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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사도행전 › 22:12-16

Dawn Word

사도행전 22:12-16

아나니아를 통해 예수께 나가는 다리를 놓은 바울

2025. 5. 13. · 안정섭 목사 · 사도행전 22장 강해 설교

사도행전 22:12-16 바울은 경건한 사람으로 모든 유대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아나니아를 소개하며 그가 자신의 눈을 뜨게 하고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의로우신 분을 보게 하시고 그 음성을 듣게 하신 것이라며 그것을 전하는 증인이 될 것이라 하고 침례에 스스로 참여하여 죄사함을 받으라고 했다는 것을 증거했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은 정오 때 쯤에 다마스커스로 가다가 하늘에서 큰 빛이 자신을 둘러 비추고 음성이 들리기를 왜 핍박하느냐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는데 함께 가던 사람들은 그 빛만 보고 음성은 듣지 못했다고 했다. 바울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며 무엇을 할지 묻자 다마스커스로 가라 하셨고 바울은 눈이 멀었기에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마스커스로 갔다고 증언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아나니아를 통해 시력을 회복하고 증인이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죄사함 받으라는 말을 들었다는 내용이다.

12절은 아나니아 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 사람은 율법을 따라 사는 경건한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경건한 사람이라는 소개는 바울의 말을 듣고 있던 무리들이 존경해야 하는 인물이라는 뜻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경건하게 사는 사람들을 최고로 존경했다. 그래서 그곳에 사는 모든 유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이라고 했다. 칭찬을 받는 사람이라는 말은 그곳의 모든 사람들이 아나니아가 경건한 사람이라고 증명해 준다는 뜻이다.

누가는 9:10절에서 아나니아가 새로 개종한 바울과 기독교 공동체를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증거했다. 그러나 바울의 말에서는 예루살렘의 유대인들 앞에서 유대교에 대한 아나니아의 헌신이 강조된 것이다. 바울이 여기서 그의 기독교 신앙은 유대교에 대한 그의 충성심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려는 것이다. 아나니아는 경건한 유대인들이 기독교 신앙으로 나가는 다리 역할을 하는 유대인 기독교의 길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는 인물로 제시된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기독교로 개종한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기독교의 신앙은 유대교의 경건한 율법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나니아를 통해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13절은 아나니아가 바울에게 다가와서 곁에 서서 말하길 "형제 사울이여 눈을 뜨시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눈을 뜨라는 말은 개역처럼 다시 보라는 뜻도 되지만 원어의 의미는 올려다 보라는 뜻도 된다. 눈이 안보이는 바울은 사람들 손에 이끌려 와서 앉아 있었을 것이다. 그 곁에 아나니아가 다가와 곁에 서서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다시 보라는 뜻임과 동시에 아나니아를 올려다 보라는 뜻도 되는 것이다. 바로 이어서 바울은 그를 쳐다보았다고 했다. 원어에서는 쳐다 보았다는 말도 눈을 뜨라는 말과 똑 같은 말이다. 더구나 쳐다보았다는 말 다음에는 그를 향하여 라는 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분명히 바울이 앉아서 아나니아를 향해 올려다 보았다는 뜻이다.

그러자 14절에서 아나니아가 바울에게 말을 했다.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 당신을 택했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가리키던 전통적인 표현이다. 바울은 아나니아와 자신이 구약의 하나님의 종들이고 참된 유대교와 기독교는 구약의 상속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바울은 구약의 계시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로운 계시 사이에 연속성이 있음을 바울의 청중들에게 강조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바울을 선택하셔서 하게 하신 것은 세가지이다. 첫째 자기의 뜻을 알게 하셨다는 것이다. 바울도 전에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2:3절에서 하나님께 열성적인 사람이었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아나니아는 바울이 전에는 하나님의 뜻을 몰랐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야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의로운 분을 보게 하셨다고 했다. 의로운 분이라는 말은 예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바울 앞에 있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기다리는 메시야를 의로운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나니아는 바울이 만난 예수가 바로 의로운 분이라고 말했다는 뜻이다. 셋째로는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는 유대인들에게 최고의 존경을 받는 아나니아가 바울의 미래 사역에 대해 바울이 본 것과 동일한 환상을 보았다는 뜻이다. 바울이 이러한 아나니아의 말을 전하는 것은 자신의 말이 아니라 너희가 최고로 존경하는 경건한 자가 말한 것이니 들으라는 것이다. 바울도 전에는 하나님의 뜻을 몰랐던 것처럼 지금 너희들도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제 너희들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너희들도 자신처럼 예수를 만나고 그 분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나니아는 15절에서 계속해서 말한다. 14절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예수를 보고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게 하신 것을 이제 모든 사람들에게 증언하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6절은 그러니 이제 망설일 까닭이 어디 있느냐고 말한다. 일어나서 그 이름을 불러서 침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고 했다. 불러야 할 그 이름은 조상들의 하나님이고 동시에 그 의로운 자이신 예수이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의 이름이라 말하지 않고 그의 이름이라고 했다. 주의 이름이란 개역이나 새번역에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역시 듣는 청중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그렇게 말한 것이다.

16절에서 침례를 받는다는 말은 사도행전에서 21번이 나오는데 모두 다 능동태로 침례를 베풀었다는 뜻이거나 수동태로 침례를 받았다는 뜻으로 나온다. 그런데 16절에서는 특별히 그리스어에만 있는 중간태이다. 이는 바울 자신이 스스로 물에 잠겨 정결함으로 받으라는 뜻이다. 바울의 편지들에도 14번이 나오는데 모두 다 침례를 주었다는 뜻이든지 침례를 받았다는 뜻이다. 복음서에서도 43번이 나오는데 모두 다 침례를 주었거나 받았다는 뜻이고 스스로 물에 잠겨 정결함을 받으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똑 같은 형태의 말이 구약의 열왕기하 5:14절에서 나온다.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이 요단강에 일곱번 몸을 담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다고 할 때 나온다. 이러한 표현이 쿰란 공동체에서 발견되던 것으로 당시 유대인들이 행하던 물로 정결하게 하던 의식을 뜻한다. 바울은 자신의 앞에 있던 유대인들을 존중하며 그들이 함께 공감하며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러한 중간태의 표현을 의도적으로 썼다고 볼 수 있다. 바울은 이방인인 천부장에게나 자신을 죽이려던 유대인들에게나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고 그들을 존중하며 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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