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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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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사도행전 18:18-21

에베소에 도착해서 혼자 회당에 들어간 바울

2025. 3. 29. · 안정섭 목사 · 사도행전 18장 강해 설교

사도행전 18:18-21 바울은 고린도를 떠날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에베소에 도착했지만 두 사람을 남겨두고 홀로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고 그들은 오래 머물면서 가르쳐 주길 원했지만 다음에 오겠다고 하고는 에베소를 떠났다.

이전 말씀에서 유대인들은 바울을 갈리오 총독에게 끌고 가서 법을 어기는 자라고 고소했지만 갈리오는 너희 율법에 관한 것이라면 알아서 처리하라고 그들을 재판정에서 내쫓았다. 분노한 유대인들은 회당장 소스데네를 붙들어다가 재판정에서 때렸지만 갈리오는 관여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에 가서 혼자 회당에 들어가 유대사람과 토론하고 에베소를 떠나는 내용이다.

하나님께서 갈리오를 통해 유대인들이 바울을 해치지 못하도록 막아 주셨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고린도에서 오래 머물며 고린도 성도들을 가르칠 수 있었다. 18절은 바울이 여러 날을 머물다가 라는 말로 시작한다. 여러 날이란 충분한 날들이라는 뜻으로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렀던 것을 말한다. 머문다는 말은 함께 붙어있다는 뜻이다. 사도행전 11:23절에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라는 말에서 함께 머물러 있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마태복음 15:32절과 마가복음 8:2절에서는 나와 함께 있은 지 라는 말에서 함께 있은 지 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무리들이 예수님과 함께 붙어 있은 지 사흘이나 되었다는 뜻이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과 함께 붙어 있으면서 계속해서 하나님 말씀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이어서 바울은 함께 붙어 있던 고린도 형제들과 작별을 하고 시리아로 떠났다. 그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도 바울과 배를 타고 함께 떠났다. 배를 타고 시리아로 갔다는 말은 시리아로 향하는 항해를 시작했다는 뜻이다. 시리아란 로마의 행정구역 명이기에 이스라엘도 시리아에 포함된다. 겐그레아는 고린도 동쪽에 있는 항구 이름이다. 바울은 배를 타기 전에 일찍이 서원한 것이 있어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서원이 있었다는 말은 과거부터 계속 그 서원을 지켜왔다는 것이다. 이제 그 서원을 끝내면서 머리를 깎은 것이다.

서원이란 신명기 6:1-21절에 나오는 나실인의 서원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러한 바울의 서원을 특별히 하나님께서 고린도에서 지켜 주신 것에 대한 개인적인 서원이라고 말한다. 바로 앞부분에 나온 것처럼 하나님께서 아가야 총독 갈리오를 통해 지켜주신 것은 놀라운 위로였다. 그동안 핍박으로 인해 많이 힘들고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서원했는지 알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고린도를 떠나면서 그동안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위로해 주셔서 고린도에서 사역을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해 감사했을 것이다. 계속 되는 위협 속에서 쫓기면서 복음을 전했기에 바울은 아마도 고린도에서 사역을 무사히 마치게 해달라며 서원을 했을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무사히 살아 남아서 복음을 잘 전하고 떠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서원에 대한 삭발은 예루살렘에서 해야 한다며 바울이 유대교의 율법에 따른 서원이 아니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삭발은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것이고 잘라낸 머리카락 만큼은 예루살렘으로 가져가서 서원에 대한 희생제사를 드림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바울도 예루살렘에서 서원에 대한 희생제사를 드렸을 것이다. 그 증거가 오늘 본문에 숨어있다. 다수의 성경 해석자들은 이러한 삭발은 또한 예루살렘의 유대인 기독교인 지도자들을 만나기 위한 준비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을 만나 선교 보고를 하는 것도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이유였을 것이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바울이 머리카락을 가져와서 서원에 대한 희생제사를 드리는 모습을 보고 바울에 대한 소문이 헛소문임을 알게 되엇을 것이다. 바울은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에게도 율법을 버린 자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바울은 기독교인이 된 뒤에도 항상 유대인임을 잊지 않았고 유대교의 율법을 철저히 지켰다. 바울이 주장한 것은 율법의 폐지가 아니었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율법을 강조해서 복음을 받지 못하도록 장애물을 놓지 말라는 뜻이다.

