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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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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사도행전 23:1-5

대적들을 그리스도인의 품위로 존중해준 바울

바람을 받아 바다를 건너는 배 · 사도행전 2장 · 27장

2025. 5. 19. · 안정섭 목사 · 사도행전 23장 강해 설교

사도행전 23:1-5 바울은 대제사장들과 공회원들 앞에서 자신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부끄러움 없이 살아왔다고 증언하자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그 입을 치라고 명령했다. 이에 바울은 율법의 절차도 무시하고 정죄하는 너를 하나님께서 치실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대제사장을 함부로 욕한다고 곁에 있던 사람들이 말하자 바울은 몰랐다며 자신의 잘못을 즉시 인정했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이 로마 시민이라는 말에 놀란 천부장은 자신은 돈을 많이 주고 시민권을 샀다고 하자 바울은 나면서 라고 대답했기에 두려워하며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 공회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하고자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이 대제사장들과 공회원들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살아왔다고 하자 유대교의 대표자인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율법의 절차를 무시하고 바울의 입을 치라고 명령했고 그리스도인들의 대표자인 바울은 반대로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는 내용이다.

산헤드린 공회 앞에 선 바울은 23:1절에서 공회원들을 주목하면서 또 다시 "남자 형제들이여!" 라고 다정하게 부르며 말을 시작한다. 그 내용은 "나는 이 날까지 하나님 앞에서 오로지 바른 양심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라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바른 양심이 무슨 뜻일까? 살아왔다는 말은 시민으로 바르게 살아왔다는 뜻이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았다는 듯이다.

어떤 이들은 이 말이 예수님을 만난 뒤 그리스도인으로 부끄러움 없이 살았다는 말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까지 라는 말은 처음부터 현재까지 계속이라는 뜻이기에 그런 뜻일 수 없다. 더구나 공회원들은 크리스천이 아니었기에 바울이 크리스천으로 바르게 살았는지 안살았는지는 관심이 없다. 그렇다면 이 말은 지금은 크리스천이지만 지금까지 계속 바르게 살아왔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으로 인해서 정죄 받을 것이 하나도 없는 신실한 유대인으로 지금도 살고 있다는 뜻이다. 바울은 지금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을 모독한 죄로 돌아 맞아 죽을 위기에서 벗어났기에 지금은 자신은 율법에 따라 죽을만한 일은 한가지도 안했다는 뜻이다.

그러자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바울의 입을 치라고 명령을 했다. 이는 바울이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것에 화가 났기 때문이다. 바울의 말은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거짓말이라며 강하게 거부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아나니아는 큰 실수를 한 것이다. 미쉬나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공회는 오직 그 사람의 진술을 들었을 때만 재판할 수 있다. 만약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면 재판할 수 없다. 바울은 자신이 결백하다는 말만 했고 아직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나니아는 절차를 무시하고 감정에 따라 즉흥적으로 죄인을 치라고 명한 것이다.

요셉푸스의 기록에 보면 아나니아는 AD 47년 헤롯 아그립바 1세의 형제에게 대제사장으로 지명을 받았다. 그는 AD 58-59년까지 실세로 군림했었다. 요셉푸스는 "그는 제사장적인 성품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뇌물 받기를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종들을 시켜 제사장들을 위한 십일조를 훔쳐오게 시켰다" 라고 말했다." 바울의 입을 치라고 말한 것은 요셉푸스가 기록한 그대로 인격이 덜 갖추어진 사람임을 나타낸다. 아나니아는 인격적으로 대제사장이 될만한 품격을 전혀 갖추지 못했던 사람이기에 절차를 무시하고 무조건 그 입을 치라고 한 것이다.

그러자 바울은 3절에서 즉각 그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을 치실 것이오, 회칠한 벽이여!" 라고 응수했다. 회칠한 벽이라는 말은 껍데기만 깨끗하게 보이는 위선자라는 욕이다. 이어서 바울은 그 이유를 "당신이 율법을 따라 나를 재판한다고 거기에 앉아 있으면서 도리어 율법을 거슬러 나를 치라고 명령하시오?" 라고 설명한다. 공회는 절대적으로 율법을 따라 재판해야 하는 유대교 최고 의결기관이다. 아나니아는 공회원으로서 율법에 따라 재판하겠다고 앉아 있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율법을 어기고 바울을 치라고 했기 때문이다. 의로운 척하지만 율법을 어기고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명령을 했기에 아나니아는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를 위선자라고 책망하며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말한 것이다.

