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2:6-11 바울은 정오 때 쯤에 다마스커스로 가다가 하늘에서 큰 빛이 자신을 둘러 비추고 음성이 들리기를 왜 핍박하느냐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는데 함께 가던 사람들은 그 빛만 보고 음성은 듣지 못했다. 바울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며 무엇을 할지 묻자 다마스커스로 가라 하셨고 바울은 눈이 멀었기에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마스커스로 갔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을 형제들과 아버지들이라고 다정하게 부르며 자신은 유대 사람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났고 예루살렘에서 양육되어졌고 최고로 엄격한 가말리엘 문하에서 아버지들의 율법으로 교육을 받았고 하나님께 최고로 열심인 사람이었으며 대제사장의 공문을 받아 이웃나라 도시인 다마스커스 까지 가서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오려고 했던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이 다마스커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말하는 내용이다.
6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는 반전이 나오는 것이다. 자신이 다마스커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정오 쯤 되었다는 것이다. 정오는 햇빛이 가장 밝고 뜨거운 시간이다. 보통 사람들은 가능하면 한 낮의 태양은 피해서 여행하려고 애를 썼지만 긴급한 일이 있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긴 여행의 경우는 피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정오 때 쯤이라는 말은 바울이 다마스커스에 있는 신자들을 잡아가는 일을 얼마나 긴급한 일로 생각했는지를 알리는 말이다.
하지만 정오 때쯤 이라는 말은 바울이 본 환상이 모든 사람들이 다 분명히 알 수 있는 객관적인 현상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보통 환상들은 밤에 보는 경우가 많았지만 바울의 경우 햇빛이 가장 밝은 시간에 환상을 보았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 말의 의도는 꿈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일 것이다. 꿈이나 환상이 아니라 실제로 큰 빛이 자신을 둘러 비추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환상의 밝음을 특별히 강조한 것이다. 정오의 태양 빛 보다 훨씬 더 밝고 강렬한 빛이 자신을 둘러 비추었다는 것이다.
햇빛보다 더 밝은 빛은 하나님의 영광의 빛 밖에 없기에 7절에서 바울은 땅바닥에 엎드린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 음성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라는 것이다. 자신은 하나님을 위해 그렇게 사람들을 쫓아다닌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사울이 하나님을 잡아 죽이려고 쫓아 다녔다고 하시는 것이다. 바울은 기절할 만큼 놀랐을 것이다.
8절에서 바울은 누구십니까? 주님 이라고 말했다. 주님이란 하나님을 부르는 말이기에 이미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면서 확인하려고 물은 것이다. 그러자 그 분은 놀랍게도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사람 예수 라고 대답해 주셨다. 9:4절에서 바울이 한 말에 여기서 나사렛이라는 말을 추가한 것은 유대인들 청중들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게 하려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인줄 알고 물었는데 그분은 유대인들이 모두 알고 있고 죽이라고 한 바로 예수라는 것이다.
그 순간 바울은 예수님은 하나님과 한 분이시라는 것을 인식했을 것이다. 바울은 이제 자신이 핍박한 진짜 대상이 누구인지 이제 알게 되었다. 바울이 공격한 대상은 하나님이라는 분석이다. 이는 바울 자신도 전에는 예수를 죽인 죄인이었는 뜻이다. 이는 너희들 또한 예수를 죽인 죄인이라는 뜻이다. 이는 지금도 너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쫓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런데 너희는 지금 하나님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셈이라고 간증하고 있는 것이다.
9절은 그 일이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신과 함께 다마스커스로 가던 사람들도 그 빛은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이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은 알아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던 무리들 속에는 그 때 바울과 함께 가다가 밝은 빛을 보았던 증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다른 사람들은 그 음성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듣지 못했다는 말이 다른 사람들도 함께 그 빛을 보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째서 예수를 만나지 못했는지를 설명한 말이다.
10절도 역시 그러나 라는 말로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했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지만 자신은 알아듣고 만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주님" 이라고 물었다는 것이다. 8절에서 주님이라는 호칭이 하나님인줄 알고 부른 것이지만 10절에서는 예수를 만난 결과 부른 호칭이다.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 주님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는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고 모두가 주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놀라운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어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오직 주님의 음성을 알아 듣고 고백하는 자만이 진정으로 믿고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다. 바울이 주님을 부르며 무엇을 할까요? 라고 묻자 주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님의 영광을 보고 그 음성을 듣고 주님이 시키시는 명령을 따라 순종하는 사람이 주님을 만난 사람이다. 주님께서 하신 명령은 일어나서 다마스커스로 가라는 것이다. 거기에서 바울이 해야 할 모든 일을 누가 다 말해 줄 것이라고 하셨다.
11절은 그 빛의 영광으로 인해 바울은 보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빛의 영광은 하나님의 빛의 영광이다. 하나님의 빛의 영광을 보았기에 눈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바울은 함께 가던 사람들의 손에 이끌리어 다마스커스로 갔다. 바울이 하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울을 찾아오시고 만나주신 것이다. 우리 역시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을 찾아가서 만나고 믿게 되었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와 주셨다고 말한다. 로마서 8:15절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양자의 영을 주셔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