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23-26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은 서원한 네 사람을 데리고 결례를 행하고 그 비용을 모두 바울이 대게 해서 바울도 율법을 지키는 자라는 것을 알리려 했다. 또 그들은 타협안으로 이방인들에게는 최소한의 부정함만 피하도록 하자고 제시하자 바울은 그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결례를 행했다.
이전 말씀에서는 바울의 보고를 들은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통해서는 더 큰 일을 행하셨다며 자신들이 전도한 사람들은 율법에도 열심이 있는 자라고 했다. 이어서 이들은 바울이 이방지역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지키지 않도록 가르쳤고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신자들은 바울이 온 것을 다 안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이 제시한 해결책이다.
사도들이 제시한 해결책은 23절에 보면 그러므로 당신은 우리가 말하는대로 하라는 것이다. 이것 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정결례를 행하기로 서원한 네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24절에서 그들을 데리고 가서 함께 정결예식을 행하고 그들이 드려야 하는 서원 제물의 모든 비용도 다 바울이 대라는 것이다. 요셉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이러한 정결례의 서원의 비용을 대는 것은 대단히 경건한 행동으로 여겨졌다.
누가가 기술한 내용이 나실인의 서원인지 아닌지는 논란이 있다. 문제는 민수기 6:1-21에 나온 나실인의 서원과 정확히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나실인의 서원이라기 보다는 30일 이내의 일시적인 서약일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이 의식은 7일 동안 해서 완수되는 것인데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는 성전에서 제사장이 물을 뿌려 정결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이 부분이 민수기와 정확히 맞지 않지만 나실인 서원중 시체와 접촉하여 부정해진 경우 정결하게 하는 기간일 수도 있다. 절대다수는 나실인의 서원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바울을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오해를 풀어주려고 이렇게 하라고 권면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그렇게 하면 모두가 당신의 소문이 전혀 사실이 아니고 도리어 당신이 율법을 지키며 바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말은 전투 명령에 따라 줄을 맞춰가는 군인들의 모습을 나타낸 말이다. 바울도 율법을 지키며 거룩한 군사로 행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이는 19절에서 바울이 고했다고 한 말이 앞서 길을 개척하며 따라오라고 외치는 군사적인 그림언어라는 것과 연결해서 이해해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앞서 길을 개척하게 했다며 예루살렘의 장로들에게 그 길을 따라오라는 뜻으로 말했다.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바울의 말에 반박하며 자신들의 지시에 따르라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바울도 다른 유대인 신자들처럼 율법의 명령에 따라 줄을 맞춰 따라가는 모습을 보여주라는 그림언어로 말한 것이다.
25절은 이방인 신자들에게는 최소한 네 가지만 지키도록 하라고 이미 결정해서 편지를 써서 보냈다는 것이다. 그 네 가지는 첫째 우상의 제물이다. 우상의 제물이란 우상 앞에서 그 제물을 먹는 것을 뜻한다. 둘째와 셋째는 피와 목매어 죽인 것이다. 이것도 유대인들의 방식으로 잡은 제물이 아니고 이방인들이 우상에게 드리기 위해 잡은 제물을 뜻한다. 다만 우상의 신전에서 먹지 않더라도 그러한 제물 자체를 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음행도 역시 우상의 신전에서 우상숭배하며 음행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방인 신자들에게는 이러한 권고를 이미 써서 보냈기에 그것을 번복하자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 말을 듣고 바울은 좋게 여겼기에 26절에서 바울은 그 다음 날 네 사람을 데리고 가서 함께 정결 예식을 한 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정결 기한이 차는 날짜와 각 사람을 위해서 예물을 바칠 날짜까지 신고를 했다. 이 예물은 양들과 곡식과 부어드리는 전제 등을 모두 다 포함하는 것이다. 그 모든 비용은 바울이 다 낸다는 것이다.
바울이 이렇게 정결례의 날짜까지 다 보고를 한 것이 바울을 노리는 사람들에게 바울을 공격하는 시간까지 정확히 알려준 셈이다. 물론 이것은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의 의도와는 다른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하면 쉽게 화합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도들의 말을 따르는 것은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바울은 그것을 알면서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유대인 형제들 하나라도 더 전도하기 위해 그렇게 했던 것이다.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바울이 혼자서 앞서가는 것을 반대한 것이다. 앞서 나눈 20절에서 그들은 하나님께서는 자신들과도 함께 하셔서 수만명이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바울 혼자서 앞서가지 말고 자신들의 뒤를 따라오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사도들은 타협안을 제시한 것이다. 그 타협안은 이방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이다. 유대인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율법을 철저히 지키되 이방인들에게는 부정함을 피하도록 최소한의 부담만 주자는 것이다.
이는 이방인들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유대인 신자들이 이방인 신자들과 접촉함으로 부정해지는 것을 피하도록 하기 위한 타협안으로 여전히 유대인 중심이다. 바울은 분명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확신했고 유대인들이 우월하다거나 중심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큰 틀에서 유대인 신자들과 이방인 신자들 사이에 화합하도록 하기 위해 이러한 제안을 좋게 받아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