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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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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사도행전 19:13-16

바울 흉내를 내다가 망신당한 마법사들

바람을 받아 바다를 건너는 배 · 사도행전 2장 · 27장

2025. 4. 7. · 안정섭 목사 · 사도행전 19장 강해 설교

사도행전 19:13-16 대제사장 행세를 하던 유대인 마술사 중에 스게와와 그 아들들이 바울 흉내를 내며 귀신을 쫓아내려 했을 때 귀신들린 사람에게 옷이 찢기고 벌거벗은 몸으로 도망하여 망신을 당했다.

이전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을 통해서 아주 특별한 능력을 행하게 하셨는데 심지어는 바울의 피부에 닿았던 천들을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으로부터 옮겨지고 악한 귀신들도 나갔다. 이어지는 말씀은 이를 본 마술하는 자들이 바울을 흉내내다가 귀신들린 사람에게 망신을 당하는 내용이다.

13-16절은 이어지는 내용은 바울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기적과 마법사들의 마법이 어떻게 다른가 비교한 것이다. 당시 마법사들은 믿음이 아닌 특별한 주문을 통해 귀신들을 조종했던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마법사들은 하나님도 그러한 신들 중의 하나로 보고 조종하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13절은 원어에서 시도했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시도했다는 말은 본래 뭔가 하려고 손을 뻗어 그 위에 올려 놓는다는 뜻이다. 이는 신약성경에서 오직 누가만 사용한 말이다. 자동차를 조종하려고 손을 운전대에 올려 놓는 모습과도 같은 것이다. 이들은 손을 뻗어서 하나님을 조종해 보려고 시도했다는 뜻이다.

이들은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하는 사람 행세를 하며 떠돌아다니던 유대인들이다. 그런데 예수의 이름으로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이들도 그 이름을 사용해서 자신들도 그 신을 조종해 보려고 시도해 본 것이다. 그래서 귀신들린 사람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으려고 한 것이다. 이들은 말하기를 "내가 바울이 전하는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명하노라" 라고 했다. 이 말은 오직 예수를 진짜로 주로 믿고 부르는 사람들에게만 효과가 있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예수의 이름에 마법적인 힘이 있는 줄 알고 그렇게 흉내를 낸 것이다.

14절은 유대인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했다는 것이다. 제사장이라는 말은 원어에서 대제사장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요셉푸스의 기록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대제사장이 없다. 그렇기에 개역과 새번역은 "제사장" 이라고만 번역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대제사장의 먼 친척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자신을 위해 자칭 대제사장이라고 선전한 것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선전을 위한 플래카드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 대제사장이 아니면서 대제사장 가문이라고 대제사장을 사칭했을 수 있다.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은 대제사장 같은 옷을 입고 다니며 귀신들을 쫓아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더 높은 명성을 얻으려고 바울이 전하는 예수 이름을 사용해서 귀신을 쫓으려 한 것이다.

이들은 부탁을 받고 한 집에 귀신을 쫓으러 들어가서 귀신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명 하노니 물러 가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자 15절에 보면 악한 영이 이들에게 대답을 했다. 악한 영은 말하길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지만 너희는 누구냐?" 라고 했다고 되어 있다. 한글 번역들이나 NIV와 NLT는 둘 다 안다고 똑 같은 말로 번역했다. 하지만 원어는 예수를 안다는 말과 바울을 안다는 말은 서로 다른 말이다.

