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25-27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자신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며 에베소에서 복음을 다 전했기에 듣지 않고 멸망하는 것은 듣지 않은 각자의 책임이라고 경고했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은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면 죽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생명 조차 아끼지 않고 달려갈 길을 달려가겠다고 에베소 장로들에게 말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자신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며 에베소에서 복음을 다 전했기에 듣지 않고 멸망하는 것은 듣지 않은 각자의 책임이라고 경고하는 내용이다.
25절도 22절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이제는 보라"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제 또 다시 미래에 대해 예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안다는 것이다. 무엇을 안다는 것인가? 그동안 에베소에서는 여러분 가운데로 들어가서 그 나라를 선포했는데 그런데 이제는 여러분 모두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다수는 에베소 장로들이 바울을 다시 보지 못한다는 말을 죽음 보다는 이제 동쪽에서 사역을 완전히 마쳤으니 서쪽인 로마와 스페인 선교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24절에서 자신을 목숨을 걸고 맡은 바 사명을 다 하는 일에 전력을 다한다는 것을 달리기를 마치는 비유로 말한 것과 연결해서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사도행전 19:21절과 로마서 15:23-29절을 보면 바울은 로마를 거쳐서 스페인으로 가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이는 임박한 죽음의 위험보다는 로마와 스페인 선교에 전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죽기 전에 다시 에베소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들어갔다는 말은 사도행전에서 여러 곳을 통과하여 지나다니며 복음을 전할 때 주로 쓴 말이다. 이 말이 선교여행들을 가리키는 말일 수도 있지만 누가는 에베소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 전하러 다닌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20절에서 공중 앞에서나 각각의 집에서나 거리낌 없이 가르쳤다고 한 것과 연결해서 이 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 바울은 모든 지역을 다니며 전한 것보다는 에베소 성도들 가운데서 오래 머물며 두루 다니며 전파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26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는 25절에서 바울이 에베소에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했으므로 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오늘 에베소 장로들에게 증언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해 깨끗하다는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목숨을 걸고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다 하나님 나라를 증언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맡은 사명을 목숨 걸고 완수했기에 이제 그 책임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들은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왜 책임이 없는지 말한 것이 27절이다. 27절도 20절과 마찬가지로 움츠러들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모든 뜻을 전하는 데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죽인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다 전했다는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에서도 전력을 다해 달리며 주를 섬기는 일을 다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 바울의 말을 듣지 않아서 멸망하는 피는 바울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부분 이 구절의 배경을 에스겔 33:1-6절의 파수꾼의 비유로 본다. 파수꾼이 적이 쳐들어온다고 경고의 나팔을 불었다면 듣고 대비하는 것은 각자의 책임이고 듣고도 대비하지 않았다면 그 피의 책임은 각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바울은 자신이 과거에 한 사역과 현재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죽음을 각오하고 순종하는 것과 자신이 앞으로 달려갈 길을 다 말했다. 이는 에베소의 장로들도 바울 자신처럼 그렇게 하라는 뜻이다. 그들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해야 하고 하나님의 모든 목적을 선포해야 한다. 그렇게 완전히 복음을 다 전했는데도 듣지 않고 멸망하는 것에 대한 책임은 듣고도 대비하지 않은 각자에게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