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60:1-9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빛을 비추면 온 세상에 흩어져 있던 자녀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된다.
하: 세상의 빛이 되길 원하시는 하나님
나: 말씀과 삶으로 빛되신 주님을 들려주고 보여주는 삶을 살도록 하자.
59장에서 공평과 공의 가 없어 소경과 같고 눈 없는 사람과 같이 어둠 속을 더듬는다 했고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은 이것을 슬퍼하시며 위대한 전사와 같은 모습으로 대적들을 쓸어버리시되 홍수의 물과 같이 완전히 죄악을 쓸어버리시고 그 백성을 정결하게 하셔서 영원한 언약을 맺으신다고 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 영원한 언약을 맺은 남은 자들에게 주님의 영광을 비출 것이라는 내용이 이어진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이룬 거룩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정결하게 씻어주신 거룩이다.
1절은 캄캄한 새벽에 해가 떠오르는 그림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비추기 시작하는 모습을 아침해가 뜨는 그림으로 전달하고 있다. 원어에는 예루살렘이란 말이 없다. 영어의 NLT에서 의미를 살리기 위해 삽입한 것을 따른 것이다. 원어는 단지 "일어나서 빛을 비추어라" 라는 말 뿐이다. 그 빛은 자신의 빛이 아니다. 이어지는 말인 "구원의 빛이 너에게 비추었으며" 도 원어에서는 "왜냐하면 너의 빛이 왔기 때문이다" 라는 말이다. 따라서 빛을 발하는 것은 하나님의 빛이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새언약을 맺은 백성들에게 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빛을 반사해서 비추라는 뜻이다. "주님의 영광이 아침 해처럼 너의 위에 떠올랐다" 라는 말은 앞에서 비유로 말한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2절은 "왜냐하면 보라 어두움이 땅을 엎으며 깊은 어두움이 민족들을 덮을 것이다" 라고 했다. 1절에서 왜 일어나 빛을 비추어야 하는가 하면 어두움이 온 땅을 뒤덮고 있고 더 깊은 어두움이 모든 민족들을 다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그러나 오직 너의 위에는 주님께서 아침 해처럼 떠오르시며 그의 영광이 너의 위에 나타날 것이다" 라고 했다. 오직 새언약을 맺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게만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비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젠 잠에서 깨어 일어나서 그 어두운 세상에 주님의 영광의 빛을 반사해 주라는 것이다.
3절은 "이방 나라들이 너의 빛을 보고 찾아오고 뭇 왕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보고 너에게로 올 것이다" 라고 했다. 이는 짝을 이루는 댓구이다. 너희 빛이란 남은 자들의 빛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인 메시야가 나타나 비추는 빛이다. 이 빛은 하나님의 메시야가 나타나는 것을 캄캄한 새벽에 동쪽하늘에 떠오르기 시작한 햇빛으로 비유한 것이다. 이와 짝을 이루는 "떠오르는 너의 광명" 이란 메시야의 빛이 점점 더 밝은 빛을 내며 온 세상에 비추는 모습을 점점 더 높이 떠오르는 햇빛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나 이 빛은 하나님의 남은 자들에게만 있고 나머지 세상에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출애굽기 9장에서 온 이집트 땅에는 어두움이 있고 오직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빛이 있었던 모습과도 같다. 그래서 어두움에 있던 백성들과 그들의 왕들이 빛을 향해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4절은 이제 "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보아라. 그들이 너에게 오고 있다" 라고 했다. 남은 자들이 메시야의 빛을 받아 비추자 그 빛을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사방에서 그 빛을 향해 몰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너의 아들들이 먼 곳으로부터 오며 너의 딸들이 팔에 안겨서 올 것이다" 라고 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이라 해석한다. 오직 흩어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만 빛이 비춘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이사야 전체의 문맥을 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께로 돌아온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고 혈통의 이스라엘이 아니다. 따라서 돌아오는 아들 딸들은 단순히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오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없다. 왜냐하면 3절에서 모든 이방 나라들과 이방 나라 왕들이 온다고 했는데 그들은 모두 다 사라지고 이스라엘 자손들만 돌온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5절은 아들 딸들이 빛되신 메시야를 보고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감격하는 모습을 세단계로 나타낸 것이다. 먼저 "그 때에 이것을 보는 너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치고" 라고 했다. 원어는 "그 때에 너희가 이것을 보고 너희가 빛날 것이다" 라는 뜻이다. 물론 그 의미는 새번역처럼 얼굴에 기쁨이 넘친다는 뜻이다. 그 다음 단계는 "흥분한 너의 가슴은 설레고" 이다. 원어의 문자적인 뜻은 심장이 두려워 떤다는 뜻이다. 너무나 놀란 광경을 보고 소름끼치듯 놀라는 모습이다. 처음에는 기뻐했는데 자세히 보니 엄청난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소름끼치듯 놀라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은 "기쁨에 벅찬 가슴은 터질 듯 할 것이다" 라고 했다. 원어는 심장이 커진다는 뜻이다. 소름끼치는 듯한 두려움에 심장이 쿵쾅거리고 뛰기 시작했는데 그 심장이 점점 더 빨리 뛰고 심장은 점점 커져서 터질 듯 하게 된 것이다.
