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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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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사도행전 21:20-22

바울이 율법 파괴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길 원하는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

2025. 5. 5. · 안정섭 목사 · 사도행전 21장 강해 설교

사도행전 21:20-22 그러나 이를 들은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통해서는 더 큰 일을 행하셨다며 자신들이 전도한 사람들은 율법에도 열심이 있는 자라고 했다. 이어서 이들은 바울이 이방지역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지키지 않도록 가르쳤고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신자들은 바울이 온 것을 다 안다고 말했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에 도착하니 형제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고 이튿날 야고보와 장로들을 만나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이방인들 가운데서 하신 일을 자세히 보고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러나 이를 들은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통해서는 더 큰 일을 행하셨다며 자신들이 전도한 사람들은 율법에도 열심이 있는 자라고 했다. 이어서 이들은 바울이 이방지역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지키지 않도록 가르쳤고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신자들은 바울이 온 것을 다 안다고 하는 내용이다.

20절은 원어에서 “그러나” 라는 말로 연결이 된다. 바울의 보고를 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바울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기에 대다수의 영어 번역들은 “and”로 번역했다. 하지만 누가가 “그러나”로 연결하며 전달하려는 의도는 이들이 하나님께 영광은 돌리지만 사실 관심은 바울이 말한 것에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이들의 관심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에는 관심이 없고 이어서 말하는 율법 준수에 있는 것이다.

이들은 바울을 "형제여!" 라고 부르며 말한다. 어떤 이는 이 말이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기에 감동적인 표현이라고 했다. 그러나 대화의 분위기는 그렇게 따뜻한 것만은 아니다. 이들이 한 말은 유대 사람들 가운데 믿는 사람이 수 만명이나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19절에서 바울이 낱낱이 고한 하나님께서 하신 일과 비교해서 하는 말이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이방지역에서 위대한 일을 하셨다고 하자 예루살렘 교회 대표들은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을 통해서 예루살렘에서도 수 만명이나 예수를 믿게 하는 위대한 일을 하셨다고 반박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들 모두가 율법에 열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들을 통해 하신 일이 더 위대하다는 뜻이다.

이들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온 것 때문에 예루살렘의 유대인 신자들에게 미칠 충격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유대인 신자들의 바울에 대한 적대감은 대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장로들은 바울의 놀라운 보고를 듣고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만 하면서 자신들의 근심거리로 말을 돌린 것이다. 수만명이나 되는 유대인 신자들은 모두 율법에 열심인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섞어 놓는 것에 분노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기 전에도 유대인들이 흩어져 살던 이방지역에는 회당이 있었고 그들 가운데는 이방인 신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때에는 유대인들이 항상 지도적 위치에 있고 주류였다. 유대교 안으로 들어온 이방인 신자들은 항상 이등 신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유대인들도 믿었지만 더 많은 이방인들이 믿게 되어 바울이 세운 교회에서 유대인들은 소수이고 이방인들이 주류가 되었던 것이다. 다수인 이방인들은 율법 없이 예수를 믿기에 자신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에 스스로 무언의 압력을 느낀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과거 유대교시절처럼 유대인들이 무조건 지도적 위치에 있고 이방인들은 자신들에게 복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 만이 자신들이 교회를 주도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들의 불만은 21절에 나온다. 이들의 불만은 바울이 이방지역에 있는 유대인들을 가르칠 때 모세를 배반하도록 가르쳤다고 들었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예로 든 것이 두가지이다. 첫째는 아들들에게 할례를 주지 말라는 것이다. 둘째는 유대교의 관습을 따라 행하지도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 두가지는 유대교를 떠 받치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러한 것을 가르친 적이 없다. 이는 잘못된 소문인 것이다.

22절은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라고 묻는 말로 시작한다. 이는 해결책이 단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할 때 쓰는 말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대가 이미 왔다는 소문을 듣는다는 것이다. 율법을 지키는 것을 보여주어 그 소문을 잠재우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미 율법 자체보다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참 뜻을 가르치셨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땅끝까지 예수님의 증인이 되라 하셨는데 예루살렘의 제자들은 아직도 유대교의 율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믿는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자신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관습의 틀 안에서 변형된 믿음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끊임없이 말씀에 비추어 보고 고쳐가지 않는다면 믿음은 나라와 지역과 시대에 따라 변형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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