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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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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사도행전 19:1-7

성령 받지 못한 제자들에게 침례를 주고 성령 받게 한 바울

바람을 받아 바다를 건너는 배 · 사도행전 2장 · 27장

2025. 4. 3. · 안정섭 목사 · 사도행전 19장 강해 설교

사도행전 19:1-7 바울은 높은 지역을 지나 에베소에 이르러 어떤 제자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지만 성령 침례를 받지도 못하고 요한의 침례만 받았기에 바울은 그들에게 예수를 전하고 회개의 침례를 주고 손을 얹자 그들도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했다.

이전 말씀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부족한 것을 배운 아볼로는 아가야 지방으로 건너가고자 했다. 에베소 교회 형제들은 아볼로를 격려해주고 추천하는 편지를 아가야의 형제들에게 보내서 아볼로를 영접하라고 했다. 아볼로는 아가야에 가서 유대 사람들과 일반 대중들 앞에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보여주며 반대하던 자들을 완전히 압도했다.이어지는 말씀은 바울이 에베소로 가는 길에 믿음을 가진 제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부족한 것을 가르쳐 주는 내용이다.

1절은 18:28절과 그런데 라는 말로 연결이 된다. 18장의 아볼로를 19장의 제자들과 연결하여 말하려는 것이다. 아볼로는 부족한 것을 배운 뒤 이렇게 아가야 지방인 고린도에서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볼로와는 또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이들도 역시 아볼로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었지만 그 믿음에 부족한 것이 있는 자들이다.

바울은 전에 지나던 길과는 다른 길로 에베소에 갔다. 개역은 윗지방으로 번역하고 새번역은 높은 지역으로 번역한 말은 원어에서는 높은 지역을 뜻하는 말이다. NASB나 RSV는 원어의 의미 그대로 높은 지역을 뜻하는 말로 번역했고 ESV나 NIV나 NLT는 내륙지역을 뜻하는 말로 번역했다. 그러나 다수는 높은 산악지역의 지방들을 뜻하는 말로 해석한다. 윗지방이나 높은 지역으로 번역한 말은 골로새와 라오디게아로 이어지는 길이 아니고 다른 길로 에베소에 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번역처럼 높은 지역으로 번역하는 것이 원어를 잘 살린 번역이다.

바울은 전에 가지 않은 길로 가면서 복음을 전하고 이미 믿는 사람들의 믿음은 확인해보고 부족한 것을 가르쳐서 굳건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의도적으로 사람들이 주로 다니던 길을 벗어나 다른 길로 간 것이다. 그 중간에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는 말하지 않고 있다. 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만난 사람들만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아볼로와 비교가 되는 또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바울은 에베소에 도착해서 어떤 제자들을 만났다고 했다. 제자라는 말은 사도행전에서 대부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뜻으로 쓰였다. 바울의 제자들이라고 할 때는 대부분 그의 제자들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제자들이란 예수의 제자들이라는 뜻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들은 예수의 제자가 맞다. 다만 예루살렘의 제자들이 아닌 다른 자료들을 통해서 제자가 된 사람들일 것이다. 다수는 사도행전에서 제자들이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뜻한다며 단지 요한의 제자들이라는 뜻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 사람들도 예수의 제자라고 말하면서 요한의 완벽한 제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제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이 두 사람이 성령 받지도 못했다고 했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 처음에는 제자 같았기에 제자라고 했는데 확인해보니 제자가 아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성령을 선물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기에 크리스천들이 아닐 것이라며 요한의 제자들일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또 2절에서 성령받았는지 물어본 것이 제자가 아니라는 증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누가는 이 사람들이 진짜 제자였는지 아닌지 따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누가는 아볼로와 이 제자들을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가 비교하는 것은 아폴로와 이 제자들이다. 아볼로는 성령을 받았으나 요한의 침례만 받은 것이지만 이 제자들은 성령도 모르고 요한의 침례만 받은 것이 다른 점이라고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18:25절에서 아볼로가 예수에 관해 정확히 가르쳤다고 한 것은 분명 성령 받은 증거라고 했다. 이는 사도행전 6:10절에서 지혜와 성령으로 예수를 증거한 스데반을 닮은 모습인 것이다.

