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6:6-8 바울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기다리는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소망 때문이라고 말하며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신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은 과거 자신이 유대교의 가장 엄격한 분파인 바리새파에서 교육을 받은 것을 예루살렘의 지도자들과 그 밖의 모든 유대인들이 잘 안다고 아그립바 왕 앞에서 말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기다리는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소망 때문이라고 말하는 내용이다.
6절은 "그리고 지금"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가장 엄격한 바리새파에 속해 있었다고 증언하며 고소하지 않고 엉뚱하게도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에 소망을 둔 것에 대해 재판을 받으며 지금 여기에 서 있다는 것이다. 그 소망은 24:15절에서 말한 의로운 사람과 불의한 사람들의 부활이다. 바울은 자신이 전파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따른 것이고 새로운 가르침이나 종파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부활에 대한 소망이 바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통해 성취된 것이고 유대인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가장 엄격한 바리새파에 속해있다면 사두개파나 다른 유대교 종파들과 논쟁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에 소망을 둔 것은 논쟁거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서 구원해 주시겠다는 약속은 논쟁거리가 될 수 없다며 자신이 속한 바리새파에 대한 논쟁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으로 연결한다. 가장 엄격한 바리새파가 믿는 메시야를 통해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바울은 그 이유를 7절에서 설명한다. 우리 열두 지파는 밤낮으로 간절히 섬기며 그 약속이 이루어지길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원어에서는 하나님이라는 말은 없고 섬긴다는 말만 있다. 하지만 섬긴다는 말은 분명히 하나님을 섬긴다는 뜻이기에 개역이나 새번역 모두 하나님이라는 말을 넣어 번역한 것이다. 열두 지파는 실제 열 두 지파라기 보다는 모든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말이다. 이 소망 때문에 바울 자신은 유대 사람들에게 고발을 당했다는 것이다. 원어에는 7절 끝에 왕이시여 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한 뒤 “왕이시여” 라고 다시 한번 부른 것은 이러한 고발이 도대체 말이 되냐는 뜻이다.
이러한 고발은 말이 안되기에 8절에서 "어찌하여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을 살리신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일로 여기는가?" 라고 질문했다. 이러한 질문은 성경적 가르침의 가장 기초적인 것에 대해 회의적인 유대인들에 대한 일반적인 도전인 것이다.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리고 부활을 소망하며 살던 유대인들이 어째서 하나님께서 예수를 보내시고 약속대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고 증거하는 것을 못 믿겠다며 자신을 고발하는가에 대해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조상들에게 주신 소망을 부활과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바울 당시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너무나 많은 목격자들과 부활의 증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가 바로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어야 했다. 구약에도 고난 받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신다는 예언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와서 자신들을 구원해 주고 잘 살게 해 줄 것은 믿었지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죽은 자의 부활도 말로만 믿었고 실제로는 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