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60:10-16 모든 나라와 왕들이 모든 재물을 가져와서 새로운 하나님의 공동체요 성전인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길 것이다.
하: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나: 우리의 구원자요 속량자요 우리를 지키는 강한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히 섬기며 찬양하는 삶을 살자.
이전 말씀은 하나님과 영원한 언약을 맺은 자들이 주님의 영광을 비추면 온 세상에 흩어져 있던 자녀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된다고 했다. 이제 남은 자들이 아름답게 회복되는 모습이 자세히 묘사된다. 이스라엘은 강한 나라들에게 짓밟혔지만 이제 이방 나라들이 몰려오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이방나라들을 정복하거나 노예로 삼는다는 뜻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비추는 하나님의 빛에 이끌려 몰려오게 된다는 것이다.
10절은 이방인들이 너의 성벽을 쌓는다고 했고 그들의 왕은 너를 섬길 것이라 했다. 이는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의 노예가 되어 성벽을 쌓는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을 때는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셔서 성벽을 허무셨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이방인들을 회복의 도구로 사용하셔서 성벽을 다시 세우신다는 것이다. 이방인들의 왕들은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일을 감독하는 감독관들이 되는 것이다. 너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새 예루살렘 성을 가리키는 말이기에 이방인들과 그들의 왕들도 함께 새 언약의 백성이 되어 함께 새 예루살렘 성을 세운다는 뜻이다.
11절은 이제 회복된 예루살렘을 묘사하고 있다. 성문은 필요한 때만 열리고 다른 때는 닫히는 법이다. 그래야 성을 세운 목적에 맞는 것이다. 그러나 11절은 성문이 언제나 열려 있어서 밤낮으로 닫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성벽을 세운 목적이 사라진 것이다. 적들로부터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완전한 평화가 와서 어떤 적도 예루살렘을 공격하거나 위협하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성문이 항상 열려있는 또 다른 이유는 이방나라의 재물이 이 문을 지나 너에게로 오며 이방 왕들이 너에게로 끌려올 것이라고 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온 세계가 이스라엘에게 굴복하여 재물을 갖다
바치는 것이라 하고 왕들도 모두 포로로 잡혀 끌려오게 된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NASB나 ESV는 "their kings led in procession" 이라고 번역했다. 그들의 왕들이 개선행진에 인도되어 온다는 뜻이다. 10절에서 이방 왕들이 새 예루살렘의 장관들이 된다고 했기에 이 개선행진에도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따라오는 것이다. 너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새 예루살렘 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행진은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메시야이신 영원한 왕의 승리의 행진이고 모든 나라의 왕들은 자발적으로 복종하여 메시야를 따라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래서 문은 항상 열려있는 것이다.
12절은 원어에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왜 그렇게 왕들이 자발적으로 메시야의 개선행진에 참여하는가 하면 이라는 뜻이다. 그 이유는 너를 섬기지 않는 민족과 나라는 망하고 그런 이방나라의 왕들은 반드시 황폐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섬김의 대상은 혈통의 이스라엘이 아니라 새 예루살렘성 즉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신 새로운 언약의 공동체이다. 그 공동체를 섬긴다는 뜻이지 온 세상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종이 된다는 뜻은 아니다. 메시야에게 순종하고 메시야의 공동체를 섬기지 않으면 망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자발적으로 개선행진에 따라온다는 뜻이다.
13절은 레바논의 자랑인 잣나무와 소나무와 회양목이 함께 너에게로 올 것이다. 이 나무들은 레바논이 자랑하는 귀한 건축재료들이다. 회양목은 한국이나 미국의 집 창문 아래에 심는 작은 나무의 이름이지만 이는 그런 나무가 아니다. 적당한 나무이름이 없어서 그렇게 번역한 것 뿐이다. 성경에 나오는 나무들이 어떤 나무인지 알 수 없을 때는 원어 그대로 표기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본다.
이들 나무들은 새 예루살렘 성전 터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들여온다고 했다. 성전 뜰에 이런 나무를 옮겨심는다는 뜻인지 아니면 성전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건축재료로 들여온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나의 발 둘 곳을 영화롭게 하겠다" 라는 말에서 하나님의 발 둘 곳은 역대상 28:2절에 보면 성전을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성전 내부를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건축재료로 보는 것이 옳다고 본다.
14절을 보면 성문은 계속 열려있고 계속 뭔가 들어오고 있다. 14절에서 들어오는 것은 "너를 괴롭히는 자들의 자손이 몸을 굽히고 너에게 나아오며 너를 멸시하던 자들이 모두 너의 발 아래에 엎드려서 너를 주님의 도성이라고 부르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의 시온이라 부르겠다" 고 했다. 새로 세워질 예루살렘 성은 주님의 도시이고 시온은 거룩하신 분의 새로운 성전인 것이다.
15절은 예루살렘성의 과거와 미래를 비교한 것이다. 과거에는 버림을 받고 미움을 받아서 너의 옆으로 오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성을 버림받은 어린아이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길이 길이 예루살렘을 높이고 예루살렘을 오고 오는 세대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제 영원히 존귀한 존재로 만들어 모든 사람들이 보고 기뻐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아무도 쳐다보는 사람도 없던 어린아이가 이제는 모든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고 모두가 와서 쳐다보고 기뻐하며 예쁘다고 얼르고 있는 것이다.
16절은 이렇게 모든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고 기쁨이 된 예루살렘을 서로 안고 젖을 먹이겠다고 하는 모습이다. 예루살렘은 이제 이방나라들의 젖을 빨게 된다는 것이다. 뭇 왕들의 젖으로 먹인다는 것이다. 젖동냥도 제대로 못얻어 먹던 아이가 이제는 가장 존귀한 나라와 왕들이 서로 먹이겠다고 다투어 나서는 모습이다.
이것으로 새예루살렘인 교회는 주가 구원자이고 속량자이고 야곱의 전능자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구원자는 메시야라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메시야이다. 속량자는 값을 지불하고 회복시켜주는 라헬의 보아스와 같은 존재이다. 우리를 값을 주고 사셔서 해방시켜 주시는 분이신 것이다. 야곱의 강한자는 해방시켜 준 뒤 계속해서 그 강한 팔로 지켜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오늘 말씀은 새로운 예루살렘인 그리스도의 공동체의 회복을 말한 것이다. 새 예루살렘인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온 세상 모든 나라와 왕들을 종으로 부린다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함께 참여하여 교회를 회복시키고 섬긴다는 뜻이다. 메시야이신 우리 주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모임인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그 핏값으로 속량해 주시며 영원히 지켜주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