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용 미리보기 · 교수님 확인 뒤 확정합니다 · NanuriWeb
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사도행전 › 22:1-5

Dawn Word

사도행전 22:1-5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시절을 말하는 바울

바람을 받아 바다를 건너는 배 · 사도행전 2장 · 27장

2025. 5. 10. · 안정섭 목사 · 사도행전 22장 강해 설교

사도행전 22:1-5 바울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을 형제들과 아버지들이라고 다정하게 부르며 자신은 유대 사람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났고 예루살렘에서 양육되어졌고 최고로 엄격한 가말리엘 문하에서 아버지들의 율법으로 교육을 받았고 하나님께 최고로 열심인 사람이었으며 대제사장의 공문을 받아 이웃나라 도시인 다마스커스 까지 가서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오려고 했던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은 백성들에게 말해도 되느냐고 묻자 천부장은 바울의 유창한 그리스어를 듣고 놀라 이집트의 자객들을 이끌던 지도자가 아니냐고 물었다. 바울은 자신이 길리기아 다소의 시민이라며 한마디 하게 해 달라고 하자 천부장은 허락했고 바울은 히브리말로 연설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이 과거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시절 자신이 했던 일을 연설하는 내용이다.

새번역은 22:1절 첫 부분을 "동포 여러분" 이라고 번역했고 개역은 부형들이라고 번역했다. 하지만 원어는 “남자들, 형제들과 아버지들!” 이라고 다정하게 부르는 말이다. 바울은 아람어로 공손하고 친근하게 무리들을 부른 것이다. 자신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했는데도 바울이 자신들을 향해 그토록 다정하게 부르는 것에 마음이 조금 열렸을지도 모른다. 바울은 이처럼 이방인 천부장이나 자신을 죽이려던 원수들이나 동일하게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어 공손하게 말했다.

바울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바울은 자신이 말하는 변명을 들으라는 것이다. 변명이란 피고가 자신을 변호한다는 뜻이다. 기소한 원고는 무리들이고 천부장은 재판장으로 서 있는 셈이다. 바울은 지금 자신의 입장을 변호할테니 한번 들어 달라는 것이다. 2절은 바울이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더욱 더 조용해졌다고 했다. 더욱 더 조용해졌다는 말을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조용함을 옆에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조용함을 바울에게 제공하려고 옆에 들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렇게 조용해진 상태에서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기 시작했다.

3절은 먼저 나는 유대 사람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네 개의 동작을 나타내는 말로 전한다. 이는 바울 자신의 성장과정을 순서대로 말한 것이다. 첫째는 태어났다는 말이다. 자신은 길리기아의 다소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다소는 인구 수로도 길리기아 최대의 도시였고 최고로 발달한 문명을 자랑하던 도시였다. 다소는 그리스 문명이 꽃을 피운 유명한 도시였다.

둘째는 그러나 라는 말로 연결된다. 그러나 자신은 이 성에서 길러졌다는 것이다. 자랐다는 말은 어린 아이에게 음식을 먹여 키우는 장면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는 어릴적 아버지와 어머니에 의해 먹여지고 입혀지며 유대적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는 뜻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가기 전에 좋은 유대인 부모에게서 교육을 받았다는 뜻이다. 개역개정은 RSV를 따라 이 부분을 애매하게 번역했다. 새번역이 훨씬 명확하고 원어에 가깝게 번역되었다.

따라서 바울의 부모들은 유아기에 예루살렘으로 이사를 왔다는 뜻이다. 바울의 부모는 로마 시민권을 받을 정도로 유력한 사람인데다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도 대단했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바울을 믿음으로 키우기 위해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던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이다.

셋째는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다. "가말리엘의 문하" 라는 말은 가말리엘의 발 밑이라는 뜻이다. 영어의 RSV는 "가말리엘의 발 밑에서" 라는 말이 앞에 나온 자랐다는 말을 꾸미는 것으로 번역했다. 하지만 영어의 ESV와 NASB는 "가말리엘의 발 밑에서" 라는 말은 교육을 받았다는 말을 꾸미는 것으로 번역했다. 교육을 받았다는 말은 그리스어에서 어린 아이들을 훈련시킨다는 뜻이다. 이는 어느 정도 자란 뒤에는 부모에게서 떠나 당시 최고의 율법교사였던 가멜리엘의 발 밑에 앉아 훈련을 받았다는 뜻이다. 당시 스승들은 말로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몸에 배도록 반복해서 훈련을 시켰다. 자신은 가말리엘의 발 밑에서 아버지들의 율법이 몸에 배이도록 엄격한 훈련을 받았다는 것이다.

넷째는 하나님께 열성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이는 어른이 된 다음에 하나님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최고로 열심히 하던 경건한 유대인이었다는 뜻이다. 끝에 덧붙인 말은 "오늘날 너희들처럼" 이라는 말이다. 너희들이 그렇게 하나님께 대해 열심인 것처럼 자신도 그랬다는 것이다. "오늘날 너희들" 이란 말은 바울을 죽이려고 찾아다녔던 열심을 가졌던 사람들을 향해 하는 말이다. 이들은 명절에 예루살렘에 왔는데 바울이 정결례를 행하러 성전에 나타난다는 말을 듣고 바울을 죽이려고 할 만큼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대단했던 사람들이다. 바울 자신도 과거에는 그렇게 하나님께 열심이었다는 것이다. 자신도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인 줄 알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4절에서 자신은 이 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죽을 때까지 박해를 했다고 했다. 박해를 했다는 말은 쫓아 다녔다는 뜻이다. 그냥 쫓아 다닌 것이 아니고 그들을 잡아 죽일 때까지 쫓아 다녔다는 것이다. 이는 바울을 죽이려고 쫓아 다니던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과 똑 같은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은 스데반이다. 바울은 스데반을 쫓아 다녀서 죽인 일을 마음에 두고 한 말이다.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고 묶어서 감옥에 넣었다는 것이다.

5절에서는 이 일에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그 증인이라고 했다. 이는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이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체포영장까지 발부 받아 이웃나라인 다마스쿠스에 까지 갔다고 했다. 거기 신도들을 묶어서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처벌을 받게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체포영장을 받을 만큼 높은 권위를 갖고 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바울을 죽이려던 유대인들과 똑같은 열심이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오히려 너희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울도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일인 줄 알고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을 대적하던 유대인들에게는 먼저 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우리도 역시 상대방이 공감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을 해야 한다. 우리도 과거에 그렇게 했었다 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감을 얻는 것에서 끝나면 안된다. 그러한 공감은 우리가 과거에 하나님의 뜻을 잘못 알고 그렇게 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공감할 줄 모르는 사람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난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예수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자신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다는 사람들도 예수를 만나기 전 바울과도 같은 경우가 많다. 바울을 죽이려던 사람들과도 같은 경우가 많다.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최고이고 온 삶을 다 드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자신의 의를 추구하며 하나님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면 자신의 경건으로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함부로 정죄하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이제 우리도 과거에 그랬었는데 이제는 달라졌다는 것을 우리의 삶과 태도로 보여주고 나서 말로 증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이 없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도 거짓이고 자신의 의로 자기가 하나님이 된 사람들이다.

사도행전 새벽말씀 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