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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사도행전 › 26:27-29

Dawn Word

사도행전 26:27-29

모두 나와 같이 되길 원한다고 말한 바울

바람을 받아 바다를 건너는 배 · 사도행전 2장 · 27장

2025. 6. 26. · 안정섭 목사 · 사도행전 26장 강해 설교

사도행전 26:27-29 베스도를 향해 아그립바 왕은 이것을 다 알 것이라고 말한 바울은 갑자가 아그립바 왕을 향해 구약의 예언서들을 믿느냐고 질문하자 진퇴양난에 빠진 아그립바 왕은 적은 말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한다며 빠져나가려 했지만 바울은 자신이 사슬에 매인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다 자신처럼 되길 원한다고 했다.

이전 말씀에서는 베스도가 바울을 말을 끊으며 큰 소리로 미쳤다고 하자 바울은 맑은 정신으로 참된 말을 하고 있다며 당신은 잘 모를지 몰라도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일들은 공개적으로 일어난 일이기에 아그립바 왕은 절대로 이것을 모를 리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베스도에게 말하던 바울이 아그립바를 향해 구약 예언서들을 믿느냐고 질문하며 아그립바를 통해 자신의 말을 확인시키는 내용이다.

그러다가 바울은 27절에서 갑자기 아그립바 왕에게 돌아서서 "아그립바 왕이시여!" 라고 부르며 선지자들을 믿으시나이까? 라고 질문을 했다. 이어서 바울은 당연히 믿으시는 줄 안다고 스스로 대답했다. 선지자란 구약의 예언서들을 가리킨다. 예언서에 기록된 내용들을 믿느냐는 것이다. 이는 22절에서 바울이 예언자들과 모세라고 말한 것이고 26절에서는 이것이라고 말한 것인데 선지자들을 믿느냐는 질문이 유대인들이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 구약 예언서들에 기록된 그리스도에 관해 예언들이다.

아그립바는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했을 것이다. 아그립바는 예수가 바로 자신들이 기다리던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지 않고 반대하는 대다수 유대인들의 대표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바울이 말한 모든 말들 중에 아니라고 부인할 수 있는 말이 하나도 없었다. 아그립바도 다른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통해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그립바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받은 것이다. 만약 믿는다고 하면 어째서 예언서에 기록된 메시야를 안믿느냐고 할 것이다. 만약 믿지 않는다고 하면 유대인들에게 나쁜 통치자로 낙인이 찍히게 된다.

바울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당황한 아그립바는 할 말이 없어졌다. 그래서 아그립바는 바울에게 말하길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는도다" 라고 한 것이다. 새번역은 말이기에 짧다고 번역했지만 원어는 적다는 뜻이다. 이는 화를 내는 말이 아니다. 이는 진퇴양난에 빠진 아그립바가 농담투로 던지며 위기를 모면하려는 말일 수 있다. 이는 바울을 경멸하는 말도 아니다. 아그립바가 이렇게 말한 것은 기독교인들과 자신을 구별하려는 것이다.

아그리파는 바울에 바울의 덫에 걸리자 당황해서 빠져 나가려고 발버둥 치는 말인 것이다. 그러나 아그립바로 대표되는 예수를 믿지 않던 유대인들은 빠져나갈 길이 없다. 예수께서 구약 예언서에 기록된대로 죽으셨다가 살아나셨고 수많은 증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구약의 예언서를 아그립바도 믿는다면 논리적으로는 아그립바도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려는 아그립바에게 바울은 29절에서 쐐기를 박는다. 원어에서 29절은 그러나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께 빕니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개역은 하나님께 원한다고 번역한 말은 본래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뜻이다. 바울의 기도는 바울은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 뿐만이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는 것이다. 역시 새번역은 짧거나 길거나 라고 의미를 살려 번역했지만 원어는 작거나 크거나 이다. 말이 작다 크다는 말이 한국어에서는 말이 안되기에 새번역은 그렇게 번역한 것이다.

매였다는 말은 바울이 죄수의 신분으로 갇혀있는 상태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말일 수 도 있다. 24:23절에서 자유를 주고 보호한 상태였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사슬에 매인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을 것이고 전기에 감전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문맥으로 본다면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24:23절에서는 비공식적으로 그렇게 허용한 것이고 여기서는 공식적인 자리이기에 사슬로 묶어 데리고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 바울이 실제로 매여 있었다면 바울의 말에 모두가 전율을 느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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