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17-19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에 도착하니 형제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고 이튿날 야고보와 장로들을 만나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이방인들 가운데서 하신 일을 자세히 보고했다.
이전 말씀에서는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가이사랴의 제자들이 함께 동행했고 나손이라는 오랜 제자가 와서 일행들을 자기 집에 머물게 하려고 가이사랴까지 찾아와서 일행을 이끌고 갔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자신의 선교보고를 하는 장면이다.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반가이 맞아 주었다고 했다. 여기서 반가이 맞아 준 이들이 예루살렘 기독교 공동체를 대표해서 영접한 사람들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 이들을 야고보와 장로들과 형제들이 모두 같은 무리로 보고 이는 이방인 교회 대표들이 전달한 헌금을 받아들인 표시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다 다수의 주석가들은 이들이 나손과 관련된 헬라파 유대인 기독교인들일 것으로 해석한다. 여기서 누가는 헌금을 전달했다는 내용을 말하지 않고 있다. 18절은 다음날이라는 말로 시작하며 바울이 야고보를 찾아갔고 거기에 장로들이 다 거기에 있었다고 했다. 문맥은 다음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는 뜻이기에 이는 분명 다른 사람들인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 대표들을 만나 공식적인 모임을 갖은 것은 예루살렘에 도착한 그 다음날인 것이다.
17절에서는 바울이 형제들에게 환영 인사를 받았지만 19절은 바울이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는 말만 있고 야고보와 장로들이 바울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는 말이 없다. 이를 근거로 누가가 바울이 모금한 헌금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에 대해 그 헌금이 바울이 원한 효과를 가져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유대인들이 외국인을 혐오하는 시점에서 로마제국의 여러 지역으로부터 온 이방인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진군한 것은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 힘들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헌금이 받아들여졌는지 안 받아들여졌는지는 본문을 통해 알 수 없다. 다만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들은 바울을 만나 반가운 것보다 걱정이 앞섰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바울은 자신의 봉사 활동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들 가운데 행하신 일을 낱낱이 고했다고 했다. 자신이 그렇게 목숨을 걸고 이방지역에 가서 전한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을 보고한 것이다. 그런데 고했다는 말은 본래 앞장서서 가면서 군사들에게 따라오라고 큰 소리로 외칠 때 쓰는 말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하신 일을 예루살렘 장로들에게 낱낱이 고하는 것은 자신이 앞서서 길을 개척하며 간 것이니 그 뒤를 따라오라는 뜻이 될 수 있다.
바로 이 때 바울이 이방인 교회의 헌금을 전달한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누가가 돈 문제를 삭제한 것은 복음이 유대인에게서 이방인들에게 전해졌다는 것에 누가의 강조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봉사라는 말은 바울의 전체 사역을 뜻하는 것이고 후원금을 뜻하는 말은 아니다.
여기서 만약 바울이 이방인 교회 성도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사랑해서 이렇게 헌금을 보냈다고 했다면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복음을 처음 받은 자신들이 이방인 교회로부터 도움이나 받는 불쌍한 처지로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해져서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만 보고한 것이다. 이는 바울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의 공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