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4:14-16 바울은 자신을 고발한 사람들과 같이 구약에 기록된 것을 믿으며 부활을 소망하고 있으며 언제나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흠이 없는 양심을 갖기에 힘쓰고 있다고 자신을 변호했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은 총독의 허락을 받고 자신은 예루살렘에 올라간 지 열 이틀 밖에 되지 않았고 그 기간동안 바울은 성전에서나 예루살렘의 여러 회당에서나 예루살렘 성내 어느 곳에서도 군중들을 선동하여 로마에 반란을 일으키려고 한 시도를 보지 못했으며 고소인들은 아무 증거도 제시할 수 없다고 자신을 변론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이 자신을 고발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된 것을 따라 부활이 있으리라는 것에 소망을 두고 있으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거리낌이 없는 양심을 가지려고 힘쓰고 있다고 말하는 내용이다.
14-16절은 나사렛 도당의 우두머리라고 고소한 것에 대한 답변이다. 14절은 원어에서 "그러나 나는 이것을 고백합니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저들이 분파라고 부르는 길을 따라서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을 섬긴 것을 고백한다는 것이다. 새번역이나 개역 모두 이단으로 번역했다. 어떤 이들은 문맥상 여기서 의미는 이단이라는 의미라고 말한다.
하지만 바울이 여기서 이 말을 사용한 것은 24:5절에서 더둘로가 말한 것처럼 열심당과 같이 로마에 대적하는 나사렛당이라는 유대교의 한 분파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단이라는 말보다는 분파라는 말이 문맥상 맞는 말이다. 더둘로가 분파라는 말을 사용한 초점은 로마제국에 반란을 일으켜서 로마를 몰아내고 이스라엘을 독립시키려는 정치적 목적을 지닌 유대교의 극단적인 한 분파로 고발 것이지 유대교의 이단이기에 고발한다는 뜻이 아니다.
더둘로가 24:5절에서 고소한 말을 바울이 여기서 다시 사용한 것은 바울 자신이 이끄는 분파는 그런 정치적인 분파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수는 분파라는 말에 내재된 바울의 부인은 기독교 그 자체는 하나님의 백성 안에 있는 분파나 그룹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의 그 백성 자체이고 그 길은 모든 이스라엘의 율법을 따르는 참된 길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바울은 더둘로가 말한 반 로마 항쟁을 하는 유대인들의 정치적 한 분파의 지도자로 고소한 의미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말한 것이다.
어떻게 조상들의 하나님을 섬겼는가 하면 먼저 첫째로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이다. 여기서 바울도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이다. 율법이란 모세오경을 뜻하고 예언서는 그 밖의 구약성경을 뜻하니 이는 구약성경 전체를 믿으며 조상들의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이다. 이는 바울을 고소한 자들과 똑같이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이다.
둘째로 15절에서 바울은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소망을 가지며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이다. 역시 바울을 고소한 자들과 똑같은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이다. 그 소망은 의로운 사람들과 불의한 사람들이 부활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부활 신앙을 말하는 것이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부활한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은 자신을 고소한 사람들과 똑 같이 부활 신앙을 갖고 있고 정치적인 집단의 지도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16절은 원어에서 "이것 안에서"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는 앞에서 말한 구약성경을 믿는 믿음과 부활에 대한 소망 안에서 라는 뜻이다. 이러한 믿음과 소망 안에서 바울도 흠이 없는 선한 양심을 갖으려고 힘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단 한점의 흠이라도 있는 제물은 하나님께 드려질 수 없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길 원하기에 한 점의 흠도 없는 양심을 갖으려고 열심히 훈련하며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흠없는 양심은 하나님과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 사랑에 대해서도 흠이 없고 또한 이웃 사랑에 대해서도 흠이 없게 하려고 고난 중에도 온 힘 다해 영적으로 훈련하고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