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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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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사도행전 22:17-21

자신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것 뿐이라고 증거한 바울

바람을 받아 바다를 건너는 배 · 사도행전 2장 · 27장

2025. 5. 14. · 안정섭 목사 · 사도행전 22장 강해 설교

사도행전 22:17-21 바울은 성전에서 기도할 때 주께서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하셨을 때 바울은 여러 회당들에서 주를 믿는 자들을 핍박했고 스데반을 죽이는 일을 직접 지휘한 것을 여러 회당에 있는 사람들이 다 안다고 반박했지만 주께서는 이방지역으로 보낸다고 하셨다고 증거했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은 경건한 사람으로 모든 유대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아나니아를 소개하며 그가 자신의 눈을 뜨게 하고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의로우신 분을 보게 하시고 그 음성을 듣게 하신 것이라며 그것을 전하는 증인이 될 것이라 하고 침례에 스스로 참여하여 죄사함을 받으라고 했다는 것을 증거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에서 기도할 때 주님께서 이방 사람들에게 보내겠다 하시는 음성을 들었다고 증언하는 내용이다.

17절은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주님을 만나고 아나니아를 만나 부르심을 확인 받은 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을 말하고 있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에서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AD 70년 유대-로마 전쟁 이전까지 성전은 예루살렘의 기독교인들의 기도하던 장소였다.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유대교의 경건과 율법을 따라 살았던 것이다. 예수를 만난 뒤 바울도 역시 여전히 경건과 율법을 따라 살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성전에서 기도하는 중에 바울은 황홀경에 빠졌다고 했다. 이는 환상 중에 주님을 또 만났다는 뜻이다. 개역에서 비몽사몽 간에 라고 번역한 것은 원어의 의미에서 벗어난 것이다.

18절은 바울이 주님을 보니 주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 말하는 이가 하니님인지 예수님인지 알기 어렵지만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직접 말씀하셨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바울은 자신을 성전에서 기도하고 하나님으로부터 환상으로 계시를 받은 충성스럽고 경건한 유대인으로 묘사하고 있으면서도 주라는 이름이 계속 나타나기에(8, 10, 18, 19, 21) 기독교 신앙의 예수를 유대교의 여호와와 견고하게 연결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가 성전의 주님이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성전에서 나타난 주님이 예수님이라고 말한다.

성전에서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보았기에 하나님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만난 분이 예수라면 여기서도 예수라고 볼 수 있다. 주님께서 바울에게 하신 말씀은 서둘러서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주님에 대해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서도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이라고 했기에 여기서 나타난 주님은 예수님인 것이다.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듣지 않고 오히려 죽이려 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자 바울은 19-20절에서 자신이 기독교인들을 핍박한 일로 대답을 한다. 19절은 바울 자신이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각 회당에서 때렸다는 것이다. 각 회당에서 때렸다는 것은 이방 지역에 있는 여러 회당들을 두루 다니며 가는 곳마다 기독교인들을 때렸다는 것이다. 20절은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 라는 말로 시작한다. 피를 흘린다는 말은 피를 울컥울컥 쏟아 낸다는 뜻이다. 쏟아 낸다는 말은 희생제사에서 피를 쏟아내는 장면을 암시하는 말이다(Exod 24:6; Num 35:33). 또 증인이라는 말은 나중에는 순교자라는 의미로 쓰여진 말이고 영어의 순교자라는 말이 이 말에서 왔다.

스데반이 피를 쏟아낼 때 바울은 세가지를 하면서 있었다는 것이다. 첫째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는 것이다. 스데반을 신성모독으로 돌로 쳐 죽이는 자리에 서 있었다는 것은 죄인을 체포해서 기소하고 서 있는 검사의 모습이다. 둘째는 찬성했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스데반을 죽이는 것을 재판하는 재판관으로 승인해 주었다는 뜻이다. 셋째 옷을 지키고 있었다고 했다. 이는 모든 과정을 감독하는 감독자의 역할이다. 당시 종교재판에서 이러한 역할은 장로들이나 랍비들이 맡았던 것이다. 바울이 이러한 일을 맡았다는 것은 존경받는 특별한 권위를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바울도 전에는 바울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처럼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한 말에 대해 자신은 여러 회당에서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자였다고 말한 것이다. 그렇게도 열심히 예수를 핍박하고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바울 자신이 예수를 만나고 예수를 증거하게 된 것을 전하면 동족들이 그의 말을 믿고 예수님께로 분명히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속히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하셨는데도 자신은 이방지역의 회당들에거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했던 것을 증거하고 있다. 바울이 이렇게 떠나라는 말에 반박한 것은 자신이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예수를 증거하고 싶다는 생각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21절에서 바울에게 말하길 "가라!" 라고 명하신다. 주님께서는 이어서 그 이유를 설명하신다. 왜냐하면 내가 너를 멀리 이방에 보내시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멀리 있는 이방사람이라는 말은 이방 나라를 뜻할 수도 있고 이방인들을 뜻할 수도 있다. 이방나라 라는 말을 이방 사람으로 해석하고 바울은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보냄을 받았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말이 흩어진 유대인들에게 가서 이방인들에게 전하라는 의미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방나라에게 보낸다는 말은 사람이라기 보다는 장소를 뜻하는 말로 해석하는 것이 문맥상 옳다. 멀리 이방 나라 라는 말은 바울이 당시에 있던 예루살렘이라는 장소와 대조가 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18절에서 주께서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바울이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않을 것이기에 떠나라고 하시자 19-20절에서 바울은 각 회당들에서 바울이 믿는 자들을 핍박한 것을 안다고 말하며 안된다고 말한 것에 근거해서 이방나라라는 말을 해석해야 한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싶다고 했지만 하나님은 반대로 멀리 이방나라로 보내신다는 것이다.

이방지역으로 보낸다는 말은 이방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 구절을 근거로 바울을 이방인의 선교사로 말하는 것도 잘못이다. 바울은 한 번도 유대인들을 포기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든지 유대인 회당에 가서 전했고 회당이 없는 곳에서는 기도 처소를 찾아가서 먼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래서 항상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주께서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하셨을 때 바울은 이방지역의 회당에 있는 사람들이 바울이 믿는 자들을 핍박한 것을 안다고 한 것이다.

바울은 예수를 주님으로 만나고 나서도 율법을 철저히 지켰다고 말했다. 이방인 지역보다는 동포들이 밀집해 있는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증거하길 원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울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멀리 이방세계로 보낸다고 하신 것이다. 따라서 바울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거스르고 성전을 더럽힌다는 고소는 잘못된 것이다. 바울이 이방인에게로 간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것이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바울이 이방지역에 가서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한 것은 자신의 생각과 다르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것 뿐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우리의 생각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르게 행하라고 하실 때에는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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