당시 아나니아는 로마에 빌붙어서 권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나니아가 속했던 사두개파 사람들은 친 로마 정책을 쓰며 로마에 협조하고 권세를 유지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AD 66년에 열심당에 의해 살해를 당했다. 바울은 아나니아가 실제 그렇게 죽을 줄은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은 소름이 돋는 것 같았을 것이다. 바울이 하나님께서 당신을 치실 것이라고 한 말이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아나니아의 죽음은 바울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보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바울의 말은 바울이 알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예언적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바울의 곁에 있던 사람들이 "그대가 대제사장을 모욕하오?" 라고 말했다. 이들도 역시 율법에 따라 판단하지 않고 대제사장과 마찬가지로 감정적으로 판단하고 말한 것이다. 이는 분명히 대제사장이 율법을 어기고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다. 바울은 율법의 절차를 따라 말한 것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거룩한 척하기에 엄히 책망한 것이다. 그러자 5절에서 바울은 형제들이여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줄 몰랐소" 라고 대답했다.

바울이 대제사장인줄 몰랐다는 것이 이상하기에 다양한 해석을 한다. 어떤 이들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밝은 빛을 보고 눈이 나빠져서 알아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공식적인 산헤드린 공회가 아니었기에 공식적인 옷도 입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이 회의가 산헤드린의 공식적인 회의였다면 바울은 절대로 모를 수 없다. 공회는 대제사장인 아나니아가 의장으로서 회의를 주관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저렇게 막말하는 자가 대제사장인줄은 몰랐다며 비꼬는 투의 대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이 들은 바울이 오랫동안 예루살렘에 없었고 의장의 자리에 앉지도 않았기에 실제로 대제사장인줄 몰랐다고 말한다.

문맥으로 보면 바울은 실제로 몰랐을 것이다. 바로 이어서 성경에 기록하기를 "너의 백성의 지도자를 욕하지 말아라" 한 것을 보면 절대로 비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회의는 천부장이 소집한 것이다. 천부장은 산헤드린 공회에 참여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지금 이 장면은 천부장이 수사관으로 와서 공회원들을 참고인들로 불러 모은 자리이다. 그렇기에 아나니아는 대제사장 자리에 앉지도 않고 평상복을 입고 공회원들과 함께 있었을것이다. 더구나 아나니아가 대제사장이 되었을 때 바울은 예루살렘에 없었기에 실제로 얼굴을 몰랐을 것이다.

여기서 유대교의 대표인 아나니아와 크리스천들의 대표인 바울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아나니아는 율법을 지키는 자들의 대표이면서도 율법의 절차도 무시하고 감정적으로 명령했다. 바울의 곁에 서 있던 자들도 바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제사장을 욕한다고 책망을 했다. 이들은 하나님 말씀의 권위보다 인간의 권위를 더 높이 두던 자들이다. 이들과는 달리 바울은 아무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제사장이라고 하자 바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바울은 성경을 인용하며 자신은 율법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산헤드린 공회는 율법을 어기는 자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런 자들이 율법을 지키며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바울을 재판하여 죽이려 했던 것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하는 점은 바울이 자신을 대적하는 대제사장과 산헤드린보여준 태도이다. 바울은 자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 말씀들 들면서 대제사장의 권위에 순종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우리도 우리가 옳다고 해도 남의 잘못을 정확히 지적하며 남을 책망하기만 하면 안된다. 그것은 전도의 길을 막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다. 먼저 우리는 예수님을 닮은 겸손한 태도와 그리스도인으로서 품위를 우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사회 질서에 따르는 수준 높은 시민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도 바울처럼 겸손하고 순종적인 모습을 보여줄 때 부활의 주님을 증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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