아볼로는 성령을 받은 증거가 예수에 관해 정확하게 가르쳤다는 말에 분명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은 성령 받은 증거도 없고 성령도 모르고 단지 요한의 침례만 알고 있었다. 아볼로는 요한의 침례를 받고 요한이 증거한 사람이 예수 라는 것을 알고 정확하게 증거한 사람이다. 그러나 에베소의 제자들은 회개하고 요한의 침례를 받은 뒤 요한이 증거하는 그리스도가 오시길 기다리기만 하던 사람들이다. 따라서 아볼로는 기독교인들의 침례는 받지 않았더라도 분명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고 기다리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에베소의 제자들은 오실 그리스도를 믿었지만 그분이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바울도 이들이 온전한 그리스도인 인줄로 알았다. 그런데 확인해 보니 예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너희가 믿을 때" 라는 말은 분명 이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했다는 뜻이다. 이들은 아마도 요한의 뒤에 오실 분이 예수라는 말만 알고 믿기로 작정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2절에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어본 것이다.

그러자 이들은 성령이 계심도 알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요한의 제자들은 대부분 유대인들이다. 예수의 제자들도 초기에는 대부분 유대인들이었다. 그렇다면 이들도 유대인일 가능성이 높다. 다수는 이들이 성령에 대해 듣지도 못했다는 말은 대부분 요한의 예언이 성취되고 예수께서 오셨다가 죽으시고 부활하신 뒤 약속대로 오순절날 성령이 임하셨다는 것을 듣지 못했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성령이 오셨다는 것을 알지도 못했다고 하자 3절에서 바울은 무슨 침례를 받았느냐고 물은 것이다. 그러자 이들은 요한의 침례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자 바울은 그들이 침례 받으면서 요한에게서 들은 것과 연결한다. 요한이 회개의 침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그분이 바로 예수라고 전한 것이다. 이부분은 우리가 전도할 때는 이처럼 질문을 통해 정확한 믿음의 상태를 진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물이 성령을 의미하는 표적이기에 성령과 물은 분리시킬 수 없다. 바울은 이들의 믿음의 상태를 진단하기 위해 성령 받은 것과 그 표적인 침례까지 확인한 것이다. 아볼로는 옳게 이해하고 예수에 대해 정확히 증거했지만 이들은 예수에 대해 정확히 알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기독교인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들은 분명히 예수를 믿고 있었지만 주류 기독교인 제자들과 접촉하지 못한 채로 믿고 있었던 것이다.

5절에서 그들은 바울에게서 듣고 침례를 받았다. 아볼로는 침례를 받지 않았으나 이미 성령을 받았기에 침례를 다시 주지 않고 다만 부족한 지식을 보충해 준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들이 예수에 대해서도 성령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기에 침례를 준 것이다. 바울은 침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준 것이 아니다. 바울이 이들에게 침례를 준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님의 임재의 가시적인 표시로 준 것이다. 성령님의 임재가 특별한 증거로 나타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기 때문이다. 이제 이들은 바울에게서 배우고 침례를 받고 성령님을 모심으로 정식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다.

그런데 6절에서 바울이 손을 그들에게 얹었을 때 성령이 그들 위에 임하셨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다. 그러나 손을 얹는 것이 성령 받도록 한 것은 아니다. 바울이 손을 얹은 것은 믿음의 공동체의 밖에 있던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제 분명히 그리스도께 속하게 되었음을 사람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사도행전에서는 어떤 특정한 때에만 성령이 임하셨다고 정형화된 적은 없다. 언제 임하시는지는 서로 다르다. 하지만 항상 같았던 것은 모든 신자들이 믿고 헌신할 때 임했다는 것이다. 믿음이 부족한 이들에게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기 위해 성령께서 방언과 예언을 통해 그 증거를 보여주신 것이다.

이에 대해 Stott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들은 작은 오순절을 경험했다. 오순절이 그들을 쫓아와 잡았다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오순절 안으로 붙잡혀서 약속된 복들이 그들의 것이 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Stott는 이들이 성령 받은 것이 규모는 작지만 오순절날 성령 강림과 같다는 것이다. 이들이 잡은 것이 아니다. 이들은 말씀을 듣고 믿었을 때 성령님께 붙잡힌 바 된 것이다. Stott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체험의 표준을 회개와 믿음과 침례와 성령의 선물 이 네 가지로 보았다. 이들은 이 네가지 중 회개만 경험한 사람들인데 바울을 통해 나머지 세가지를 다 경험한 것이다. 7절에서 그들은 열두명쯤 되었다고 했다. 여기서 열 둘이라는 숫자가 특별히 상징하는 것은 없고 목격한 사실대로 기록했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 나온 사람들은 바로 앞에 나온 아볼로의 믿음을 굳게 한 것과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누가는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을 단계별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볼로는 온전한 믿음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요한의 침례만 받았지만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서 예수를 정확하게 가르치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볼로보다 믿음에서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들은 오늘 본문에 나온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이다. 이들은 요한의 침례를 받고 회개를 하고 그리스도를 믿고 기다리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아볼로와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고 성령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도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이 어떤 단계에 와 있는지 정확히 진단을 하고 그 부족한 것을 채워줘야 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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