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6:30-32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함께 있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물러가 바울이 무죄라고 했고 아그립바 왕은 바울이 황제에게 상소하지 않았더라면 석방할 수 있었겠다고 베스도에게 말했다.
이전 말씀에서 베스도를 향해 아그립바 왕은 이것을 다 알 것이라고 말한 바울은 갑자가 아그립바 왕을 향해 구약의 예언서들을 믿느냐고 질문하자 진퇴양난에 빠진 아그립바 왕은 적은 말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한다며 빠져나가려 했지만 바울은 자신이 사슬에 매인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다 자신처럼 되길 원한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아그립바 왕이 베스도에게 바울이 무죄라고 말하는 내용이다.
그러자 30절에서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났다. 31절에서 이들은 따로 조용한 곳으로 물러가서 서로 말했다고 했다. 물러갔다는 말은 법정을 떠나 다른 장소로 갔다는 뜻이다. 자기들끼리 한 말은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라는 것이다. 그러나 베스도는 사실 그런 말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 아마도 아그립바가 말한 것에 베스도는 동조했을 것이다. 25:9-11절을 보면 베스도는 뻔히 다 알면서도 유대사람들의 환심을 사고자 바울을 산헤드린 공회에 넘기려 했기 때문이다.
32절에서 아그립바는 베스도에게 말하기를 이 사람이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고 말했다. 물론 아그립바의 말은 진심으로 바울의 석방을 원한다는 뜻이 아닌 자신의 의롭게 보이려고 한 말이다. 이 부분은 바울의 무죄를 더욱 강조할 뿐만 아니라 벨릭스와 베스도가 이 사건을 처리하는데 있어 연루되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무죄라면 베스도는 가두어두지 않고 석방시킬 수 있었다. 벨릭스도 모든 유대인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순수한 정의에 물을 타서 그 정의를 희석시킨 것이다. 벨릭스나 베스도 둘 다 로마 황제와 유대교 지도자들의 눈치를 보는 것은 똑같다. 이들의 악함 때문에 바울을 가두어둔 것이다. 무죄라면서 왜 가두어두나? 벨릭스나 베스도 모두 유대인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순수한 정의에 물을 타서 희석시켰다. 인간들의 악함 때문에 이들은 바울을 가두어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을 최고로 잘 믿는다던 유대교 지도자들과 유대인들을 향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라고 했기에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만약 바울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본다면 나만 사랑하고 나와 내 가족만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등지고 있던 마음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그 회개에 합당한 삶을 행동으로 보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가 전해야 하는 것은 교회 나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려 하나님 기뻐하시는 삶을 살라고 전해야 한다.
그렇게 복음을 전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가 핍박을 당하지 않도록 해주시지 않는다. 핍박을 견디게 하시지만 위험에 빠지면 건져주신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를 건져내서 다시 우리를 공격하던 사람들에게 보내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를 공격하던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자리에서 우리도 바울처럼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라고 예수를 증거하길 원하시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지켜 주시는 것만 믿고 무조건 대적들에게 달려가면 안된다. 바울이 무조건 순교를 향해 달려가지 않고 위험할 때 로마의 법률체계를 이용해서 피했다. 위험할 때는 우리 스스로가 그 위험을 피해야 한다. 우리가 맡은 사명을 끝까지 완수하기 위해서이다. 사명을 완수하지도 않고 무조건 대적들과 맞서다가 죽는 것을 순교라고 착각하겠지만 바울이 한 행동과 비교해 보면 그것은 어리석은 개죽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