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9:21-22 바울은 에베소에서의 사역이 마무리된 것을 깨닫고 마케도니아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을 갔다가 로마도 갈 계획을 세우고 두 사람을 먼저 보냈다.
이전 말씀에서 스게와 사건이 에베소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져 이미 신자가 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주술사들의 마법주문을 의지하던 것을 버리지 못한 것이 죄라는 것을 깨닫고 은밀하게 고백하고 공개적으로 선포하고 마법 주문이 적힌 책들을 불태웠다. 이리하여 주의 말씀은 점점 더 크게 자라고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에베소에서의 사역이 마무리된 것을 안 바울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을 갔다가 로마도 갈 계획을 세우고 두 사람을 먼저 보내는 내용이다.
원어에서 21절은 이런 일이 다 이루어진 뒤에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런 일이란 13-19절에 나온 주술사들을 따르던 사람들이 주문이 적힌 책들을 다 불 태운 일일 수 있다. 또 이런 일이란 19:10절에서 말한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가르침으로 에베소에서 사역을 다 마쳤다는 뜻일 수도 있다. 19:10절의 내용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에 바로 앞에 나오는 13-19절의 사역이 마무리 된 것을 뜻하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수는 에베소에서 오랜 기간 머물며 교회를 세우는 일을 다 마쳤다는 뜻으로 넓게 해석한다. 물론 이런 일들이 다 이루어진 뒤에라는 말은 바로 앞에 나온 마술 책들을 불태운 사건도 포함된다. 그 일을 통해 주님의 말씀이 크게 성장하고 강해졌다. 바울은 그 사건으로 인해 에베소 교회가 안정적으로 성장하게 되고 이제 자신이 에베소에서 할 일은 마 이루었다는 것을 성령님의 도움으로 알게 된 것이다.
바울은 마게도니아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마음에 작정했다고 했다. 마음에 작정했다는 말은 원어에서는 그 영 안에서 작정했다는 뜻이다. 개역은 경영하고 라고 번역하고 개역개정은 작정하고 라고 번역했고 새번역은 마음에 작정하고 라고 번역 했다. 한글 번역들은 모두 바울의 마음인 것처럼 번역했다. 다수의 영어 번역들도 “그 영 안에서” 라는 말을 대문자로 표기하지 않았고 NIV는 바울이 결정했다고 번역해서 바울의 마음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어떤 이들은 바울의 생각으로 결정을 했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영어의 ESV와 NLT는 대문자로 표기하여 성령 안에서 결정했다는 뜻으로 번역했다. 다수는 성령 안에서 바울이 결정한 것이라고 말한다. 16:6-10절을 보면 바울이 비두니아로 들어가려 했지만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기에 마케도니아로 갔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구절을 통해 바울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결정하고 사역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사도행전의 문맥과 앞으로 이어지는 성령님의 역할에 비추어 볼 때 성령 안에서 여행경로를 결정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에베소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려면 직접 가는 것이 맞다. 그런데 바울은 어째서 마케도니아와 아가야를 거쳐서 예루살렘으로 간다고 할까? 다수는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의 성도들도 예루살렘의 거룩한 자들을 돕는 일에 참여하게 하려는 것으로 해석한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거룩한 자들은 기근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이 때 바울은 이방인 교회들의 구제금을 모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려는 것이다. 이 일을 통해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인 형제들과 그동안 바울이 전도하여 세운 이방인 교회의 형제들이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21절 뒷부분에서 바울은 "나는 거기에 갔다가 로마에도 꼭 가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에 가서 유대인 형제들과 이방인 형제들이 하나가 되게 한 뒤에 그 여세를 몰아 로마에도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것이다. 꼭 가 보아야 하겠다는 말은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이는 성령께서 그렇게 하도록 바울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말을 통해서도 바울은 성령 안에서 여행 계획을 결정했다는 뜻이다. 바울이 당시 로마제국의 수도였던 로마로 가려고 한 이유는 로마제국의 도움을 받아 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려는 것이다. 바울은 이 모든 것을 성령 안에서 결정한 것이다.
22절에서 바울은 자기를 돕는 사람들 가운데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케도니아로 보냈다고 했다. 돕는 사람들이란 단순히 바울의 조수라는 뜻이 아니다. 이는 구제금을 모금하는 일을 맡은 사람들이란 뜻이다. 이 말은 사도행전 11:29절과 12:25절에서 부조라는 말로 번역된 말에서 온 말이기 때문이다. 로마서 8:1절과 고린도후서 8:4절과 9:1절을 보아도 이들은 예루살렘의 성도들을 위한 모금 담당자들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들을 먼저 보낸 이유는 미리 구제헌금을 모아 놓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9:5절에서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했다고 했다. 오랫동안 조금씩 떼어 놓아서 많은 금액을 정성을 다해 헌금하게 하려는 것이다. 준비 없이 헌금하면 성의 없이 남는 돈 조금 드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사람을 먼저 보내고 바울은 에베소에서 더 머물러 있었다. 아마도 더 가르칠 일이 있어서 일 것이다. 바울이 혼자서 에베소에 더 머문 것도 성령님을 따라 결정한 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