19절에 보면 바울이 에베소에 왔다고 했다. 이는 바울이 탄 배가 에베소에 도착했다는 뜻이다. 그들을 거기에 머물게 했다는 말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에베소에 머물게 했다는 뜻이다. 두 사람을 데려온 것은 이들에게 에베소 교회를 맡기기 위함이다. 고린도 전서 16:19절에 보면 에베소 교회가 두 사람의 집에서 모였다고 했다. 이제 에베소 교회는 이 두사람의 집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에베소에 도착하여 두 사람을 남겨두고 바로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했다고 했다. 에베소에 도착하여 두 사람을 남겨두었다는 말이 어색하기에 이 말이 21절에서 에베소를 떠난 것과 연결이 된다며 바울이 나중에 두 사람을 떠났던 곳에서 라고 번역할 수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19절에서 시작된 문장이 21절 뒷부분까지 계속된다고 본다면 그 중간에 끼어있는 내용들이 다소 엉성하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을 남겨두고 바울 홀로 회당으로 갔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두 사람을 남겨두고 홀로 회당에 들어간 이유는 26절에 나온다. 바울이 전도해서 믿는 자가 생기면 두 사람에게 보내 자세히 가르치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전 문맥과 25절을 볼 때 바울은 고린도에서 자신 때문에 회당장 소스데네가 유대인들에게 맞은 것 때문일 것이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회당의 유대인들에게 직접 핍박을 받지 않게 하고 자신 혼자서 복음 전한 뒤 회심한 사람들은 두 사람에게 가르치도록 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고린도 회당에서 바울이 이방인에게로 간다는 말은 고린도 회당에서 더 이상 가르치지 않겠다는 뜻이다. 바울은 에베소에 오자 또 다시 회당에 간 것이다. 변론했다는 말은 17:2절에서 데살로니가 회당에서 자신이 강론하고 가르치던 그 절차를 따라 가르쳤다는 뜻이다.

20절을 보면 그러나 에베소의 유대인들의 반응은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과는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바울에게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바울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거절한 바울은 21절을 보면 그들과 작별인사를 하면서 하나님의 뜻이면 다시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말하고 배를 타고 떠났다고 했다. 다시 돌아온다는 말은 본래 말이 무릎을 꿇고 앉아 쉬는 모습을 그림처럼 그린 말이다. 이 말 앞에 다시 라는 말을 합쳐서 만든 말이다. 지금은 바울이 서서 간단히 가르치고는 급히 달려가다가 잠깐 서 있는 말처럼 잠깐 동안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그 때는 말이 쉬듯 편안히 앉아서 오랜 시간 쉬면서 오랫동안 가르치겠다는 뜻이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겨울을 지냈다면 배는 3월 5-10경이 되어야 뜨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울은 오순절 전에 예루살렘에 가고 싶어 했기에 시간이 매우 촉박했던 것이다. 그 해의 오순절은 4월초였다. 바울은 오순절 전까지 예루살렘으로 가야만 했기에 에베소를 들러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만 머물게 하고는 자신은 잠깐 짬을 내어 회당에서 가르치고 바로 떠난 것이다. 만약 고린도에서처럼 충돌이 생긴다면 일정이 늦어질 것이기에 혼자서 들어가 복음 전하고 바로 떠나려 한 것이다. 바울이 뿌려 놓은 복음의 씨앗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거두었을 것이다. 정말 바쁜 일정이지만 그 틈에도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은 정말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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