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4-6 바울이 두로에서 제자들을 찾아내어 함께 머물자 그 제자들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고 여러 날 그들을 가르친 후 떠날 때 그들의 아내들과 자녀들까지 나와 전송을 했다.
이전 말씀은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과 이별의 아픔을 겪은 뒤 작은 배를 여러 번 갈아타고 바다라에 이르러서 두로로 가는 배를 발견하고 두로에 도착하여 짐을 풀었다는 내용이다. 이어지는 내용은 바울이 두로에서 제자들을 찾아내어 함께 머물자 그 제자들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고 여러 날 그들을 가르친 후 떠날 때 그들의 아내들과 자녀들까지 나와 전송을 했다는 내용이다.
7일간의 여유가 생기자 4절에서 우리는 두로에서 제자들을 찾아서 만나고 거기에서 이레를 머물렀다고 했다. 제자들을 찾았다는 말은 의도적으로 수색해서 어떤 지점을 알아낸다는 뜻이다. 누가복음 2:16절에서는 예수의 부모들이 예수를 잃어 버리고 찾아 다녔다고 할 때 쓴 말이다. 구약 외경인 마카비 4서 3:14절에는 샘을 찾아 다녔다고 할 때도 쓴 말이다. 이들은 두로를 수색하듯 찾아 다닌 결과 제자들을 발견한 것이다.
수색하듯 찾아다닌 결과 제자들을 발견했다는 말은 전에는 서로 전혀 알지 못했던 관계를 가리킨다. 두로에 믿음의 공동체가 있다는 것을 바울은 알고는 있었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 일행은 두로를 샅샅이 뒤져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찾아내어 그들과 함께 이레를 머물렀던 것이다.
대부분 두로 교회는 사도행전 11:19절에서 스데반의 일로 흩어진 제자들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생겼을 것이라고 말한다. 두로 교회는 핍박으로 인해 피난을 간 제자들에 의해 세워진 것이 분명하지만 그 규모는 크지 않았을 것이다. 샅샅이 수색하듯 찾아서 발견해 냈다고 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은 어디를 가든지 자기들에 속한 사람들의 환대를 받을 것을 기대했다며 그것이 그들의 문화에서는 필수적이 덕목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기 동족들을 환대하던 것이 유대인들을 비롯한 고대 근동 사람들의 문화에서 필수적인 덕목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바울 일행이 이레간 시간 여유가 있을 때 두로 교회의 제자들 찾아 다닌 것은 숙소를 찾은 것이 아니다. 바울은 어떻게 해서든지 제자들을 찾아서 하나님 말씀으로 위로하고 가르치려고 했던 것이다. 예수께서 명령하신 제자 삼으라는 명령을 바울이 얼마나 철저하게 지키려고 애를 썼는지 알 수 있다.
그 때 두로의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바울 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고 전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는 말에서 들어간다는 말은 배의 갑판 위에 올라가거나 배에서 내려 육지에 발을 딛는 것 같은 상황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렇기에 예루살렘 성 안에 발을 들여놓지도 말라는 뜻이다. 이 때 두로의 제자들이 말했다는 말은 반복해서 계속 말했다는 것이다. 성령께서 가지 말라고 했다고 계속해서 말린 것이다. 20:22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간다고 말했다. 그런데 같은 성령님께서 이번에는 두로의 제자들에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인가?
다수의 성경 해석자들은 성령께서는 단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받을 것이라고 보여주셨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성령께서 자신들에게 알려주신 것을 토대로 가지 말라고 말한 것이다. 따라서 성령께서는 바울이나 두로의 제자들에게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핍박을 받을 것을 알려주신 것이다. 바울은 그러한 핍박에도 불구하고 가서 전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반면에 두로의 제자들은 그러한 성령의 감동을 받고 바울의 안위를 염려하여 가지 말라고 한 것이다. 그들은 성령께서 자신들에게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당할 고난을 알려 주신 것은 바울을 가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5절은 바울 일행이 두로 교회 형제들과 여러 날을 보낸 뒤 우리는 떠나가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 때 모든 제자들이 그들의 아내들과 자녀들까지 다 데리고 성 문 밖까지 나와서 바울 일행을 전송했다는 것이다. 바닷가에서 모두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당시 사람들은 서서 기도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장면이 바울을 보호해 주시고 안내해 주시길 바라는 기도의 엄중함과 강렬함과 신선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바울 일행은 두로의 제자들 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에게까지 큰 사랑을 받았다는 것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매우 친밀한 관계가 된 것이다. 이것은 개인적인 친밀감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이 가장 강력한 접착제이기 때문이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이렇게 제자들의 사랑을 받은 것은 당시 이방인 교회 성도들 사이에서 바울에 대한 존경심이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을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반면에 이는 21:21절에 나오는 예루살렘의 제자들 사이에서는 바울에 대한 의심이 널리 퍼져있었던 것처럼 두로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의심을 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바울을 직접 만나 배우고는 복음 전파에 대한 바울의 열정을 알게 된 것이다. 6절에서 바울일행은 이렇게 작별을 하고 배에 올랐다. 두로의 성도들과 그 가족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