5절 앞부분은 마음 속의 기쁨을 묘사한 것이라며 5절 뒷부분은 돌아온 자녀들이 엄청난 재물을 가져온 것에 대한 기쁨이다. "풍부한 재물이 뱃길로 너에게로 오며" 라는 말은 "바다의 풍부함이 네게로 돌아오며" 라는 뜻이다. 풍부하다는 말은 떼거리로 몰려들어 시끄럽다는 뜻이다. 수많은 물고기들이 몰려들어 그 물고기들이 퍼득이는 소리도 요란한 그림을 상상할 수 있다. 이 그림의 의미는 먼저 페니키아의 무역항의 모습과 연결해 볼 수 있다. 수많은 배들이 온갖 재물들을 싣고 페니키아의 무역항으로 모여들던 것처럼 재물들이 이스라엘로 들어오는 것이다.
"이방 나라의 재산이 너에게로 들어올 것이다" 라는 말은 앞에서 비유로 말한 뜻을 설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3절에서 이방나라와 왕들이 빛을 보고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제 5절에서 재물이 그렇게 들어 온다면 4절의 아들 딸들은 오직 흩어진 이스라엘 자손들만 돌아온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면서 그냥 오지 않고 재물들을 갖고 돌아온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야가 오면 이스라엘은 위대한 나라가 되어 온 세계 모든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섬기고 조공을 바치게 된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전후 문맥은 분명히 수많은 이방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들이 재물을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5절은 이스라엘 서쪽의 바다를 통해 재물이 들어오는 모습이라면 6절은 이제 동쪽에 있는 육지를 통해 재물이 들어오는 모습이다. "많은 낙타들이 너의 땅을 덮을 것이며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너의 땅을 뒤덮을 것이다. 스바의 모든 사람들이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주님께서 하신 일을 찬양할 것이다" 라고 했다. 에바는 페르샤만 동쪽에 있는 지명이고 미디안은 이스라엘 남쪽에 있는 지명이다. 세바는 미디안보다 훨씬 더 남쪽에 있는 지명이다. 또 7절은 "게달의 모든 양 떼가 다 너에게로 모여들며 네가 느바욧의 숫양들을 제물로 쓸 것이다"
라고 했다. 게달은 아라비아 사막 북쪽에 있는 지명들이다.
동쪽과 남쪽과 북쪽의 모든 곳에서 온 재물들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이는 흩어져 있던 아들 딸들이 돌아오면서 아버지께로 가져온 재물들 때문이다.
8절은 먼저 "저기 구름 떼처럼 몰려오는 저 사람들이 누구냐?" 라고 했다. 이는 서쪽 지중해를 통해 배를 타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바다 위에 떠 오는 배들이 마치 몰려오는 구름떼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메마른 땅에 비가 내리려 하면 지중해에서 구름떼들이 빠르게 몰려온다. 사람들이 배를 타고 오는 모습이 마치 구름 떼가 몰려오는 것같이 바다를 가득 메우고 있다는 뜻이다. 또 " 제 보금자리로 돌아오는 비둘기처럼 날아오는 저 사람들은 누구냐?"
라고 했다. 이번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처럼 온 세상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영원한 고향인 새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모습이다.
9절은 다시 자녀들이 돌아오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원어는 "섬들이 나를 사모하며 다시스의 배들이 맨 먼저 먼 곳에 있는 너의 자녀들을 데리고 온다" 다시스는 이스라엘에서 보면 서쪽 땅 끝인 스페인을 뜻할 것이고 가장 먼 곳에 있는 자녀들을 먼저 데리고 온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스페인이라고 볼 수 없다. 먼곳에 있는 자녀들이 먼저 돌아온다는 말은 가까이에 있는 자녀들은 나중에 돌아온다는 뜻이다.
"그들이 주 너의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려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리려고 은과 금을 함께 싣고 온다" 라고 했다. 먼저 하나님을 너의 하나님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 하나를 구원하신 너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또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했다. 이는 공동체가 함께 섬기는 거룩하신 분이신 것이다. 이어지는 말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하며 그 이유를 밝힌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너를 영화롭게 하셨기 때문이다" 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영화롭게 하셨다는 말은 아름답게 하셨다는 뜻이다. 1절에서 빛을 발하라고 했는데 이제 아름답게 하셨다는 것이다. 외모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찬란한 하나님의 빛을 받고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들은 혈통의 유대인들 모두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머지는 다 심판하셔서 쓸어 버리셨고 하나님께로 돌아섰기에 하나님께서 남겨두셔서 정결하게 하신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통해 모든 이방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셔서 이방사람들을 불러주신 것이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방에서 돌아오는 자녀들은 이방 사람들이다. 신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먼저 메시야이신 예수께 나왔고 그들을 통해 빛을 발하셔서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일어나 빛을 발해야 한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캄캄한 어두움 가운데서 살고 있다. 그들에게 빛을 발해서 그들이 우리 빛을 보고 우리에게 나오게 해야 한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가정과 직장와 이웃들에게 빛을 발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빛을 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라고 하신 것이다. 일어나 빛을 비추자.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어 우리의 행실을 보고 예수님을 만나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