예수를 안다는 말은 읽거나 들어서 완전히 이해하고 알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도 안다는 말은 자주 들어서 누군인지 이해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예수는 완전히 안다고 했다. 바울은 누군인지 들어서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너희들은 도대체 모르겠다고 했다. 이렇게 아는 것이 세단계로 약화되는 것이다. 두 단어를 구별하지 않고 똑같이 번역하면 누가가 아는 것이 점점 더 약해지는 점강법으로 말한 것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악한 영에 사로잡힌 사람이 했던 동작은 16절에 보면 먼저 "그들에게 뛰어 올라" 라고 했다. 이는 스게와의 아들들 위에 올라가서 펄펄 뛰면서 짓밟는 모습이다. 그 다음에 "눌러" 라는 말은 일곱을 모두 굴복시켜 꼼짝 못하게 하고는 주인처럼 호령하는 모습이다. 이는 마치 무술의 고수가 깡패 일곱 명을 모두 두들겨 패고 짓 밟아 놓은 뒤 "꿇어!" 라고 말한 것과도 같다. 이렇게 해서 악한 영 하나가 일곱 아들들을 묵사발을 만들어 놓고 이긴 것이다.

악한 영에 사로잡힌 사람이 일곱을 얼마나 두들겨 팼는지 옷이 다 찢어져 벗겨졌을 것이다. 원어에서는 벌거벗겨졌다는 말이 먼저이다. 옷을 사정없이 잡아당기자 찢어져 벗겨졌을 수도 있다. 유대인들의 옷은 커다란 천으로 만든 것이기에 오늘날 우리들의 옷처럼 벗기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마가복음 15:51절에서도 한 청년이 예수를 따라 가다가 잡혔을 때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했다고 했다. 스게의 아들들은 악한 영에 사로잡힌 사람과 몸싸움을 하다가 옷이 벗겨졌을 수 있다.

보통 신분이 높은 사람을 잡아 심문할 때는 신분을 나타내는 옷을 벗기는 것이 보통이다. 악한 영도 대제사장인 척하며 신분이 높은 체하는 이들을 포로로 잡았으니 무릎을 꿇고 앉은 이들의 옷을 모두 잡아 찢어 벗겼을 수도 있다. 악한 영은 이들을 벌거벗긴 뒤 죽도록 두들겨 팼을 수도 있다. 그래서 온 몸에 상처를 입고 이들은 도망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옷차림에 있어서 지나칠 정도로 점잖게 입으려 했던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런 유대인들 그것도 대제사장 가문이라고 자랑하는 저들이 벌거벗고 도망갔다는 것은 최대의 굴욕적인 사건이다. 악한 영에 사로잡힌 사람은 악한 영을 힘입어 일곱 명을 완전히 묵사발 만들고 개망신까지 준 것이다.

이는 누가복음 8:34-37절과는 반대가 되는 모습이다. 거라사 귀신들린 사람은 처음에는 벌거 벗은 채 온몸에 상처를 내며 날뛰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뒤 옷을 단정하게 입고 예수님 발 아래 앉아 있었다. 그러나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은 대제사장처럼 권위있게 보이는 옷을 단정하게 입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악한 귀신들린 사람을 만나자 벌거벗겨지고 온 몸에 상처 투성이가 되어서 달아난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을 만나면 상처가 치유되고 단정한 모습으로 변화되지만 반대로 악한 영을 만나면 이렇게 벌거벗겨지고 죽도록 맞고 완전 패가망신 하는 것이다.

사실 악한 영보다 예수의 영인 성령님이 훨씬 강한 영이다. 누가복음 11:21-22절에서 강한 자가 그 집을 지키면 그 소유가 안전하지만 더 강한 자가 와서 굴복 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 재물을 나눈다고 했다.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진짜로 성령님과 함께 그 집에 들어갔더라면 예수님 앞에 굴복했던 거라사 광인처럼 그렇게 굴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성령님 없이 예수의 이름만 입에 달고 갔기 때문에 그 집을 지키고 있던 악한 영에게 완전히 개망신 당한 것이다.

이들은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을 주문으로 귀신들 조종하듯 조종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바울과 연관이 되어 일어난 기적은 주문으로 하나님을 조종한 것이 아니다. 바울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신 것이다. 바울이 몸에 지닌 천 조각들을 통해 능력이 나타난 것은 그 능력이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시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귀신들은 주문으로 조종할 수 있었겠지만 하나님은 주문으로 조종하여 자기들 필요한 때 이용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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