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4:17-19 바울은 자신이 성전을 더럽혔다는 고소에 대해 자신은 내 민족을 위한 구제금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드리는 중에 성전에서 정결례를 행했고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 몇 사람이 그 장면을 목격했기에 고소할 것이 있다면 그들이 법정에 출석해서 증언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전 말씀은 나사렛 도당의 우두머리였다는 고소에 대한 바울의 자기 변호였다. 바울은 자신을 고발한 사람들과 같이 구약에 기록된 것을 믿으며 부활을 소망하고 있으며 언제나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흠이 없는 양심을 갖기에 힘쓰고 있다고 자신을 변호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성전을 더럽혔다는 고소에 대한 바울의 자기 변호이다.
17절은 여러 해 만에 내 민족을 위한 구제 헌금을 준비해서 예물을 드렸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심 동사는 도착했다는 말이다. 여러 해 만에 내 민족에게 줄 구제금과 제물 이 두가지를 가지고 도착했다는 것이다. 구제금이란 이웃 사랑을 표현한 것이고 제물이란 성전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내 민족을 위한 구제금이라고 말했지만 바울은 모든 유대인들을 돕기 위해 구제금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 로마서와 고린도전후서를 보면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을 돕는 구제금이다(롬 15:25-26; 고전 16:1; 고후 8:4; 9:1). 바울서신들에서 성도라는 말은 오늘날 모든 믿는 자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거룩한 자들이라는 뜻으로 특별히 복음 전하는 자들이다. 모든 믿는 자를 말할 때는 형제들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또 제물이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다. 어떤 이는 이 제물이 그의 사역을 축복해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예물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수는 21:26절에 나온 정결례에 관한 제물이라고 말한다. 사도행전 21:26절에 비추어보면 정결례를 행하면서 드린 제물일 것이다.
원어에서 18절은 이 제물을 드리는 중에 그들은 성전 안에서 정결례를 행하는 나를 발견했다고 되어있다. 그렇기에 17절에서 제물을 드린 것도 정결례를 행하고 서원 제물을 드린 것을 뜻할 수 있다. 이는 21:23-24절에서 야고보와 장로들이 제안한 희생제사이다. 그 정결례를 행하는 동안 무리와 함께 있지도 않았고 어떤 소동도 없었다는 것을 저들도 다 보았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고소가 거짓인 결정적인 증거를 19절에서 제출한다. 거기에는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 몇 명이 있었다는 것이다. 개역은 이 구절을 18절 끝부분에 넣었지만 원어는 19절에 있다. 바울이 성전에서 정결례를 드리는 것을 본 사람들 중에는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 몇 명이 섞여 있었다는 뜻이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와서 정결례를 드린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게 증명한 것이다.
그런데 21:28절에 보면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한 제목이 백성과 율법과 이곳 성전을 거슬러서 가르치는 자라는 것과 바울이 성전을 더럽혔다고 고소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앞에서 고소한 죄목들은 모두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이들의 말만 듣고 바울을 죽여야 한다고 이렇게 고소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로마의 법 절차에 따르면 바울이 정결례를 드리던 일을 직접 목격했고 바울이 성전을 더럽혔다고 주장한 아시아에서 온 유대 사람들이 반드시 법정에 출두하여 직접 증언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을 고소한 그 사람들이 직접 출두하여 고발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 사람들이 총독님 앞에 나타나서 고발했어야 마땅하다" 라고 말한 것이다. 고소의 증거가 없고 거짓 고소임에 분명하기에 산헤드린 공회는 의도적으로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을 증인으로 데려오지 않은 것이다. 당시 로마법에 따르면 고소를 해놓고 그 고소를 취하하는 것은 심각한 범죄였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성전을 더럽혔다고 주장한 이들은 반드시 법정에 출석하여 증언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이 받을 벌이 두려워 출석하지 않고 도망을 갔을 수도 있다. 바울은 저들의 고소가 거짓이라고 결정타를 한방 날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