간 말타에 머물렀다고 했다. 11월초에서 1월말까지 머물렀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10월 중순 경 아름다운 항구를 떠났을 것이다.

10절은 바울이 항해의 책임자인 백부장과 선장과 선주들의 회의에서 말한 내용이다. 바울은 백부장에게도 인정을 받은 사람이었고 그 배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존경을 받았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바울은 항해 경험도 누구보다 많았기에 바울을 회의에 초대를 받았을 것이다. 바울은 그 회의 석상에서 이번 항해가 짐과 배만이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말했다.

개역에서 타격으로 번역한 말은 본래 교만하여 폭력을 함부로 행사하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사야에서도 주로 교만하다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이러한 뜻이 사람에게 폭력으로 분노를 표현한다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바다라는 말은 없지만 분노한 바다가 그렇게 폭력을 행사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바로 이어서 많은 손실을 입는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많은 손실이라는 말은 배가 분노한 바다에게 얻어 맞아 박살이 난 뒤 많은 것을 잃게되는 장면을 묘사한 말이다. 배와 화물만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바울과 함께 탄 모든 사람들의 생명도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하나님께서 알려주셔서 예언한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자기의 경험에서 나온 견해를 말한 것일까?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것을 말한 예언인지 자신의 항해 경험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다면 문맥을 통해서 확인해 봐야 한다. 27:22절에서는 "너희 중에는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라"고 말했다. 22절에서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했기에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셨는데 10절에서는 생명에도 손해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22절에서는 생명에 손상이 없을 것이라고 상반된 말을 할 리가 없다. 다수도 10절은 예언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말이라고 해석한다.

11절은 그러나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었다고 했다. 백부장은 죄수들을 로마까지 데려가는 책임을 맡았고 곡물들도 식민지에서 로마로 운반하는 것이기에 모든 결정권은 로마군대의 장교인 백부장에게 있었다. 백부장은 바울을 신뢰했지만 항해에 관한 것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신뢰한 것이다. 백부장도 좀 더 큰 항구에서 편안히 쉬길 원했을 것이다. 그런 마음 때문에 바울의 합리적인 조언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선장과 선주도 안전한 항구가 있고 비교적 큰 도시였던 뵈닉스(Phoenix)에서 편히 쉬고 싶은 욕심에서 이렇게 결정한 것이다. 욕심 때문에 위험한 시기에 “조금만 더 가자! 아직은 괜찮겠지!” 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결정한 것이다.

12절은 그 항구가 겨울을 나기에 적합하지 않았기에 대다수는 거기를 떠나 뵈닉스로 가서 겨울을 나기로 결정했다. 아름답다는 이름의 항구는 작고 매우 불편했기에 떠나려고 한 것이다. 반면에 뵈닉스는 크레타의 항구인데 한쪽은 서남쪽을 한쪽은 서북쪽을 향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뵈닉스는 육지로 감싸여 있는 항구이고 훨씬 더 안전한 곳이라는 뜻이다. 선장과 선주는 아름다운 항구까지 온 것처럼 해안선을 따라 가면 뵈닉스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바울은 배가 바람에 떠밀려서 먼 바다로 표류하게 될 것으로 본 것이다. 오늘날 크레타 섬의 지도를 놓고 보아도 바울의 의견이 옳다. 바울은 세상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혜로운 조언을 하며 그들을 안전한 길로 이끌려 했던 지도자였다.

오늘 말씀에서 돋보이는 것은 바울이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도 바울이 그들에게도 지도력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단순히 바울이 로마시민이었기에 지도력을 발휘한 것이 아니다. 27:3절에서 백부장 율리오에게도 인정을 받았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바울이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차원높은 인격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이는 단순히 세상의 교양있는 사람들처럼 친절하게 사람들을 대한 것이 아니다. 바울은 분명히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차원의 사랑과 선행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그 모습에 감동이 되어 율리오는 바울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친절을 베풀어 준 것이다. 선장과 선주도 이러한 바울의 섬김의 지도력에 감화를 받아 자신들의 회의에 바울을 초대한 것이다.

바울의 지도력은 원수 사랑에서 멈추지 않는다. 위기를 만났을 때 자신이 가진 지혜를 사용해서 그들에게 살 길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조언이 무시당하고 자신들 뜻대로 결정해 버렸다. 바울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당한 것이다. 우리의 지도력도 역시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그 사랑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우리의 지혜의 조언을 듣고 싶게 살야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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